'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91) 설상가상

[우리 말에 마음쓰기 908] '엎친 데 덮치다'와 우리 말투 생각하기

등록 2010.05.05 15:33수정 2010.05.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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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설상가상일까

.. 1917년 겨울은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마가렛의 재정상태는 절망적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금방 쓰러질 것 같이 건강이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일까. 전쟁은 산아제한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고 마가렛은 뼈를 깎는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  <마가렛 생거/안정숙 옮김-이유있는 반항>(풀무,1979) 162쪽


'시기(時期)'는 '때'로 다듬고, "마가렛의 재정상태(財政狀態)는 절망적(絶望的)이었다"는 "마가렛이 가진 돈은 바닥이 났다"나 "마가렛이 가진 돈은 다 떨어졌다"로 다듬습니다. '그녀'는 '마가렛'으로 고치고, "쓰러질 것 같이"는 "쓰러질 듯이"로 고치며, "건강(健康)이 악화(惡化)되었다"는 "몸이 나빠졌다"로 고쳐 줍니다. "치명적(致命的)인 타격(打擊)을 주었고"는 "크게 한방 먹였고"나 "크게 기운을 꺾었고"로 손질하고, '좌절감(挫折感)'은 '쓴맛'으로 손질합니다.

 ┌ 설상가상(雪上加霜) : 눈 위에 서리가 덮인다는 뜻으로, 난처한 일이나 불행한
 │    일이 잇따라 일어남을 이르는 말
 │   - 시간도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막혔다 /
 │     설상가상으로 주위마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
 ├ 설상가상일까
 │→ 엎친 데 덮쳤달까
 │→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달까
 │→ 가뜩이나 안 좋았는데 더 안 좋달까
 │→ 지금으로도 벅찬데 또랄까
 └ …

한문을 쓰는 분들한테는 '설상가상'입니다. 우리 말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엎친 데 덮친다'입니다. 한문을 쓰는 이들은 한자를 하나하나 엮어서 이야기를 짜고, 우리 말을 하는 사람은 토박이 낱말을 하나둘 모아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한자로 지은 낱말은 으레 둘이나 넷으로 짜입니다. 우리 말로 짓는 상말은 글자수에 매이지 않으면서 말느낌이 싱그럽고 입에 찰싹 달라붙습니다.

 ┌ 시간도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 시간도 없는데 더구나
 └ 설상가상으로 → 여기에다가 / 게다가


우리들이 한자를 엮어 한문을 쓰는 사람이라면 '설상가상' 같은 말을 쓰는 일은 잘못되거나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토박이말을 한글에 담아 나타내는 사람이라면 '엎친 데 덮치다'나 '엎치고 덮치다' 같은 말을 써야 알맞거나 올바르지 않으랴 싶어요.

한국사람한테는 한국말이고, 중국사람한테는 중국말이며, 일본사람한테는 일본말입니다. 미국사람한테는 미국말이고, 프랑스사람한테는 프랑스말이며, 스페인사람한테는 스페인말입니다.

ㄴ. 그런 데다 설상가상으로

.. 그런 데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할 일자리마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  <쿠루사(글),모니카 도페르트(그림)/최성희 옮김-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동쪽나라,2003) 머리말

'충분(充分)하지'는 '넉넉하지'나 '마땅하지'나 '많지'로 다듬어 줍니다. '제대로 있지'나 '얼마 있지'나 '몇 군데 있지'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 그런 데다 설상가상으로
 │
 │→ 그런 데다
 │→ 그런 데다 끔찍하게도
 │→ 그런 데다 안타깝게도
 └ …

이 보기글에서는 '설상가상으로'는 군더더기입니다. '그런 데다' 한 마디이면 이 글월에서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 알뜰히 보여줍니다. 굳이 꾸밈말을 하나 넣고 싶다면 '그런 데다'와 같은 뜻인 '설상가상으로'가 아닌 '끔찍하게도'나 '슬프게도'나 '안타깝게도'나 '고달프게도'나 '부채질하듯' 같은 말마디를 넣어 줍니다.

 ┌ 그런 데다가
 └ 게다가 / 더욱이 / 더구나 / 더군다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게다가'나 '더욱이'를 쓰면서 "어려운 일 한 가지로 그치지 않고 몇 가지 어려움이 더 겹치거나 잇따르고 있음"을 나타내 왔습니다. 굳이 '설상가상'을 들먹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우리 느낌과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알맞게 쓰던 말을 잘 살려서 써 주면 됩니다. 수수하게 쓰던 말이 가장 알맞으면서 더없이 빛나는 말임을 깨달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함께 나누는 말임을 생각하고, 서로 손잡는 말임을 헤아리며, 다 같이 어우러지는 말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ㄷ. 설상가상으로

.. 설상가상으로 부모님들이 서로 거의 말을 안 했기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은 늘 근심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26쪽

"내 어린 시절(時節)"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으레 '나의'처럼 쓰는데, "어린 시절"은 "어린 나날"이나 "어릴 적"으로 다음으면 한결 낫지만, '내'라고 적은 대목 하나가 그지없이 반갑습니다. 우리는 우리 말 '내'를 마땅히 올바로 써야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말을 우리 말답게 쓸 줄을 잊거나 모르기 때문에 이처럼 '내'라고 반듯하게 적은 모습을 보면 왈칵 눈물이 날 만큼 반갑고 고맙습니다.

 ┌ 설상가상으로
 │
 │→ 엎친 데 덮쳤다가
 │→ 가뜩이나 안 좋은데다가
 │→ 여러모로 안 좋은데다가
 │→ 이래저래 힘든데다가
 └ …

궂은 일이 끊이지 않았기에 근심거리로 가득한 어린 나날입니다. 힘들고 벅차고 고단하고 괴롭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속시원히 풀리면 좋을 텐데, 풀리는 일보다 꼬이는 일이 많고, 꼬이는 일이 늘면서 엉망이 되는 일이 생겨납니다. 이럴 때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골치아픈 일이 또 터진다면 그야말로 할 말을 잃고 맙니다.

 ┌ 그런데
 ├ 이런 판에
 ├ 이런 집에서
 └ …

생각해 보면, 얄궂거나 안타까운 일만 벌어지는 우리 삶자락이 아닙니다. 얄궂거나 안타까운 말씀씀이 또한 끝없이 되풀이되는 우리 삶터입니다. 조금이나마 말을 돌보고 생각을 추스른다면 좋을 텐데, 한두 가지라도 글을 쓰다듬고 마음을 매만진다면 나을 텐데, 일이 꼬이고 사람이 엉키고 생각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말과 글은 나날이 어지러워지고 맙니다.

말만 깨끗할 수 없습니다. 생각만 넉넉할 수 없습니다. 매무새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말과 생각과 매무새가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삶터와 세상과 사람들 모두 새로워져야 합니다. 정치와 사회와 교육과 문화가 나란히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우리 스스로 곱고 살가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고사성어 #상말 #국어순화 #한글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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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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