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단골 패턴을 낱낱히 까발린 추리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

등록 2010.05.09 09:44수정 2010.05.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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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명탐정의 규칙>겉표지

<명탐정의 규칙>겉표지 ⓒ 재인

<명탐정의 규칙>겉표지 ⓒ 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두고 '허를 찌른다'라고 말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작가는 이미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등으로 '반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이 허를 찌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만큼, 그의 소설은 언제나 허를 찌른다.

 

그럼에도 <명탐정의 규칙>은 시작부터 '허를 찌른다'는 말로 시작해야 한다. 이제까지 작가가 보여줬던 반전과는 다른 것이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그것은 무엇인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추리소설에 대한 강도 높은 조롱이다. <명탐정의 규칙>은 그런 소설이다. 이제까지 국내에 소개된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추측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경감 오가와라 반조. 그는 프롤로그에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명탐정 소설에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펴는 형사가 반드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빈번히 등장"해야 하는데 자신이 "그 멍청한 익살꾼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워 보이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역할이 명탐정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절대 진실에 접근해서는 안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진범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야 '멍청한' 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고충을 토로한 경감은 명탐정을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덴카이치 다이고로. 그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명탐정의 규칙>은 12개의 살인 사건에 숨겨진 '추리'를 들려주는데 하나같이 심상치 않다. 조롱하려고 작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건은 폭설이 내린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이다. 사람들이 놀란 건 당연한 일. 경감도 명탐정도 놀랐다. 하지만 경감과 명탐정이 놀란 이유는 마을 사람들과 다르다. 왜 그런가. "명탐정은 '밀실 선언'을 하고, 우리 조연들은 놀라는 시늉을" 해야 하는 밀실 트릭이기 때문이다.

 

명탐정에 의한 밀실 선언과 모두가 놀란 연기를 한 후, 경감은 자조적으로 말하고 있다. "똑같은 마술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는 기분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마술의 속임수를 공개하는 방식 정도랄까"라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밀실 트릭을 밝히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명탐정이 모두를 모아놓고 진실을 들려주는데도 다들 시큰둥하다. 되레 '곰팡이 나는 수수께끼'로 비유할 정도로 그것을 비웃고 있는데 그 뉘앙스가 대단히 유쾌하다. 안이한 밀실 트릭에 대한 풍자를 꽤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소설은 '의외의 범인'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저택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이 누구인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감은 자신이 맡은 역할처럼 헛다리를 짚으며 진실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한다. 반대로 명탐정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듯, 자신만 알고 있다는 모습으로 수색할 따름이다. 언제나 그렇듯, 경감과는 절대 공조하지 않는다. 어느 추리소설이 그렇듯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명탐정은 이번에도 모두를 불러놓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 모습 또한 대단히 유머러스하다. 또 다른 인격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건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 제목처럼 '의외의 범인'을 등장시켜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에 대한 비판인 셈인데 이 또한 꽤 코믹하게 그려져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다른 소설들도 이와 비슷하다. 다잉 메시지, 동요 살인, 살인의 도구 등의 제목이 붙은 소설들은 다른 추리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트릭'들을 익살스럽게 조롱하는데 그 모습이 꽤 유머러스하다. 명탐정의 엉뚱한 논리와 경감의 한심한 대사가 매순간 허를 찌르고 있으니 웃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규칙을 통쾌하게 비웃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 작품의 완성도를 보건대 작가의 다른 소설 못지않게 큰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이유는 전혀 다르겠지만 말이다.

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재인, 2010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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