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인 선로와 터널하코다테에서 삿포로로 가는 열차의 첫번째 차량에서 바라본 선로와 터널 모습
김대규
여러 운송 수단 가운데 추억을 되새김하는데 가장 유용한 것이 아마 기차일 것이다. 선박이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로워질 가능성이 높지만, KTX나 신칸센처럼 아주 빠른 열차가 아니라면 열차 밖의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면서도 곡선의 구간에서는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게 움직인다.
맑았던 하늘이 그새 어두워지고 눈이 내렸다. 키가 큰 침엽수들이 빽빽한 숲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휙휙 스쳐가는 은빛 나는 나무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나라보다 훨씬 북쪽지방으로 왔음을 실감했다.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의 나무들도 이런 은빛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비틀스의 노래 <Norwegian Wood>를 들으며 괴로워했다. 그는 낯선 땅에서 비로소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사라져간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기억들을 생각했다. 비틀스의 노래를 듣지 못했지만, 노르웨이의 숲을 닮은 이곳에서 나도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잃어 버려서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았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깜박 거리는 어둠이 스쳐간 시간에 대한 몇몇 잔상을 정지된 장면으로 보여주었다. 스물한 살, 회피하기 어려운 입대통지서를 받아들고 짧은 청춘과의 이별을 괴로워했었다. 스물여덟 살, 결혼도 일종의 거래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었다. 서른두 살, 사랑이 서로 다른 문화와 원거리의 장벽 앞에 허망하게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기차에 올라 눈덮인 숲과 나무들을 만났었다.
그사이 나는 결혼을 하였고, 아이 셋을 낳고서야 미루어진 '신혼여행'을 핑계로 다시 열차를 타고 깊은 우물이 있는 노르웨이의 숲을 지나고 있다. 이렇게 지난날을 가만히 돌아보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간이 흘러야 하고, 기억의 우물물을 걷어 올리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잠시 잠간 기억을 되새김하는데 기차는 어느새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의 첫 장면에서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고 이른 것처럼 터널을 벗어나자 은빛 자작나무 숲은 사라지고 앞이 툭트인 넓은 눈밭이 나타났다.
'오누마 국정공원'이었다. 아직 상상 속의 노르웨이 숲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알래스카로 공간 이동을 한 것만 같았다. 섬이어서 평원이 있을 거라고 미처 생각치 못했는데, 마치 광활한 설원을 질주하는 <폭주열차>를 타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들떴다.
불안이 지배하는 폭주기관차를 타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