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진 빚도 돌려줘야 합니다

어버이날 딸에게 받은 선물 이야기

등록 2010.05.12 10:36수정 2010.05.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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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일)는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누굴까?"하고 궁금하면서도 반가웠습니다.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서 그런지 종종 사람이 그리워지면서 외로움을 타거든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오신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 반갑다고 물 묻은 손을 닦지도 않고 나가며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상자를 든 젊은이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굽실하더군요. 집배원인 줄 알면서도 왜냐고 물었더니 택배가 왔다며 수취인 확인을 했습니다.

 

a  딸이 보내준 ‘찰보리빵’. 한결 성숙한 딸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는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딸이 보내준 ‘찰보리빵’. 한결 성숙한 딸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는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 조종안

딸이 보내준 ‘찰보리빵’. 한결 성숙한 딸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는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 조종안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딸(83년생)이 보낸 어버이날 선물인 것 같았습니다. 사인을 해주고 상자를 받아들고 거실로 걸어오는데 콧노래가 나오더군요. 무엇이든 선물은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니까요.

 

지체할 것 없이 뜯어보았는데요. 짙은 커피색의 '찰보리빵'이었습니다. 제가 빵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보낸 모양인데, 가게에서 금방 쪄낸 찐빵이나 만두를 좋아하지 고급스러운 빵은 별로거든요. 그래도 챙겨주는 딸의 정성이 고마웠습니다. 

 

어버이날 걸려온 딸의 전화

 

어버이날이던 지난 5월 8일 오전, 아내와 함께 있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200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딸이 어버이날 전화를 해온 것은 처음이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아빠, 어버이날이어서 전화했어요. 축하해요. 많이는 보내지 못하고 5만 원 보내드릴 테니까 엄마랑 두 분이 나가셔서 식사라도 하세요. 그리고 이달(5월)에 한번 내려가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날짜는 정하지 못하지만 내려가면 그때 뵈어요!"

 

딸의 전화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굴비를 천정에 대롱대롱 메달아 놓고 눈요기만 하면서 밥을 먹었다는 자린고비에 버금가는 딸이 어버이날 돈까지 보내준다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할머니와 큰 아빠, 큰외삼촌에게도 인사전화를 하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어제(10일)는 퇴근한 아내가 방에 들어서더니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권 지폐 한 장을 건네주더군요. 깜짝 놀라면서 무슨 돈이냐고 물었더니 딸이 10만 원을 보냈는데 나눠 갖자고 하기에 허허 웃으면서 그렇게 하자며 받았습니다.  

 

처음엔 5만 원을 보낸다고 하더니 생각해보니까 안 되겠는지 10만 원을 보냈더군요. 자린고비가 통이 커진 것인지, 아니면 적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내와 웃었는데요. 현금에 찰보리빵까지 받고 나니까 어버이날 선물치고는 너무 푸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딸에게 돌아가야 할 용돈

 

보리빵을 하나 꺼내 입에 넣으려니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몇 년이 지나도록 용돈은커녕 내복 한 벌 받아본 적이 없다가 작년 생일 때 처음으로 용돈을 받고, 이번이 두 번째였거든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는데요. "작년 아빠 생일 때 빌려간 1만 원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생일 전날 서울에서 내려온 딸이 봉투를 주면서 "집에서는 10만 원을 넣었어요. 그런데 오면서 점심을 사먹느라 9만 원이에요. 1만 원은 제가 빌려간 것이니 훗날 드릴게요!"라고 하더군요. 기쁘면서도 어이가 없었는데요. 아무튼,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꿩 구워먹은 소식입니다.

 

명절에도 현금카드만 하나 달랑 가지고 고향에 내려오는 딸, 그런 딸에게 용돈 받기는 절에서 쇠고깃국 얻어먹기보다 어렵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생일에 처음으로 용돈 9만 원을 받았고, 엊그제는 두 번째로 5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모아놓고 있습니다. 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함이지요.

 

딸은 어렸을 때 세뱃돈을 받거나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용돈을 주면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했고, 저는 돈이 급하면 그 돈을 찾아다 썼습니다. 급하다는 핑계로 허락도 없이 자식 돈을 가져다 쓴 아버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은행에 저축한 돈을 챙기는 딸에게 "아빠가 급해서 찾아 썼다!"고 해도 한 번도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10년이 넘도록 마음에 걸려 언젠가는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흘리개 시절 이야기인데요.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몇 달이 지나서 달라고 하니까 키워주고 먹여준 밥값을 내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결국 받지 못했는데요. 그렇게 아픈 경험이 떠올라, 자식 용돈을 가져다 쓴 것도 빚이니 갚아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부녀(父女) 사이라고 하지만, 계산은 정확하게 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는 생각입니다. 해서 작년 생일과 올 어버이날에 보내준 용돈을 서랍에 보관하고 있고, 앞으로도 딸이 주는 용돈은 모두 모으려고 합니다. 얼마나 모을지 모르겠지만.

2010.05.12 10:36ⓒ 2010 OhmyNews
#어버이날 #용돈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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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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