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천안함은 결국 덫이 되고 말았다

등록 2010.05.24 13:18수정 2010.05.2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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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투 경험을 가진 베트남 참전 용사다. 소총중대 전투병으로 수류탄도 던져보고 크레모어도 터뜨려 보았다. 박격포탄과 105밀리 곡사포탄 터지는 것도 숱하게 보았다. 오늘 천안함 사건 속에서 전투경험 없는 직업군인들의 한심한 모습을 본다. 물론 사병 출신과 장성들은 격이 다르겠지만, 나이로나 군대 경험으로나 한참 후배들인 그들을 보면서 애처로운 느낌을 갖는다.

 

어깨에 번쩍거리는 별을 단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패장임을 자처한다. 자신들이 경계에 실패한 패장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열심히 증거를 만들고 또 그것을 상세히 설명한다. 적군의 신출귀몰한 능력에 무참하게 당했음을, 단 한 방의 어뢰로 초계함이 두 동강나 침몰하고 46명이 졸지에 목숨을 잃은 그 참패 사실을 세상에 속속들이 드러내고 모든 국민들이 믿게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참으로 기기묘묘하고도 이해 불가능한 일이다.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아예 교전도 해보지 못하고 당했다면 얼굴도 들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사과 한마디도 없다. 귀신 같기만한 북한군의 놀라운 기술력과 신통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고, 어뢰 잔해(?) 하나 찾은 것이 무슨 큰 전과라도 되는 양 기고만장 의기양양한 태도로 '결정적 증거물'이라고 강변한다.

 

하여간 수고가 컸다. 자신들이 패장임을 증명해 보인 그 수고는 동서고금을 통해 어쩌면 처음 있는 일로서 전사에 길이 빛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해서 말인데, 이왕 그렇게 자신들이 패장임을 드러내 보였으니 그 용맹한 감투 정신으로 자신들이 대한민국 군형법 22조와 35조 1항의 적용 대상임도 밝혀 주었으면 싶다. 그래야 그 수고가 온전해지지 않겠는가.

 

참고로, 대한민국 군형법 제22조는 "지휘관이 그 할 바를 다하지 아니하고 적에게 강복하거나 부대, 진영, 요새, 함선 또는 항공기를 적에게 방임한 때는 사형에 처한다"이고, 제35조 1항은 "지휘관 또는 이에 준하는 장교로서 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적과의 교전이 예측되는 경우에 전투준비를 태만히 한 자는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임을 주지시켜 준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찾기 위한 조사가 진행될 때 인터넷 상에서 어떤 이는 이런 제안을 했다.

 

"가장 명쾌한 방법이 하나 있다. 북한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천안함과 똑같은 폐군함에 태우고 어뢰 한번 쏘아보는 거다. 고막이 터진 병사도 하나 없고, 코피 흘린 병사도 하나 없고, 인양된 함미 속의 시신들도 말짱했으니 걱정할 게 없지 않은가. 그게 너무 극단적이고 겁이 난다면 빈 폐군함에 어뢰 한번 쏘아보자. 천안함과 비슷한 형태로 파괴된다면 그건 어뢰 공격이 맞다."

 

나는 북한군 어뢰 공격의 결정적 증거물이라고 제시되는, 쌍끌이 어선이 그물로 건져 올렸다는 어뢰 잔해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비슷한 성능의 어뢰 하나를 바닷물 속에서 한번 터뜨려 보자. 그 어뢰에는 유성 매직펜으로 '1번'이라는 글자도 새겨 보자. 폭발한 어뢰가 추진체와 프로펠러가 남아 있는 상태라면, 또 '1번' 이라는 글자도 선명하고 온전하게 남는다면 그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시험 폭발한 어뢰가 추진체와 프로펠러도 남지 않고 완전 분해되었다면, 그리고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는 북한 어뢰라서 그렇게 추진체와 프로펠러가 남았다면, 북한은 어뢰의 추진체와 프로펠러가 온전히 남을 정도의 폭발만으로도 초계함을 두 동강낼 수 있는 신비한 괴력의 어뢰를 개발했다는 얘기가 된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닷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서 녹이야 쓸었지만, 추진체와 프로펠러와 '1번'이라는 유성 매직펜 글자가 멀쩡하고 선명한 어뢰 잔해(?)를 가지고 1200톤 초계함을 두 동강낸 증거물이라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설명하는 저 전투경험 없는 군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다.

 

거기에서도 정략의 그림자를 본다. 음울한 정략의 그림자 속에는 오늘 당장만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지 않는 단순함의 관성이 응축되어 있다. 그 치졸한 정략 때문에 천안함 조사발표는 사상 최대의 '쇼'가 되고 말았다. 그 쇼가 일정 부분 성공하여 '6·2지방선거'에 덕을 본다 하더라도 오늘의 제 무덤파기가 영구히 감추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서 불현듯 1987년의 대한항공 폭파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KAL기 폭파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든 다른 누구의 소행이든(희생자 유족들은 다른 누구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 희생자의 주검은 물론이고 비행기 잔해 한 조각도 찾지 못하여 '영구미제시건'이 되기가 쉬웠다. 하지만 천안함의 경우는 인양한 절단 선체도 있고, 생존자들도 수십 명에 이르고, 감추고 있는 것들이며 갖가지 증거 자료들이 많고도 많다. 언제든지 진실을 복원할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하다.

 

바로 그런 가능성이 미래에 더욱 엄청난 짐이 될 것이다. 설령 한나라당이 재집권을 한다 하더라도 정권과 정권 사이에는 정치공학이 존재한다. 전 정권이 만들어놓은 짐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은 당연지사다. 전두환의 동지이자 후계자인 노태우는 바로 그런 정치공학 때문에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냈다.

 

MB는 지금 당장의 북풍 효과만을 생각하고 단호함을 가장하는 담화문이나 발표할 계제가 아니다. 진정 북한 소행으로 믿는다면 한가롭게 담화문이나 발표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그 예산을 국방비 증액으로 돌려야 한다. 미국 해군과 한국 해군을 졸지에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가공할 기술력과 신통력을 지닌 북한에 능히 맞설 만한 신무기라도 개발해야 하고, 또다시 당하지 않을 초계 능력과 전투력을 키워야 한다.

 

철학과 정치력 부재로 말미암아 MB는 오늘 또하나의 엄청난 사단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6·2지방선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오늘의 사단을 추스르는 일은 대단히 버거울 것이며, 그에 따라 국민들의 고통도 커질 것이다. 그러기에 천안함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더더욱 불행한 '덫'이 되었다.

2010.05.24 13:18 ⓒ 2010 OhmyNews
#천안함 #어뢰 #북풍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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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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