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호국추모실 복도 양 옆으로는 6·25 전쟁영웅 21명의 흉상이 놓여있다.
청와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지난 24일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면서 남북관계와 군사·외교 분야를 망라한 대북 강경조처를 담은 '5·24 조치'를 발표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다음날 즉각 남한과의 모든 관계 단절을 선언한 8대 대남조치를 발표했다. 단절과 압박, 그리고 제재를 근간으로 한 5·24 조치가 한반도 평화와 안보 전선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것이다.
이 대통령도 담화에서 80년대 북한이 저지른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83년 10월)과 KAL 858기 폭파 사건(87년 11월)을 언급했지만, 돌이켜보면 4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6·25전쟁까지 치른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가 '평화공존 관계'로 바뀐 것은 불과 20년 상관이다.
80년대 후반 탈냉전 흐름을 타고 북방정책을 편 노태우 정부와, 민족과 동맹 사이에서 냉·온탕을 오간 김영삼 정부를 거쳐, 일관된 화해협력정책을 편 김대중 정부와 그것을 평화번영정책으로 계승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4개 정부는 한반도 평화유지와 증진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지난 4개 정부가 20년 동안 일궈 놓은 평화공존의 밭을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4일 만에 뒤엎어버렸다.
'5·24 조치'는 '독립선언' 아닌 한반도 '저강도 전쟁' 선언사태의 해결보다는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큰 5·24 조치를 두고 일부 보수언론은 화살표까지 그려가며 '6.15(2000년 남북공동선언)⇒5.24(2010 천안함 선언)…대북정책 10년 만의 대전환'이라며 마치 '독립선언'이라도 한 양 치켜세웠다.
지난 2002년부터 '정부 예산 1%, 대북 지원에 쓰자'는 어젠다를 주창해온 이 신문에게 정부예산 1%는 단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맞춘 '코드'이거나 사주의 유엔 사무총장 입신양명을 위한 '패션'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 같은 변신이 종합편성채널 선정에서 물을 먹은 뒤에도 계속 유지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종편'에 목을 맨 조중동 보도행태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미디어감시운동이 필요하다).
5·24 조치에 담은 '천안함의 전과 후는 확연히 다르다'는 메시지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는 이제 단절과 압박, 그리고 제재를 근간으로 한 사실상의 '저강도 전쟁'에 돌입했다. 신문 1면에 등장한 '군, 대북심리전 재개→북 "확성기 조준격파"→김태영 "그러면 자위권 발동"'이라는 제목과 또 다른 화살표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는 언제든지 전쟁으로 돌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쟁을 감수한 이 같은 조치의 목표는 김정일 정권의 돈줄을 죄고 압박해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의도와 달리 고통의 대부분은 북한 인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이 정부는 단절과 압박, 그리고 제재의 고통을 못 견딘 북한 인민들이 봉기라도 일으켜 체제에 균열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전 인민의 '고난의 행군'으로 단련된 북한 경제는 고통 분담에 익숙해 있다.
대북교역의 전면 중단은 6·15 공동선언 이후 10년간 남북교역이 크게 늘어난 만큼 이를 차단해 북한이 챙겨온 돈줄을 죄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그러나 대북 담화발표 및 기자회견에서 통일부장관조차도 "남북교역이 중단됨으로써 우리 남북교류에 종사했던 기업들의 일부 피해가 다소 예상 된다"고 밝혔지만, 대북교역 전면 중단은 당장 수백 곳에 이르는 영세 대북교역업체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기는 '자해(自害) 조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교역 전면중단은 교역업체와 서민에게 고통 전가하는 '자해 조치'이를테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은 32.3%로 중국의 49.5%에 이어 2위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농수산물 반입금지 등 교역중단으로 북한이 입을 외화손실은 연 2억5000만 달러 정도다. 북한은 조개류 품목 하나로 남한을 상대로 54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이를 묶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바지락 시장에서 북한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이른다. 새만금 같은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서해에서 바지락 채취가 많이 줄고 환경 악화로 폐사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지락 반입을 금지해도 북한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중국에 팔면 그만이고 중국의 수산물 중개업자들은 북한산을 수입해 남한에 되팔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산이 중국산이 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가격이 올라간다. 북한산은 민족 내부거래이기 때문에 관세를 물지 않지만 중국산이 되면 관세를 물기 때문이다. 남북교역이 이뤄진 후 중국산 농수산물이 별의별 편법을 써서 북한산으로 둔갑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무관세 혜택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산 반입에 제재를 가하면 '북한산'은 '중국산'이 된다.
그 많은 바지락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세를 물고 들어온, 겉만 중국산인 북한산 바지락 때문에 국내 바지락 가격만 올라간다. 북한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중국 무역업자들은 예상치 않은 중개업으로 호황을 누린다. 정작 고통을 받는 사람은 남한의 대북교역업체와 바지락 칼국수를 즐기는 서민들이다.
그게 어디 바지락뿐일까. 남북 농수사물교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늘·버섯·새우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이 정부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바지락의 경제학'(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동북경제권' 탄생과 한반도 질서 전환"에서 발췌 인용)이다.
결국 남북교역 전면중단과 대북 제재는 김정일 정권에 고통을 안겨 굴복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남한의 대북교역업체들과 서민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자해행위로 끝나고,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이끌어 북한의 대중국 의존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MB의 한반도 평화 유지·증진 성적표는 '낙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