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난 안 추운데 이거 입어요"

가난한 동네, 부자 아이들 이야기

등록 2010.06.05 12:19수정 2010.06.0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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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부자동네 옆 '가난한 동네'라고 일컫는 곳에서 1년여 정도를 '쌤~'으로 불렸었다. '한집 건너 한집이 결손가정'이란 말을 들을 정도의 환경을 지닌 동네였는데, 인근에 이름 있는 유명한 대형학원이 있었지만 내가 있던 곳은 학원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꽤 많은 아이들이 우리학원엘 다녔다.

 

그리고 가난한 동네였던 만큼 내 통장에 찍히는 한 달 월급의 동그라미 숫자도 다른 곳보다 딱 하나가 작았는데, 그럼에도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을 그 곳에서 보내게 됐다. 등록금 마련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던 학원 일이라 월급이 적어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그리 흘러 버린 것이다. 아마 고향에 내려와야 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쩌면, 복학해야 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더 오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던 것만큼 학원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요즘 아이들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학력평가 등등 1년에 꽤 많은 중요한 시험들을 치른다. 그래서 시험 자료를 만들고, 주말엔 보충수업도 하고 생각보다 바쁜 학원 선생님이 돼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학원 아이들의 집에 전화를 해 밀린 학원비를 좀 '보내달라'고 사정하는 일이었다. 입에 침을 바르고 하는 소리인 '주로 말씨 좋고, 착하게 생긴 사람이 한다'는 부원장선생님의 등살에 떠밀려 하게 된 일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가난한 동네였기에 백 만원 정도의 학원비가 밀린 집도 있었고, 밀린 학원비를 채 다 내지도 못해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는 일도 있곤 했다.

 

좀 더 크게 느껴지는 아이들이 주는 감동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마치면 항상 학원으로 뛰어 왔다. 집에가도 텅 빈 집이 대부분이고, 마땅한 놀거리도 없었기 때문에 학원은 아이들에게 항상 놀이터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항상 교실 정리정돈을 미리 해두곤 하는데 그날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게 있다면 무엇보다 벌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벌레를 싫어하고 또 무서워한다. 나보다 수만 배는 작은 존재지만 뭐 그리 겁이 나는지 죽은 벌조차도 치우지 못해 학원 교실 청소를 하다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초등부 1학년 근오가 보였다.

 

"근오야, 쌤 좀 도와줘..."

 

근오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타나더니 "아직 살아있는것 같아요~"하며 창문밖으로 던져 보내줬다.

 

"우와, 근오 멋있다! 완전 남자네!"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자 어깨를 으쓱하며 멋쩍어 하던 근오. 괜히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고 멋있어 보이던지.

 

학원은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다. 작은 학원이다 보니 원장선생님께서 세세한 것 까지 아껴 왠만한 추위에는 쉽사리 난방기를 틀지 않았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분필 잡은 손까지 덜덜 떨어가며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현기는 자기가 입던 패딩점퍼를 벗고는 이렇게 말했다.

 

"쌤, 난 안 추운데. 이거 입어요!"

 

정말이지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7-8세용 아동용점퍼가 맞을 리가 없거늘 그렇게 챙겨주는데 정말이지 눈물이 핑 돌 뻔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서로를 챙겨주길 좋아했고, 또 먹는 욕심도 그리 크지 않았다. 나눠먹기를 좋아했고, 내가 함께 먹는 걸 좋아해서 빼빼로데이에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받은 빼빼로를 몽땅 가져와 나에게 주곤 했다. '놀토'에 학교에서 떡볶이를 만들면 비록 다 식어서 맛은 없었지만 봉지에 담아 가져와 함께 먹었다.

 

초등부 아이들의 눈과 말은 정말이지 내 코 끝을 찡하게, 마음이 짠하게 만들어 준 적이 많다. 6개월 정도 학원엘 다니던 초등부 1학년 동빈이가 그만두고 한달 후쯤. 아이들의 동빈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 쌤도 동빈이 보고싶다~"

 

그러자 갑자기 찬우가 "쌤, 동빈이 사랑해요?"라고 놀라 묻는다. 그래서 "왜~?"라고 했더니,

 

"보고 싶어 하면 사랑하는 거잖아요."

 

지금도 주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가 한말이라서 좀 더 크게 감동받는 것 같다.

 

"그래, 나도 사랑하는 너희들이 보고 싶구나."

 

1년여의 시간은 비록 토익 성적을 올리거나, 어학연수 등 나를 위한 스펙을 쌓는 데 영향을 주진 못했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게 있어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부자였다. 그것도 많이 베풀 줄 아는 부자. 소중한 기억이며, 따뜻한 말까지 어른도 주지 못할 돈보다 값진 것들을 내게 선물했다. 그런 마음들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값지고 큰 보물이었다. 부자 마음 아이들, 요즘 들어 자꾸 생각이 난다.

2010.06.05 12:19ⓒ 2010 OhmyNews
#학원 #어린이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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