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가정 파탄낸 5천만원 치료비
<사랑의 리퀘스트> 출연도 소용 없어

[1만1000원의 기적①] 치료비 없어 목숨 잃은 청년 이야기

등록 2010.06.17 09:53수정 2010.06.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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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는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민이 어떤 질병에 걸려도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이다. 이들은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 손을 벌리기에 앞서 국민 스스로 보험료 부담을 조금 더 늘리자고 제안하고있다. 지금보다 건강보험료를 1인당 월평균 1만1000원 올려서 모든 사람이 필요한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한다는 것. <오마이뉴스>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료복지혁명을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심도있게 고민해본다. 첫번째는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의 글이다. [편집자말]
세상에서 먹을 것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60년대 보릿고개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최근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치료방법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해 죽는 환자들은 지금도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백혈병 치료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회원이었던 한명흠(36)씨는 2004년 6월경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융자를 조금 받기는 했지만 조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할 정도로 돈을 모은 청년이었다. 한씨는 백혈병 진단 후 8개월 동안 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했고, 그 비용은 5000만 원이었다. 저축한 돈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치료비를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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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은 평균 4000~8000만원의 치료비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고액 중증 질환이다. 사진은 한 백혈병 환자의 치료 명세서. ⓒ 한국백혈병환우회

그러나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 사이 융자금과 대출금을 납입하지 못하자 결국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다. 당연히 살던 아파트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비가 줄줄 새는 집에서 삶을 연명하다가 2000만 원만 있으면 받을 수 있었던 골수이식을 받지 못하고 끝내 지난 2009년 하늘나라로 갔다. 아들과 형을 살려보겠다고 카드 대출까지 받았던 그의 부모와 동생 두 명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고액의 백혈병 치료비는 한명흠씨 가정 전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렸다. 한명흠씨는 고액의 치료비 때문에 1년 만에 중산층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계층하락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정부로부터 매월 1인당 평균 27만 원의 생계급여를 받으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를 면제받는 의료급여 혜택도 받는다. 보건소에서는 년간 100만 원씩 의료비 지원 혜택도 받는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생계급여, 의료급여, 치료비 지원 혜택 등을 받는다 하더라도 연간 4000만~8000만 원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는 없다.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하거나 민간복지단체의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최고 2000만 원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백혈병에 걸리면 한명흠씨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산층의 경우에는 적금을 깨거나 집을 팔아서라도 어떻게든 백혈병 치료는 받겠지만 고액의 치료비로 가계는 파탄 나고 차상위계층이나 최하층의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한다.


백혈병 완치 가능하지만 문제는 '돈'

지난 5월 통계청으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2500명이 신규로 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예전에는 백혈병이 불치병이었지만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항암치료 또는 골수이식만 잘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 이처럼 치료 성적은 좋아졌지만 문제는 치료비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백혈병 환자는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비용으로 연간 4000만~8000만 원이 필요하고 재발해서 재이식을 받게 되면 치료비는 억 단위로 넘어간다. 치료비 이외에도 투병과 간병으로 환자와 환자가족은 직장을 퇴직하거나 휴직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비도 고스란히 부채가 된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단의 연구에 의하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암 환자 1인당 평균 치료비는 2975만 원에 이르고 그 중 '백혈병'의 경제적 부담이 6700만 원으로 가장 컸다. 다음으로 간암 6623만 원, 췌장암 6372만 원, 뇌 및 중추신경계암 5295만 원, 다발성골수증 4716만 원 등의 순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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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이 약값은 한달에 280만원에서 560만원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백혈병, 암 등 고액 중증질환으로 투병 중인 환자가 있는 가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처음에는 저축한 돈으로 치료비를 감당하다가 다음에는 집을 팔아 전세나 월세로 이사 가고 그 다음에는 은행이나 카드회사에서 대출을 받는다. 장기간 투병으로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면 마지막 단계로 신용불량자가 된다. 환자는 대개 중산층에서 차상위계층을 지나 최하층의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만다.

백혈병, 암 등 중증질환 환자들이 고액의 치료비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본 가족이나 친척, 친구, 직장 동료들은 자기에게도 언제 이런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김경민(가명)씨는 2005년 미국인 골수를 이식 받았다. 골수 채취비 4000만 원과 골수이식비 6000만 원 등 총 1억 원의 치료비가 들어갔다. 그러나 경민씨는 1년 만에 백혈병이 재발했다. 재이식을 받아야만 완치가 가능했다. 감사하게도 독일에서 100% 일치하는 골수기증자를 찾았다.

문제는 이번에도 돈이었다. 골수채취비 3000만 원과 골수이식비 7000만 원이 있어야 했다. 1억 원을 병원에 선납해야만 골수이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척과 이웃에게 빌리고 대출까지 받아 보았지만 1억 원에 미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경민씨는 결국 재이식을 받지 못했고 2006년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경민씨 어머니가 나를 붙들고 '민간의료보험 한 개 들어주지 못해 자식 년 죽게 만든 못난 엄마'라며 자책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민간의료보험, 고액병원비 불안 해소 못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2%에 불과한 현재의 상황에서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민간의료보험이 환자들의 고액 병원비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보험가입을 시키지만 막상 환자가 질병에 걸리면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질환이 있는 환자는 당연히 가입이 안 되고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특정질환에 걸려도 가입이 제한된다. 무엇보다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

나의 아내는 2001년 11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년 동안 치료비로 4000만 원을 지불했다. 당시 공부를 하고 있던 나에게 4000만 원은 감당할 수 없는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이 있었다. 백혈병 진단금으로 1500만 원, 수술비로 500만 원, 입원료로 500만 원, 총 2500만 원을 받았다. 나머지 1500만 원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했다.

그런 아내는 2006년부터 백혈병 재발을 막기 위해 '글리벡'이라는 표적항암제를 먹고 있다. 이 약값이 한 달에 280만 원에서 560만 원이다. 민간의료보험에서는 한 번만 진단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에서 더 이상의 치료비를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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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에 얽힌 충격적 사실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상영한 마이클무어 감독의 ‘식코(SICKO)’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다행히 지금은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환자는 매달 5%에 해당하는 14만 원의 약값만 지불하면 된다. 만일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매달 280만 원, 연간 3400만 원의 약값을 부담해야 하고 나의 월급으로 아내를 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아내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생명줄과도 같다. 그런데 매년 약제비가 두 자리 숫자로 고속 증가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건강보험 재정이 바닥나서 글리벡과 같은 고가 의약품이 비급여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하다. 그렇게 되면 아내는 "살 수 있는 치료약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죽어야 하는 '세상에세 굶어 죽는 사람 다음으로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득, 2008년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에 얽힌 충격적 사실을 한국 사회에 폭로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가 떠오른다. 두 손가락이 절단되어도 비싼 수술비 때문에 한 손가락만 수술받고 나머지 한 손가락의 수술은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과연 미국에만 국한된 것일까? 더 늦기 전에 국민건강보험제도 하나만으로도 병원비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입니다.


덧붙이는 글 안기종 기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입니다.
#건강보험 #백혈병 #식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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