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91) 국가와 나라

[우리 말에 마음쓰기 930] '망자-망인'은 우리 말이 아니다

등록 2010.06.16 11:18수정 2010.06.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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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망자와 죽은 사람

.. 망자가 남긴 사진 속에는 망자의 삶과 시간이 있다. 사진이 죽은 사람을 되살려 낸다 ..  <진동선-노블 앤 뽀또그라피>(시공사,2005) 81쪽


"사진 속에는"은 "사진에는"으로 고쳐씁니다. "망자의 삶"은 "죽은 이가 보낸 삶"이나 "죽은 이가 살았던 자취"로 손질합니다. '복원(復元)한다'라 하지 않고 '되살려 낸다'라 한 대목은 무척 반갑습니다.

 ┌ 망자(亡者) = 망인(亡人)
 │   - 망자에 대한 목멘 슬픔 /
 │     기왕지사 망자는 망자이거니와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게 아니냐며
 ├ 망인(亡人) : 생명이 끊어진 사람. '돌아가신 이', '죽은 사람',
 │   '죽은 이'로 순화
 │   - 망인의 명복을 빌다 / 부인까지 망인이 된 후에도
 │
 ├ 망자가 남긴 사진
 │→ 죽은 이가 남긴 사진
 │→ 죽은 분이 남긴 사진
 │→ 죽은 사람이 남긴 사진
 └ …

흔히 쓰는 말일지라도 국어사전을 들추면서 낱말뜻을 곰곰이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으레 쓰는 말이더라도 국어사전을 살피면서 말쓰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쓰는 말마디를 옳고 바르게 가누지 않습니다. 흔히 쓰는 말일수록 더 아무렇게나 쓰기 일쑤요, 으레 쓰는 말마디인 까닭에 말쓰임을 깊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우리 말과 글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참다운 앎과 삶보다는 대학입시 성적표에 눈길을 두는 탓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제도권 학교가 대학입시에 목매달고 있다 할지라도, 이 땅 이 나라 국어교사를 비롯한 수십만 교사들은 아이들한테 참다운 말과 글을 바르고 곧게 가르치며 물려주어야 합니다. 말을 말다이 쓸 줄 알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어떤 학문을 하고 어떤 대학에 들어가며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 망자에 대한 목멘 슬픔
 │→ 죽은 이를 기리는 목멘 슬픔
 │→ 죽은 이를 생각하는 목멘 슬픔
 ├ 기왕지사 망자는 망자이거니와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게 아니냐며
 │→ 어차피 죽은 이는 죽은 이거니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 어차피 죽은 사람은 죽었거니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 …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망자'를 찾아보면 '= 망인'으로 뜻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돌림풀이가 되어 있는 슬픈 국어사전을 다시 뒤적여 '망인'을 찾아보면 이 한자말은 우리가 쓸 만하지 않기에 바르고 알맞게 고쳐서 쓰라며 몇 가지 글월을 붙여놓습니다.


그렇습니다. '망인'이든 '망자'이든 우리 말이 아니란 소리입니다. 우리가 쓸 말이 아니요, 우리 겨레를 빛내거나 보듬는 말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 죽은이 / 죽은사람
 └ 산이 / 산사람

곰곰이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죽은이'나 '죽은사람' 같은 한 낱말을 빚어내지 않았습니다. '죽은 이'나 '죽은 사람'처럼 띄어서만 적고 있습니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치겠느냐?"고 하는 상말이 있습니다. 이 때에 "산 입"이란 "산 사람"을 뜻합니다. 가만히 보면 '산입'이라는 새 낱말을 하나 일구어 "살아 있는 사람"이나 "살아남은 사람"을 가리키는 남다른 낱말로 삼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국어학자뿐 아니라 여느 자리 우리들 또한 우리 나름대로 알뜰살뜰 잘 쓰고 있는 말마디를 보살피지 못하다 보니, 이런 좋은 상말이 있어도 좋은 말마디 하나 더 북돋우는 쪽으로 걸어가지 못합니다. 아니, 아예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해야 맞습니다. 처음부터 생각하는 힘이 없거나 생각하는 기운을 스스로 내버렸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니까 국어사전 보기글조차 엉뚱하게도 '망자'하고 '산 사람'이라는 말마디가 잇달아 나옵니다. '생자(生者)'라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로는 "살아 있는 사람"은 '생자'입니다. 우리 말 아닌 한자말일 때에는 "죽어 버린 사람"은 '망자'입니다.

어쩌면 "산기슭이나 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산사람'이라고들 일컬으니까 살아 있는 사람까지 '산사람'이라 하면 헷갈릴 수 있다 여길 만합니다. 애써 좋은 우리 말마디 하나 빚을까 싶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만합니다.

 ┌ 멧사람
 └ 산사람

아무래도 적잖은 사람들은 '멧토끼' 아닌 '산토끼'를 말하며, '멧나물' 아닌 '산나물'을 말합니다. '멧절' 아닌 '산사'를 말하고, '멧봉우리' 아닌 '산봉우리'를 말합니다.

퍽 힘들다 할 텐데, 그렇더라도 우리들은 우리 깜냥껏 '멧사람'이라는 낱말을 써야 합니다. '산(山)'이라는 낱말은 쓰되, 토박이말 앞가지인 '멧-' 또한 알뜰히 살려서 '멧사람-멧일-멧나물-멧집-멧길' 같은 우리 말마디를 북돋워야 합니다. 얄딱구리하게 잘못 쓰는 겹말에 매이는 삶이 아닌, 아름다우며 빛나는 우리 말살림을 돌볼 줄 아는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ㄴ. 국가와 나라

.. 나우루 같은 나라에서는 국가가 부유하다면 그 국민도 부유하다 ..  <뤽 폴리에/안수연 옮김-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2010) 50쪽

'부유(富裕)하다면'은 '넉넉하다면'으로 다듬어 줍니다. "그 국민(國民)도"는 "그 나라 사람도"나 "이 나라에 사는 사람도"나 "사람들도"로 손봅니다.

 ┌ 국가(國家) :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主權)에
 │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
 │   -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노력하다
 │
 ├ 나우루 같은 나라에서는 국가가 부유하다면
 │→ 나우루 같은 나라에서는 나라가 넉넉하다면
 │→ 나우루 같은 나라에서는 나라살림이 넉넉하다면
 └ …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국가'를 찾아보면 퍽 긴 풀이말이 달려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토박이말 '나라'를 찾아보면 한 마디 풀이말, "나라 = 국가"만 달랑 실려 있습니다.

이 보기글을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나우루 같은 국가에서는 국가가 부유하다면"처럼은 안 적었으니 고마운 노릇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번은 '나라'로 적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보기글은 안타깝고 국어사전 말풀이는 슬픕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라 할 때에는 우리 말과 글 쓰임새를 밝히고 뜻과 새김을 나누는 넋과 매무새가 서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깎아내리는 엉터리 말풀이가 아닌, 우리 말맛을 살리고 말멋을 일구는 참다운 말풀이로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문학이나 영화나 춤이나 노래나 사회를 밝힌다고 할 때에 속깊으며 아름다운 우리 삶이 알알이 배인 문학이나 영화나 춤이나 노래나 사회를 보여주도록 애써야 하듯, 우리 말을 밝힌다고 할 때에도 우리 말삶을 알알이 담도록 애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우리 겨레는 그예 슬프고 자꾸 슬프며 끝까지 슬프기만 하면서 말이 망가지고 글이 뒤죽박죽이 되도록 손을 놓고 있구나 싶습니다. 말을 사랑하는 손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글을 돌보는 손품을 만나기 힘듭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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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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