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사라진 애기똥풀 씨앗, 범인은 개미들?

개미살포식물, 애기똥풀 이야기

등록 2010.06.17 10:42수정 2010.06.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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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기운이 완전히 걷힌 봄에 피는 애기똥풀꽃은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서 한 포기 자체로는 단아한 맛이 덜합니다. 하지만 줄기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다시 작은 줄기를 뻗어 가지마다 4장의 노란꽃잎을 가진 황색에 가까운 꽃을 피웁니다. 어디고 지천인 꽃이지만 무리지어 만개하면 봄 햇살을 받은 명도 높은 노란색에 눈이 부셔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는 그 옆을 지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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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골 길가의 애기똥풀꽃 ⓒ 이안수


줄기가 비어있어 작은 쓸림에도 몸이 꺾기기 쉽고, 속이 빈 탓에 한번 꺾인 줄기는 다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줄기나 잎을 꺾었을 때 나오는 유액의 색이 애기똥과 같은 색이라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황금색 유액은 손에 묻으면 물로 쉽게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까치다리라고도 하는데 줄기가 가지 친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알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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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의 4장의 꽃잎을 가진 애기똥풀꽃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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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부러진 자리에서 흘러나온 황색의 유액. 이 때문에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 이안수


한국이 원산인 이 꽃은 해를 넘겨 다음 해에 꽃을 피우는 두해살이 월년초이지요. 어릴 적 심부름으로 들을 오가는 중에도 논둑 비탈의 돌 틈에서도 흔들리던 꽃이었고, 얕은 물가에서 족대로 피라미를 후리다가도 고개를 들면 코끝에 와 닿던 추억의 꽃이기도 합니다. 자주 보는 친구에게 정이 가듯, 이렇듯 흔해서 더 정이 가는 들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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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이웃마을의 450년된 느티나무 가에도 애기똥풀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흔한 들풀입니다. ⓒ 이안수


저는 저희 집 앞 길가에서 작게 무리를 이룬 애기똥풀이 매년 조금씩 그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보고 이 꽃은 어떤 방법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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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골 길가의 애기똥풀꽃. 매년 그 영역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습니다. ⓒ 이안수


모든 식물은 씨앗을 멀리 보내서 자손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기를 원합니다. 같은 지역에서의 생존 다툼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고 새로운 세력권을 만드는 것은 모든 종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 불가능한 식물들이 그 종자를 퍼뜨리는 방법으로는 꽃받침을 변형시켜 솜털모양의 털을 만든 다음 씨앗을 바람에 날리게 하거나, 가시로 동물들의 몸에 붙어 이동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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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과 칡 사이를 살피면 한 달전에 피었던 꽃들이 씨앗을 가득 담은 꼬투리로 남았습니다. ⓒ 이안수


애기똥풀의 열매들을 살펴보니 여러 줄기의 작은 콩꼬투리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속을 보니 자그마한 검은 씨앗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꼬투리 때문에 돌콩처럼 씨앗이 완전히 익고 꼬투리가 마르면 깍지가 뒤틀리며 터져 씨앗을 허공으로 날리겠거니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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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의 꼬투리 ⓒ 이안수


저는 한 식물학자와의 만남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 자손을 퍼뜨리는 방법이 있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젤리 상태의 지방산 덩어리인 '엘라이오좀eliaosome'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엘라이오좀에는 개미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는 지방, 단백질,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서 개미들이 이 엘라이오좀을 먹기 위해 씨앗을 개미집으로 옮겨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제비꽃과 엘레지 그리고 이 애기똥풀은 그 씨앗에 엘라이오좀을 붙여놓아 개미들을 유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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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를 터뜨려 나온 애기똥풀 씨앗. 흰색 부분이 개미들이 좋아하는 엘라이오좀 부분입니다. ⓒ 이안수


그러므로 애기똥풀은 개미들의 힘을 빌려 영역을 확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미를 이용해서 씨앗을 옮기는 식물을 '개미살포식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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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씨앗을 물고 가는 개미. ⓒ 이안수


개미살포식물들은 씨앗에서 엘라이오좀만을 떼어가는 악동 개미들을 막기 위해 씨앗에서 엘라이오좀만을 떼어내면 쉽게 건조되어 부피는 물론 맛과 영양가도 함께 줄어들도록 되어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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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씨앗을 물고 가는 개미 ⓒ 이안수


개미는 결국, 애기똥풀의 의도대로 좀 무겁지만 씨앗을 함께 옮겨가야합니다. 개미집으로 애기똥풀의 씨앗을 옮겨간 개미들은 집에서 엘라이오좀만을 맛있게 먹고 씨앗은 내다버리게 되지요. 보편적으로 개미가 집을 짓는 곳은 토양도 좋아 새싹을 틔우기도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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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이 경과하여 다시 가보니 씨앗은 모두 옮겨지고 씨앗에서 분리되었던 엘라이오좀을 찾아 배회하는 개미들만 남아있습니다. ⓒ 이안수


저는 오늘 5월 초에 꽃이 만개했던 곳에서 그 씨앗 꼬투리를 채취하여 사진 찍기 좋도록 칡잎 위에 그 깍지를 터뜨려 개미집 근처에 두어보았습니다. 순식간에 개미들이 몰려들어 그 씨앗을 개미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불과 10분 만에 몇 개의 깍지를 깐 수십 개의 씨앗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공평한 거래인가요. 분명 내년 봄에는 모티프원의 이 개미집 근처에도 애기똥풀이 싹을 틔우게 되겠지요.

저는 자연속의 식물과 동물의 이 오묘한 협력을 깨닫고 정원의 풀 한 포기도 밟기가 두려워졌습니다. 제가 모르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어떤 미물을 제 발바닥으로 밟아 그 질서를 깨뜨릴까 염려되어서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홀로 생존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제 마음 속에 잠시 미움이 싹트던 사람에게도 다시 웃음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헤이리 참나무골 길가의 천한 이름을 가진 애기똥풀과 서재로 침입하는, 박멸하고 싶었던 한갓 미물로 여긴 개미가 제게 웃음을 종용한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된다고……. 어깨동무하고 살아야 된다고…….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애기똥풀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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