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가까이하고 싶은
지구의 의욕이
마침내 산이 되어
여기에 다시 누억만년이 흐르는 동안
무한한 시련을 거득하여 왔으므로
꽃망울이 소리 지르고 터지는 아침...
- 김관식, <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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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이 따로 없네 ⓒ 김찬순
▲ 신선이 따로 없네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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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마음의 고향일까. 산에 오르면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다. 내가 등산을 시작한 것은 십년이 채 못 된다. 20대 나의 직장 생활은 휴일이 없었다. 그래서 가족과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었지만, 나만의 시간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 지천명을 아는 이 나이를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여여한 마음으로 이 산 저 산을 순례하고 있다.
지난 20일 경남 양산시 소재 천성산 자락의 내원사와 몇 몇 암자를 찾았다. 박두진 시인의 시구처럼 초록이 지쳐 철철 흐르는 듯한 짙루픈 산빛에 가슴의 켜켜이 묻은 때를 씻는 듯 시원했다. 그리고 내원사의 일원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천성산의 하얀 운무에 싸여 나는 잠시 신선이 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천성산은 '제2의 소금강'이라고 불리운다. 이 산의 경치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천성산의 재미있는 전설과 많은 유적들이 아닐까 싶다. 천성산은 산 그 자체가 자연예술문화재. 이런 천성산 내원사 일원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 8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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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명의 원효대사의 제자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천성산 ⓒ 김찬순
▲ 천명의 원효대사의 제자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천성산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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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지명 유래
초록이 지친 6월의 천성산은 이른 아침의 하얀 운무로 싸여 그 신비감을 더했다. 천성산은 삼국시대 신라문무왕 13(673년)에 원효대사가 참선에 들어 중국 대륙을 바라보다가, 그의 천안에 당나라 태화사라는 절의 1천 대중이 장마로 무너져 내린 흙더미에 묻힌 광경을 목격하고 이에 원효대사는 판자를 던진다.
그 판자가 바다 건너 중국 태화사의 하늘에 떠있는 것을, 법당 안에서 쳐다보게 된 대중들이 놀라 법당 바깥으로 뛰어나오자, 그때 뒷산이 무너져 내린다. 원효가 던진 판자에는 "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읽은 1천명의 대중이 원효를 찾아와 제자가 되길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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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천성사에는 원효 대사가 세웠다는 여러 암자들이 흩어져 있다. ⓒ 김찬순
▲ 지금도 천성사에는 원효 대사가 세웠다는 여러 암자들이 흩어져 있다.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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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는 1천명의 제자가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을 나왔는데, 그 자리가 현재 내원사의 산신각 자리라고 한다. 원효대사는 신선이 사라진 일대에 내원사를 비롯 89암자를 지어 1천명의 제자를 머물게 했다.
그리고 천성산 정상 부근에 큰 북을 달아놓고 북을 쳐 천성산에 머물고 있는 1천명의 제자들을 불러모아 설법을 열고 제자들에게 화엄경을 강론한다. 화엄경을 가르친 자리를 '화엄벌'이라 하며, 북을 친 곳은 '집북봉'이라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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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를 흔들며 ⓒ 김찬순
▲ 태극기를 흔들며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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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시 산을 오르던 중생들이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자, 원효대사는 산신령을 불러 칡넝쿨을 없앴는데, 오늘날에도 천성산에는 칡넝쿨이 없다고 한다. 그 당시 원효 대사 밑에서 수도한 1천명 제자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해서 천성산의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천성산 일대에는 내원사를 비롯해 원효가 세웠다는 안적암, 노전암 등 여러 암자가 산재하고 있다. 천성산은 부처님의 품처럼 그 품이 넓다.
정식 산행코스만 해도 무려 9개나 된다. 산길과 산길 사이로 작은 오솔길도 많다. 산길이 많은 천성산. 그래서 산길이 닿는 곳이면 무작정 걸어가 보고 싶은 이 나그네에게 미혹의 손짓과 같다. 약간 헤매다가 다시 길 찾아 걷다가, 이빨 다 드러내고 웃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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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만나 ⓒ 김찬순
▲ 장승 만나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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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를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 박두진, <청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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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소나무 ⓒ 김찬순
▲ 기묘한 소나무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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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운무 속에 잠긴 천성산은 오를수록 몸은 무거운데 마음은 가벼웠다. 태초의 자연을 느끼게 하는 천성산 정말 특이한 소나무들도 많았다. 소나무 세 그루가 한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마치 일가를 이루고 사는 한 식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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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산 2봉 정복 ⓒ 김찬순
▲ 천성산 2봉 정복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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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스님들이 머물고 있는 비경의 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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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원사 ⓒ 김찬순
▲ 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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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6·25 전쟁시 불탄 것을 1958년 수옥비구니가 재건하였다. 현재 5~6동의 건물이 아담하게 단장되어 있고, 70여명의 비구니가 상주 수도하는 명찰이다.
이 내원사 경내에서 진귀해 보이는 녹슨 가마솥 하나 만났다. 안내판에는 '이 가마솥은 내원사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동국제일선원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많은 눈푸른 납자들이 이곳에 정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녹슨 가마솥 이리 저리 살펴보면서, 어린 시절 내 어머니처럼 기름칠을 해서 닦아 부침개 해서 먹었으면… 하는 나이 답지 않은 생각을 불쑥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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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원사 보물 ⓒ 김찬순
▲ 내원사 보물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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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금고'는 내원사에 없네...
가마솥 걸린 곁에는 '도 유형문화재 58호 내원사 금고'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 금고는 모형이며 진품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통상 불구는 사찰의 행사 때 사용되는 모든 도구를 말한다.
금고는 이러한 불구 가운데 범종, 운판, 목어 등과 함께 소리를 내는 것으로 징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반자'라고 부른다. 양쪽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쇠북이라는 뜻에서 금고라고 부른다. 한쪽 면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반자'라고 한다.
내원사의 것은, 한쪽 면만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으로 가운데 부분에 2중선을 돌려 안과 밖을 구분했다. 안쪽 원에는 꽃문양이 새겨져 있고, 이 금고는 고려 전기의 금속 공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항상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나비처럼 가볍다. 마치 무거운 세상의 짐을 지고와서 산에 다 내려 놓고 돌아가는 듯 말이다. 내원사 내려오는 길에 주막 비슷한 곳이 있어 도토리 묵에 막걸리 몇 잔을 오랜만 산벗 없이 혼자 마셨다.
혼자라도 왠지 혼자가 아닌 듯 마음 가득찬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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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원사 ⓒ 김찬순
▲ 내원사
ⓒ 김찬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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