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죠? 협동이 경쟁보다 더 경제적인 걸"

[열리는 세상, 사회적 경제] 우리 동네 경제공동체 '푸른생활협동조합'

등록 2010.06.27 17:50수정 2010.06.27 17:50
0
원고료로 응원
21세기 우리 동네 경제공동체, '생협'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싹을 틔운 것은 신용협동조합이지만, 사실 그전에 오늘날 협동조합운동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마을단위의 경제 공동체인 '두레'와 '품앗이'가 존재했다.

품앗이가 다소 이기적인 측면이 부각된 공동체 질서라고 하면, 두레는 이타적인 측면이 강한 공동체다. 공동체가 오래 유지될 수 있는 배경에는 이기적인 질서와 이타적인 질서의 공존이 있었다. 오늘날 생활협동조합도 이 같은 연장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보다 10여 년 후인 1970년대 말부터였다. 당시 초기 생협운동은 농촌과 광산촌 지역에서 부족한 생활물자를 공동으로 싸게 구매하는 '소비조합' 형태였다. 그래서 명칭도 '소비자협동조합'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을 거치면서 소비자협동조합은 변화를 시작한다. 특히 사업 측면에서 친환경 유기농산물 직거래 사업을 시작하고, 조합운영 측면에서도 매장운영 방식이 아닌 조합원 조직화를 통한 공급방식을 취했다.

인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푸른생협 심형진 이사장은 "푸른생협은 1993년에 설립됐다. 당시 민주화운동 이후 여러 활동가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남은 활동가를 중심으로 지역으로 들어가 직접 주민을 만나고 주민과 밀착한 지역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생협을 창립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이 대세를 이뤘다. 그전에 이미 대형 유통업체들도 친환경 유기농 축ㆍ수산물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건강한 먹을거리인 '친환경 유기농' 제품의 확산에 누구보다 기여한 공로가 큰 집단이 사실은 생협이다.


생협이 본격화되기 전, 이미 농촌에서는 소규모 형태이긴 했지만 농민들이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판로가 없었다. 이에 지역으로 들어간 활동가들은 농민들에겐 판로를 열어 소득을 보전해주고, 소비자들은 건강한 먹을 거리를 소비할 수 있는 '얼굴 있는 관계'를 심기 위해 생협을 만들었다.

오늘날 생협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면서 생산자와 생협 간 마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조합원이 1만 명 이상 규모로 커지면서 초기 수백명의 조합원일 때보다 조합원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협의 창립정신 만큼은 유효하다.

심 이사장은 "당시에는 시장가격(=시중가격)보다 더 비싸게 구입하더라도 그렇게 구입하는 것 자체가 운동이었다. 조합원수도 적었지만, 조합 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합 활동보다 친환경 유기농 제품 구매에 치우쳐 있다. 이는 조합운동이 극복해야할 과제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동이 경쟁보다 더 '경제적'

a

푸른생협 푸른생협 심형진 이사장은 “물건을 팔려고 조합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 지역에 변화를 일구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 김갑봉


생협을 겉에서만 보면 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도 건강한 먹을 거리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내 그 생각이 짧았음을 느끼게 된다.

생협은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경제적 효과(=최소비용 최대효과)'를 바라보지 않고, 미래의 '경제적 효과(=지속가능한 경제)'를 내다본다. 생협은 조합이면서 비영리단체다. 그래서 매출 이익이 발생할 경우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하기도 하지만, 공익 목적에 맞는 사업에 다시 투자한다.

이를테면 대형마트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과 생협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소비자 측면에서는 둘 다 친환경 농산물 구매다. 오히려 생협에서 구매하는 게 소비자에겐 더 비싸 '비경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있다. 대형마트에서 소비된 자본은 곧 바로 유통재벌의 손에 들어간다. 그러나 생협에서 소비된 자본은 우리 동네에 재투자된다. 생협의 자본이 탄탄해지면 물품 판매 사업뿐만 아니라 도서관 운동, 인문학강좌 등의 사업으로까지 확장된다.

게다가 생협이 물품을 공급받는 친환경 농축수산물 생산자는 대부분이 영농조합 등 공동체이거나, 소농(小農) 들이다. 종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소농인데, 이 소농을 살리는 소비가 생협을 통해 가능하다. 이웃나라 일본이 소농 살리기에 집착하는 이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가 미래세대에도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돈' 중심의 경제 성장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속가능성은 경제구조의 안정성과 더불어 그 사회의 문화와 환경, 인적자원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른바 '사회적 자본'의 견실함과 궤를 같이 한다.

푸른생협 심형진 이사장은 "생협은 출자금 내고 조합원이 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친환경 물품의 구매라고 하는 경제활동도 있지만, 우리사회의 '사회적 자본'을 튼실하게 하는 조합 활동도 중요하다"라고 한 뒤 "푸른생협이 부모와 아이들과 함께 생산지 견학을 다녀오고, 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제교류 활동을 전개하고, 아파트 공동체모임을 갖고, 인문학강좌 등 교육 사업을 전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이라고 해서 무조건 운동성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적정 규모의 경제적 성과가 있어야 운동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 적자에 허덕이고, 상근자 역시 박봉에 시달렸던 푸른생협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심 이사장은 "푸른생협 지난해 이용고(=매출액)가 82억원에, 자산이 13억원 규모다. 이중 출자금이 4억~5억원가량 된다. 친환경 시장이 커지면서 생협도 같이 성장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젠 기업들이 가세하면서 경쟁해야하는 처지가 됐다"라며 "물건 팔려고 조합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을 통해 지역에 변화를 일구기 위해 만들었다. 기업과 경쟁은 시장의 상황이지만, 우린 조합원 교육과 조합 활동으로 조합의 성장을 일궈갈 계획이다"라고 했다.

친환경 유기농축수산물 시장이 커지면서 기업과 경쟁도 본격화됐지만, 더불어 조합원이 늘면서 푸른생협 역시 조합 활동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협동조합 간 협동을 넘어, 시민사회의 협동 추구

현재 조합원은 1만 명을 약간 넘어섰다. 93년 150명으로 출발했던 조합이 어느새 70배가량 성장한 것. 하지만 그때 조합원들은 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반면, 현재 조합원들 중 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연간 1000여 명에 불과하다.

때문에 심 이사장을 비롯한 30여 명의 푸른생협 상근자들은 '조합원들의 조합 활동 참여'를 가장 큰 과제로 설정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조합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훼손 시 협동조합이 지닌 원칙과 운동성은 소멸하게 된다.

이에 대해 심 이사장은 "다시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이 협동할 것인가?'이다. 인류는 이미 알고 있다. 경쟁보다 협동이 더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지속적이고 경제적이라는 사실은 익히 증명됐다"며 "조합원들은 처음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입한다. 자기 건강, 자기 가족 건강…그러다 조합 활동에 참여하면서 공동체로 발전해 간다. 그래서 조합원이 협동에 참여할 때 즉, 조합이 어떤 방향과 취지를 갖고 사업을 하는지를 조합원들이 공감할 때, 조합은 성장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결국 조합이 전개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을 늘려야하는 게 핵심이다. '착한 소비'도 좋지만, 착한 소비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기와 장을 조합이 제시해야한다. 1회 구매 시 출자금 500원 받는 것을 설명하면서 그 취지를 알려주기도 하고, 조합 내 다양한 위원회 활동을 통해 사회 참여와 자기계발을 돕고 있는데, 갈 길은 아직 멀다"고 했다.

푸른생협은 조합원들의 협동을 넘어 협동조합 간 협동을 실현하고 있다. 올해 봄 참좋은생협, 인천평화의료생협과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우선 1차적으로 푸른생협 조합원들이 의료생협의 조합원과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마찬가지로 의료생협 조합원들이 푸른생협의 조합원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한 것. 나아가 공동의 기획사업과 교육사업 등을 전개키로 했다.

심 이사장은 "협동조합은 지역사회 기여가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단위 조합만으로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우선 올해 봄에 세군데 생협이 함께 했는데, 동네 대표적인 협동조합인 신협과도 협동할 수 있고 협동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업무협약은 그 시작"이라고 한 뒤 "나아가 제 시민사회단체와도 협동이 중요하다. 우리 동네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함께해야한다. 협동조합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푸른생활협동조합 #인천 #사회적 경제 #조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서양에선 없어서 못 먹는 한국 간식, 바로 이것
  2. 2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3. 3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4. 4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5. 5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