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춤추는 쇼핑몰 CEO를 아시나요?

한 사람을 위한 시

등록 2010.06.28 11:35수정 2010.06.2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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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29일)은 우리 반 최고의 춤꾼 다혜의 생일입니다. 다혜에게 생일 축하시를 써주기 위해 그동안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반 아이들과 편지로 소통을 해왔습니다. 명분은 생일시를 써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기실 속내는 아이들과 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혜와 주고받은 편지의 일부입니다.            

ㅎ2준철!(영어로 Hi를 'ㅎ2'로 센스 있게 표현했네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히히! 저는 다혜라고 합니다. 와우 선생님께 처음으로 쓰는 메일인 거 같아요. 그리고 곧 있으면 제 생일이고요. 근데 제 생일날 기말고사 둘째 날이에요. 엉엉 완전 슬프고 짜증나요. 전 제 생일 날짜가 너무 싫어요. 왜냐하면요?  여름이고 시험 기간이라서요. 시험 보는 날이라서 에휴! 아이들과 놀지도 못하고...뜨악. 왜 하필 저는 6월 달에 태어난 건지 정말.... 아 맞아!! 와 저 이제 생일 지나면 민증을 만들 수가 있어요!! 얏호! 너무 좋아요. 저에게도 와우 너무 신기해요. 히히..

근데요 막상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요...ㅠㅠ

선생님 선생님은 너무 착하신 것 같아요. 착하신 건 좋으신데 선생님은 너무 착하세요. 그럼 못써요. 선생님도 화나시면 화를 버럭 내세요!! 참지 마시구요!! 그래야 아이들이 군기가 딱 잡혀서 선생님 말도 잘 듣고 그래요. 아시겠죠? 선생님 히히^^ 제가 선생님께 드릴 말은 아니지만 히히.

선생님 있잖아요? 전요 정말로 춤이 너무 좋아요. 완전 진짜 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 그러는데 저는 음 공부는 영.....저한테는 안 쉬워요. 저한테는 춤이 제일 쉬운 것 같고 좋아요. 히히 저 중학교 때 동아리도 했어요. 헤헤 안 믿어지시겠지만 저 이런 사람이에요. 근데 지금도 무지하게 추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지금은 그냥 그게 제 취미만 됐을 뿐이에요.

아직도 너무 추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에요. 근데 그럴 수 없는 제 마음... 저 원래 예고에 갈려고 했어요. 근데 아쉽지만 거기를 못 갔어요. 면접까지는 봤는데 그 다음날 오디션 보는 날인데 못 갔어요. 왜 그랬을까요? 궁금하시죠? 사실 가족들이 엄청 제가 춤추는 걸 싫어하셨어요. 그리고 예고를 갈려면 돈도 엄청 많이 들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갔다가 그냥 결국엔 포기를 했어요. 그래도 선생님 저는 지금 효산에 온 거 후회 안 해요. 아이들도 너무 좋고 선생님들도 다 좋으시고요!!


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 선생님, 저는 지금 열심히 지방덩어리들을 제거하러 운동을 가야겠어요!! 저는 그럼 이만~~히히

사랑하는 다혜에게


안녕~ 우리 다혜 편지 받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구나. 모든 아이들이 너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우리 반 아이들 조금 떠들고 그래서 그렇지 모두 밝고 착하고 정이 많은 아이들이지. 다만, 너희들이 선생님을 만나 좀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요즘 학급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더구나.    

우리 다혜 춤추면서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쁘고 즐거워지는데 난 정말 춤 잘 추는 사람이 가장 부럽더라. 네 춤 솜씨의 십분의 일이라도 따라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급이 조금 시끄럽고 소란스러워도 난 네가 춤추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너무 좋단다. 비록 네가 예고에 입학하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춤을 추는 일을 전문으로 하지 않아도 춤은 네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믿고 싶구나.

꿈을 갖는다는 것은 직업을 택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네가 춤을 추는 직업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네 인생이 춤으로 인해 행복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너의 꿈이 될 수 있다고 난 생각해. 넌 네 생활 속에서 춤을 즐기고 사랑하는 그런 진정한 춤꾼이 되는 꿈을 꾸는 것도 좋겠지. 돈벌이야 다른 것으로 하더라도 말이지.

자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네 꿈과 더불어 실제적인 진로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자. 요즘 우리 학교도 선 취업 후 진학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데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그럼 내일 보자. 안녕!

또 한 번 히히 ㅎ2준철^^

와우!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길게 받아보지 못한 걸 선생님한테 받아 보고 너무 기뻐요. 히히. 전 지금 경영이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와우 벌써 버스가 와서 탔어요. 신기하죠? 선생님. 제가 이렇게 집을 가면서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게 히히. 전 지금 핸드폰으로 쓰고 있어요. 정말 참 세상 좋아진 것 같아요. 그죠?

전 지금 2학년이 되었는데 아직 진로를 못 정했어요. 에휴! 이걸 어떻게야할 지 모르겠어요. 근데 전 지금 쇼핑몰CEO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은 오직 이게 너무하고 싶어서 대학은 안가고 바로 이걸 할까 생각 중이에요. 근데 또 요즘은 대학 안 나오면 좀 창피하고 무시하는 그런 게 있어서 또 안 가기는 뭐하고 또 제가 하고 싶은 걸 이루고 대학을 가기엔 너무 나이 차이도 좀 날 것 같아서 지금 정말 어떻게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에서는 간호학과 가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제 적성에 안 맞고 정말 지금 고민이에요. 이제 2학기이고 3학년 되는데 어떻게야 할지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

다혜 안녕~

핸드폰으로 편지를 쓸 수 있다니 정말 놀랍구나. 네 편지를 받고 너희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로 한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구나. 쇼핑몰 CEO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난 대찬성이고 할 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구나. 내가 아는 쇼핑몰 CEO가 된 제자도 몇 있는데 물론 처음에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남모를 고생도 많았겠지만 삼사 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단다.

간호사도 좋지만 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 싶구나. 대신 막연한 생각보다는 쇼핑몰 CEO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지. 가령, 네가 비록 학생 신분이기는 하지만 쇼핑몰 CEO로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본다든지 (학교에서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더구나.) 그런 적극성을 가지고 열심히 뛰다보면 분명 성과가 있을 거야. 막 생각해본 건데, 춤추는 쇼핑몰  CEO가 되면 어떨까? 그럼 너의 두 가지 꿈을 다 이루는 거니까.

선생님도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그런 꿈들이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날도 있었지만 10년 남짓 열심히 시를 쓰고 책도 읽고 하다 보니 벌써 네 권의 시집을 냈고, 가끔은 방송에 나가 인터뷰도 하고 대중들 앞에서 강의도 하는 그런 날이 오기도 하더구나. 대학에 대한 생각도 요즘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더라. 자기 뜻과 실속을 가지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춤꾼과 쇼핑몰 CEO가 되겠다는 우리 다혜의 꿈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생님도 네 곁에서 열심히 응원하마. 그럼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내일 환한 얼굴로 만나자. 안녕~

다혜에게 줄 시를 막 완성했습니다. 비록 생일시라고 해도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이 저로서는 늘 힘에 버겁습니다. 생일 축하시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입니다. 그래도 함께 나누면 기쁨이 더 커지겠지요.  

춤추는 쇼핑몰 CEO

왜 하필 시험 기간인
유월 이맘때 태어났느냐고
생일인데도 시험 때문에
친구들과 맘껏 놀지도 못한다고
넌 불만이 많은 모양이지만

잠깐 눈을 들어
온통 녹색으로 산과 들을 뒤덮은   
저 울울창창한
열여덟 네 나이만큼이나 눈부신
저 유월의 신록을 보아라

네가 꼭 이맘때 태어난 것은  
꼭 그맘때 찾아온 사랑 때문이리니
저 나무 우듬지 끝까지   
초록을 길어 올리자던  
사랑의 언약 때문이리니

우리 반 최고의 춤꾼이여!
시험 때문에 놀아줄 친구가 없으면
혼자라도 춤사위에 젖어 보거라
춤을 춘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나를 어여뻐하고 
내 몸을 긍정하는 것

쇼핑몰 CEO가 되겠다는
너의 당찬 꿈도 꼭 이루어지기를  
세계 최초의
춤추는 쇼핑몰 CEO가 되어 
소복소복 행복하기를.    

2010년 6월 29일
사랑하는 다혜의 생일을 축하하며, 담임선생님이 
#순천효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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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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