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으로 늘 응원하겠습니다

잊지 못할 나의 뜨거운 월드컵

등록 2010.06.28 21:09수정 2010.06.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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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손가락 8개를 꼽아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중학교 3학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좀 더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위해 학구열로 불타올랐냐고? 전혀. 초록색이 절반이었던 우리 동네를 마치 여름에 단풍이라도 든 것처럼 빨갛게 물들였던 월드컵 때문이다.

 

축구라고는 '축구공으로 하는 것'밖에 몰랐던 내가 중등필수영어단어 보다 오프사이드, 드로잉, 패널티킥 등의 단어암기를 더 잘 숙지했으니 말 다했지 않은가.

 

우리 동네도 서울, 아니 가까운 대구만큼만 컸더라도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얼른 붉은악마로 변신 후 목이 터져라 응원했을 텐데... 현실은 학교 체육관에 설치한 스크린 앞에 모인 붉은 티셔츠와 체육복 바지 차림의 여중생이었다.

 

그나마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경기였기에 지금처럼 새벽 3시까지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눈까지 붉은 악마가 돼 응원할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오빠열풍' 대표주자 태극전사들

 

처음에는 수업을 안 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신이 났던지 어깨춤이 절로 응원으로 바뀌었던 때다. 더군다나 경기를 보는 내내 꽤나 잘생긴 남자가 내 눈에 살포시 앉았다 지나간다. 바람만 불어도 마음이 살랑살랑(?)거리던 여중생이었는데, 키도 크고 남들과는 다른 노란머리에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등번호 5번. 우리 반에서 안정환 선수와 '남편후보' 1, 2위를 다퉜던 김남일 선수다.

 

김남일 선수가 경기 도중 다리 부상으로 들 것에 실려나간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거짓말 안보태고 아이들 절반 정도가 "오빠, 어떡해…"하며 눈물바다가 됐다. 지금은 예쁜 부인과 너무 깜찍한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 오빠(?)가 돼 버렸지만 그 당시 자칭 '김남일 부인'은 우리 반에만 열댓 명이었던 듯하다.

 

'오빠열풍'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난리가 났다. 당시 연예인 화보 잡지 등이 모두 축구선수들의 사진으로 도배됐고, 우리는 그것을 사 모으기 바빴다. 더군다나 교실에서는 늘 선수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거울을 보러 가면 안정환 선수가 날 보고 웃고 있었고, 공부하다 졸린다 싶어 고개 숙이면 책상에 김남일 선수가 노려봤으며, 오른쪽으로 살짝만 고개를 돌리면 황선홍 선수가 아빠미소를 힘껏 날려주고 있었다.

 

이렇게 나를 포함한 우리학교, 아니 우리 동네 아이들은 그렇게 애국심이 투철했나 싶을 정도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빨간 옷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이곳저곳에서 목청껏 응원했는데, 하늘에서 유관순 여사가 이 장면을 봤다면 '좀 더 일찍 태어나지 그랬니'하고 안타까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4강까지 올라 가는 동안 학교, 체육관, 그리고 동네 공원 주차장 대형스크린 앞에서 주민들끼리 소리지르며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페이스 페인팅이나 추첨이벤트 등도 함께 하며 말 그대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한마디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큰 즐거움. 너무나도 행복했던 6월이었다.

 

"울지마세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빨간 티셔츠에 체육복 바지차림으로 응원하던 소녀가,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월드컵 경기를 볼 정도로 자랐다. 이젠 내가 오빠라고 부를 선수들도 몇 없고, 선수들 사진으로 도배할 교실도 친구들도 옆엔 없지만 온 국민이 하나 되는 월드컵이 시작됐었다. 변한건 오직 날짜, 그리고 내 나이, 선발 선수들 뿐 그때의 열정과 설렘, 간절한 바람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뜨거운 여름이 내게 지나갔다.

 

새벽 경기를 보느라 에어컨 앞에서 소리지르고 밤을 지샜더니 목감기가 와버렸다. 그 때문에 16강전을 이불 속에서 안타까운 골 찬스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봤다. 2:1이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패였다. 경기가 끝난 후 이청용 선수는 자꾸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허정무 감독도 눈물과 비에 젖은 눈으로 죄송하다고 했는데 아마 경기 전 '결초보은'하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인 것 같다.

 

지난 나이지리아전과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 그들의 눈에서 비와 함께 흘렀고,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축구를 한게 아닐 텐데, 대한민국을 대표해 나가 싸운건데 왜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하는걸까 대체. 이젠 다음 월드컵에서 2002년 나의 오빠들이었던 선수들을 못 본다는 것엔 진심으로 아쉽긴 했지만, 이번 월드컵을 실망하진 않았다, 절대.

 

월드컵은 열여섯 여중생이었던 때나, 스물넷 취업 준비생일 때나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4년에 한 번씩 이렇게 뜨거운 여름을 선사해주는 그들에게 정말이지 너무 고맙다. 아니, 오히려 내가 죄송하다. 이번엔 좀 더 진심을 다해 응원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때면 스물여덟 직장인이려나. 그럼 그때도 부탁드립니다. 뜨거울 여름, 열여섯 설렜던 그 느낌 그대로 늘 그대들을 응원하리.

2010.06.28 21:09 ⓒ 2010 OhmyNews
#월드컵 #여름 #2002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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