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교복을 입었거나 체육복을 입었거나 사복을 입었거나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제발 우리 아이들을 교복이란 틀에 가두지 맙시다.
박용성
제가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여학생들의 머리 길이가 귀밑 3센티미터였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기르는 그 문제아들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3센티미터가 5센티미터가 되고, 5센티미터가 7센티미터가 되다가, 결국 머리 길이는 단속에서 없던 걸로 바뀌었습니다. 모범생들이 '죽도록' 공부만 하고 있을 때, 문제아들은 '죽게 맞아 가면서' 학교라는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요즘 어느 공익 광고에 당신은 '학부모'입니까 '부모'입니까 하고 묻습디다만, '학부모'들이 교복을 입히는 데 찬성하는 이유는 편해서입니다. 옷 가지고 자녀들과 씨름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만저만 편한 게 아닙니다. 저도 딸을 키워 봤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게 고달픕니다. 일요일 교회 한 번 가는데도, "이 옷은 지난주에 입었고, 저 옷은 저 지난주에 입었으니 안 입겠다"고 실랑이를 벌인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복을 입히자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멀리 보지 않은 '학부모'의 생각일 뿐입니다.
교육감님, 우리 아이들의 인생은 교사의 것도 아니고, 학부모의 것도 아니고, 학생 스스로의 것입니다. 교육감님,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게 해놓고 그걸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인생을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감옥이라는 곳을 가면 죄수복을 입힙니다. '옷'을 벗기고 수인 번호가 찍힌 '죄수복'을 받아 입는 순간, 드디어 나는 죄수로구나 하면서, 자신이 스스로를 감옥에 처넣습니다. 그런데 요즘 어떤 나라에서는 죄수들에게도 죄수복이 아닌 '옷'을 입힌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교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는 10년 전에도 이랬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경남에 있는 ㄱ고등학교에 가 보았더니, 어리둥절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교복도 안 입고, 머리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당시 '제 눈'으로는 한심스러웠습니다. 선생님께, 이 학교는 생활 지도도 안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담당 선생님은 "한다"는 겁니다. 지도한 게 요 모양이냐고 물었더니, 그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학교도 복장 지도는 한다면서, 예컨대 땅에 질질 끌리는 바지를 입고 다니면 단속한다는 겁니다. 그런 옷은 먼지를 묻혀 와 교실을 더럽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은 복장을 왜 단속해야 하느냐"고 제게 되물었습니다.
프랑스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온 이에게 들은 이야깁니다. 그가 저더러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디자인 공부하러 가서 제일 헤매는 게 뭔지 아느냐고 했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알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색깔을 도대체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색깔 구별하는 데에만 꼬박 일 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그랬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그렇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든 것이 바로 '무채색의 교복'이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에 우리 아이들을 색맹으로 만드는 게 교복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산업 사회에서 3디(D) 하면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직업이라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이어령 교수가 이를 패러디하여 3디의 개념을 확 바꾸었습니다. 21세기에 우리를 먹여 살릴 산업이 바로 3디라는 것입니다. 디지털(Digital), 디엔에이(DNA), 디자인(Design)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디지털과 디엔에이 분야는 우리가 세계에서 몇 번째로 꼽힌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디자인은 영 아니랍니다.
갓 중학교에 올라오는 아이들의 '옷'을 벗기지 마세요거듭 말하지만, 장 교육감의 진정성을 깊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전남이라는 '가난한 마을'에 사는 '가난한 지역민들'을 걱정하는 그 마음은 백번을 헤아리고 헤아려도 고마울 뿐입니다. 그래서 초등학생의 학습 준비물도 챙겨 준다고 하고 체험학습비나 야영수련활동비, 수학여행비도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부담 공교육비'를 하나씩 없애 나가려는 교육감의 의지에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기억하실 것은,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21세기는 20세기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서, 그들도 그들 인생의 주인이라는 바로 그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서, 모든 정책은 기획되고 집행되어야 합니다.
"야, 공짜로 줬는데도 교복을 안 입고 와? 이리 와서 손들고 서 있어." 내년이 되면, 전남의 어느 중학교에서 교사의 이런 꾸지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저만의 '끔찍한 상상'이겠습니까? '무상교복'이 학생들을 옥죄는 도구로 작용한다면, 그건 아닙니다. 교육감님,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이제 중학교에 갓 올라오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옷'을 벗기지 마십시오.
덧붙이는 글 | 박용성 기자는 전남 부영여자고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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