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의 아프리카', 낯선 장소로 가볼까

벨기에 사진작가 세바스티안 슈티제, 그가 보여주는 원초적인 아름다움 'Flowers of the Moon'

등록 2010.07.10 20:10수정 2010.07.10 22:13
0
원고료로 응원
a  Senecio adnivalis #3,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25 x 38cm, 2005

Senecio adnivalis #3,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25 x 38cm, 2005 ⓒ Sebastian Schutyser


a  Mount Baker,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Mount Baker,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 Sebastian Schutyser


"전설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아프리카 르웬조리(Rwenzori) 산맥의 자연의 이미지, 그러나 꿈속이나 상상 속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의 이미지를 끌어내려 했다. 그리고 그곳에 서식하는 독특한 식물군들을 보여주고 인간의 때가 아직 묻지 않은 태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간직한 산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제시하여 자연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했다."

벨기에의 세바스티안 슈티제(Sebastian Schutyser, 이하 슈티제)란 사진작가가 '원초적 아름다움'을 한국인에게 전달하고자 흑백사진 18점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오며 밝힌 말이다.


슈티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진은 '생소'하다. 아프리카는 이번 남아공월드컵으로 그나마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여전히 낯선 미지의 세계다. 더구나 슈티제가 사진 작업을 한 곳은 아프리카의 중심인 적도, 콩고와 우간다의 경계지역이다. 그중에서도 해발 5000미터 위에 거대한 얼음으로 덮인 르웬조리 산맥이란 곳이다.

그곳에서 슈티제는 적외선 흑백 필름을 이용해 때 묻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자연을 담아내고자 했단다. 과연 그가 네모난 틀 안에 담아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8일부터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는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Flowers of the Moon'이란 개인 전시회를 열고 있는 슈티제와 전시회가 열리기 바로 전날(7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간략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a  세바스티안 슈티제(Sebastian Schutyser).

세바스티안 슈티제(Sebastian Schutyser). ⓒ Sebastian Schutyser

세바스티안 슈티제(1968년생)의 작품은 주로 신중하게 선택된 주제를 현장에 체류하며 진지하게 탐구해 가는 사진여행을 통해 탄생한다. 특히 슈티제가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년기는 특별한 시각적 언어를 발전시키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슈티제는 아프리카 말리의 전통 점토건축물들을 기록한 어도비 모스크(Adobe Mosques in Mali) 프로젝트를 통해 2000년 유네스코상을 받았고, 파비올라 여왕의 후원을 받는 벨기에 직업재단의 장학금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07년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에서 흙집 퍼포먼스를 동반한 개인전 'Spirit of Africa'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소멸하는 우리의 환경과 인간의 조화, 자연의 순수성을 되짚어볼 수 있는 이번 작업 'Flowers of the Moon'은 같은 제목으로 책이 출판된다. 동시에 벨기에 앤트워프 사진 박물관에서 개인전으로 이어졌으며, 최근 대두되고 있는 자연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현재 세바스티안 슈티제는 장기간에 걸쳐 스페인의 에르미타(Ermita)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다.

에르미타 프로젝트는 앞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슈티제와 함께 에르미타를 찾아가는 여행기인 '에르미타 익스프레스'가 현재 <오마이뉴스>에서 연재 중이다.

"미지의 나라 한국... 사람들의 다이내믹함 넘쳐나는 나라"


a  Bujuku River #1,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Bujuku River #1,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 Sebastian Schutyser


슈티제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06년과 2007년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에서 학술회의와 전시를 계기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면서 "그전까지 한국은 솔직히 말하면 미지의 나라이자 자신의 관심 밖의 나라였다"고 밝혔다.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찾아온 슈티제에게 한국 역시 '미지의 나라'였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세상은 미지의 세계인 것. 여러 차례 만나다 보면 친숙해지는 것이 이치일 터이니, 그동안 세 번의 한국 방문을 통해 슈티제가 느낀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사람들의 다이내믹함이 넘쳐나는 나라이다. 또한 역사의 거친 흐름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나라이며 일본의 침략과 문화 말살 정책을 이겨내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나라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분단의 아픔을 겪는 나라이기도 하다."

의외였다. "특별한 계기로 한국을 알게 된 이후로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슈티제. 생각보다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듯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환경문제에 무딘 나라에 한국 속해 있다는 건 실로 유감"

a  Senecio forest,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38x25cm, 2005

Senecio forest,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38x25cm, 2005 ⓒ Sebastian Schutyser


"텔레비전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우연히 본 기억이 있는데 아무 상관 없는 나 자신조차 목메어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한국인의 에너지는 어떤 면에서 과거의 아픔을 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인들이 과거에 문화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낸 것처럼 지금 파헤치고 있는 자연환경 또한 지켜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의 다이내믹함을 그런 것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발전한 나라 중 의외로 환경문제에 무딘 나라에 한국이 속해 있다는 사실은 실로 유감이다."

소멸하는 환경과 인간의 조화, 자연의 순수성을 되짚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슈티제는 환경문제에 '무딘' 우리 인식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앞선 방문 때에) 한라산의 안갯속을 거닐었고 성산 일출봉의 깊은 바닷속을 잠수했었다, 한국은 아름답고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그가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한 번 질문을 던져봤다.

-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찍는 사진작가로서 한국에서 대규모로 진행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확한 건 잘 모른다. 따라서 섣불리 이야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단지 '강을 살리겠다'는 목적 자체는 좋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파헤쳐지는 다른 환경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자비한 방법의 밀어붙임은 언젠가는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다. 또한 이 사업의 진정한 목적이 진정 강을 살리는 것인지, 그것으로 인해 다른 이득을 취하려는 것인지도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만약 진정 자연환경을 살리는 것에 바탕을 둔 사업이라면 무리한 방법이 아니고서라도 얼마든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자연환경이 최종의 목적이 되어야지,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 또한 강을 살리기에 앞서 공해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감소시킬 것인지도 긴 시간에 걸쳐 연구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우려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을 살리는 목적이 다른 목적의 수단이 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인류와 문화유산, 그리고 자연을 강조하는 사진작가 슈티제

a  Lobelia wollastonii,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Lobelia wollastonii,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 Sebastian Schutyser


이번이 네 번째 한국 방문인 슈티제에게 좀 가벼운 질문을 던져봤다. 한국에서 사진 작업을 해보고 싶은 곳이 어딘지?

슈티제는 "(한국에서 사진 작업을 한다면) 경주에서 본 거대한 왕릉들에 가장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왕릉들이) 단순하지만 형태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미(美)가 매혹적이다"라고 답했다.

사실, 처음 슈티제의 사진을 접했을 때 솔직히 낯설었다. 하지만 전 세계의 공통 관심사인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슈티제는 '문화유산과 자연 중심의 피사체 선택과 해석 방식에 있어 자신만의 사진 언어를 추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  Bujuku River #2,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Bujuku River #2,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 x 151cm, 2005 ⓒ Sebastian Schutyser


"크게는 프로젝트별로 작업을 한다. 인류 문화유산과 사라져가는 자연환경에 대해, 그리고 물질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의 시각을 전환할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작업인데, 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며 각 프로젝트별로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촬영 방법을 이용하는 편이다."

슈티제의 사진을 보면, 단순히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여행을 통해 이뤄지는 사진 작업. 그리고 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담아내는 사진 한 장. 그는 무척 더딘 작업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얻는다. 하나의 씨앗이 꽃 한 송이로 태어나는 것처럼 그의 사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끝으로 슈티제는 "계속 새로운 작업을 찾으며 끝없이 여행하는 것이 변치 않는 나의 앞으로의 계획"이라며 "다시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을 맺었다.

벨기에 남자 슈티제가 보여주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은 그의 개인 전시회를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전시회는 오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a  Bigo Bog,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x151cm, 2005

Bigo Bog, silver gelatin print, mounted on aluminum and framed with mirogard magic glass, 101x151cm, 2005 ⓒ Sebastian Schutyser


달의 산맥에 핀 달의 꽃, 'Flowers of the Moon'
세바스티안 슈티제가 작업한 르웬조리 산맥을 가리켜 '달의 산맥(The Mountains of the Moon)'이라 부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달의 산맥의 눈을 나일강의 원천으로 믿었다. 아프리카 적도 위의 영원히 녹지 않는 눈과 접근 불가능할 정도로 깎아지르는 험난한 산의 지형은 안개와 구름에 의해 빼곡하게 가려져 그 신비함을 더해왔다.

작가는 색채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풍부한 세부묘사와 질감을 살림으로써 피사체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전달코자 한다. 더 나아가 고유의 색상을 잃은 순백색의 잎사귀와 어두운 안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띠며 사진 속에서 현실 이상의 꿈과 같은 세계, 잃어버린 비현실적인 천국을 창조해낸다.

보이지만 쉬이 닿을 수 없는 달처럼 슈티제의 달의 꽃들은 실재하지만 감추어진 또는 지극히 신화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더불어 회고적인 흑백이미지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포착된 달의 산맥 식물군을 통해 그는 숭고한 대자연의 밑바탕에 깔린 험난한 현실을 꼬집는다. 지구를 위협하는 산림파괴와 지구 온난화 문제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면을 통해 역설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 'Flowers of the Moon' 전시회 자료을 정리한 내용)

덧붙이는 글 | 전시 제목 : Flowers of the Moon
작가 : 세바스티안 슈티제(Sebastian Schutyser)
기간 : 2010년 7월 8일 - 7월 31일
입장료 : 무료
장소 :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덧붙이는 글 전시 제목 : Flowers of the Moon
작가 : 세바스티안 슈티제(Sebastian Schutyser)
기간 : 2010년 7월 8일 - 7월 31일
입장료 : 무료
장소 :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세바스티안 슈티제 #전시회 #4대강 #자연 #FLOWERS OF THE MOON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