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니 정신적인 비계까지 빠지더라"

[오마이뉴스-CJ 도너스캠프 나눔특강 ②]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록 2010.07.16 10:17수정 2010.07.1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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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 주최한 나눔특강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산티아고 여행에서 제주올레 모티브를 찾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 주최한 나눔특강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산티아고 여행에서 제주올레 모티브를 찾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CJ 도너스캠프


"걷기에 중독되면서 23년간 제대로 쓰지 않았던 휴가를 찾기 시작했어요. 걷는다는 것은 명상이나 다름이 없더군요. 걷는 순간에는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곤 했습니다. 걷기는 저에게 육체적으로는 근력을 보강해주고 기를 보충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심적으로도 충전의 기회를 줬지요."

운동을 모르던 일중독 '글쟁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도보 관광 코스를 만들어 낸 '길쟁이'가 된 사람이 있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그녀가 그저 걷기만 해도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주는 특이한 길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서명숙 이사장은 지난 14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CJ인재원리더십센터에서 열린 강연에서 "걷기가 나를 바꿨다"며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살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인지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라"고 말했다.

서 이사장은 '제주올레 스토리-내 인생의 길 찾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걷기와 기부는 하고 나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긍정적 중독'"이라며 "제주올레는 직접 그 길을 걸었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시간 기부, 재능 기부, 노력 기부로 만들어진 길"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는 약 200명의 청중이 모였다.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는 서 이사장의 강의에 이어 나눔의 사회적 의미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나눔특강'을 오는 9월, 11월에 거쳐 두 차례 더 열 예정이다.

기자가 여행 전문가 된 까닭은?

서 이사장은 언론인 출신이다. <시사저널> 창간 때부터 당시 여성으로는 매우 드물게 정치부 기자로 15년을 보냈으며, <시사저널> 편집장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냈다.

일에 중독돼 다른 남자 기자들보다 1.5배는 열심히 살았던 기자 인생. 그런데 가장 자신 있었던 체력이 40대 중반 이후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 이사장은 "이러다가 어느 오후에 책상에 쓰러져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 걷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걷기를 좋아하기 전까지는 늘 차를 타고 다녔었어요. 처음에 걸을 때는 학교 운동장 3바퀴, 15분밖에 못 걸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지나면서 30분, 좀 더 지나면서 한 시간씩 걸을 수 있게 되더군요. 인간의 신체는 나이와 관계없이 적응을 하더군요. 저는 지금 20~30대보다 더 잘 걸어요."

뒤늦게 걷기에 빠져들었지만 한국에는 조용하게 자연을 벗 삼아 걸을 만한 길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책을 통해 천주교 성지인 산티아고 순례기를 접한 서 이사장은 산티아고를 목표로 경비를 모으고 두 달 동안 한강변을 걸으며 훈련을 마쳤다.


"언론사 생활만 죽자 살자 하다보니 다른 건 해본 게 없었어요. 그래서 23년 근속한 것에 대해 스스로 주는 포상휴가이기도 하고 인생의 전반전을 열심히 살아온 선물로 산티아고 여행을 생각한 거죠. 당시 저에겐 걷는 게 쉬는 일이고 행복한 일이었거든요. 걸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 건지 생각해보고 싶었죠."

a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 주최한 나눔특강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제주올레 스토리-내 인생의 길찾기' 강연장에는 200명의 청중이 모였다.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 주최한 나눔특강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제주올레 스토리-내 인생의 길찾기' 강연장에는 200명의 청중이 모였다. ⓒ CJ 도너스캠프


인생의 후반전, 산티아고에서 길을 찾다

프랑스 국경마을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끝나는 산티아고 길은 중세 이후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길이자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구간으로도 유명하다. 2006년 9월 10일부터 10월 15일까지. 서 이사장은 이 길을 36일 동안 걸었다.

"저는 원래 자연을 별로 안 좋아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끝없이 이어지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어요.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얻었던 갈등과 상처, 미움과 증오, 원한과 집착이 어느 순간에 거의 다 사라져 버리더군요. 제가 이 길을 걸으면서 6kg쯤 몸무게가 줄었는데 단순히 몸의 비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비계도 함께 빠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산티아고 길은 서 이사장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안겼다. 길 위에서 <연금술사>를 쓴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와 만나 대화를 나눴던 경험이 '작은 선물'이었다면 여행이 끝날 무렵 우연히 만났던 영국 여성과 나눈 대화는 인생 후반전의 방향을 정해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서 이사장처럼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그 길의 가치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녀는 서 이사장에게 "한국이야말로 산티아고 길 같은 자연과 휴식이 있는 장소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는 나라"라고 충고했다.

"그 영국인은 '한국에 길게 두 번 묵었다'면서 그때 자기가 느꼈던 걸 말해줬어요. 한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을 하는 '미친' 나라이고, 서울은 사람은 많은데 녹지 공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끔찍한 도시라고 하더군요. 한국이 빠르고 역동적인 것은 좋지만 다들 자기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남들이 가는 길 따라서 우르르 몰려가더라고 지적하는데 뭐라고 반박을 할 수가 없더군요."

영국인 여성과 나눈 대화에서 자극을 받은 서 이사장은 귀국 후 고향인 제주도에서 자신이 아는 길들을 이어 자연 곁에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길이 제주올레다. 2007년 개장해 현재 총 길이 346.8km, 21개 코스가 만들어져 있으며 개장 이후 올 6월까지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올레길을 걷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

마음을 치료해주는 길, 제주올레

a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 주최한 나눔특강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제주올레에 얽힌 일화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가 공동 주최한 나눔특강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제주올레에 얽힌 일화를 설명하고 있다. ⓒ CJ 도너스캠프

서 이사장이 제주올레길을 만들면서 염두에 뒀던 것은 두 가지. 서 이사장은 "도시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이 길에 와서 쉬고 치유를 받았으면 하고 바랐다"며 "'볼 게 없다'는 평을 받는 내 고향 제주에 대한 오해도 벗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을 때는 다른 사람의 위로도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자연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제주도만큼 자연이 풍부한 곳이 없습니다. 제주도 자연의 특징은 종합 선물세트라는 겁니다. 스위스의 융프라우, 네팔의 안나푸르나,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북미의 그랜드캐년 같은 느낌을 주는 다양한 바다와 숲과 오름이 번갈아가면서 펼쳐집니다. 한 코스도 비슷한 곳이 없어요."

서 이사장은 제주올레를 통해 마음이 치유된 이들의 얘기도 소개했다. 아들과 단 둘이 평소 소원하던 제주올레를 찾았던 한 아버지는 올레길 위에서 서로 인정하고 마음을 열었다. 서 이사장은 "그 아버지는 '지난 17년 동안 아들과 했던 말보다 함께 올레를 걸으며 지난 일주일 동안 한 말이 더 많았다'면서 정말 좋아했다"며 "제주올레에서 치유된 사람들 얘기는 거의 간증 수준"이라고 말했다.

"어떤 엄마는 남편을 잃고 제주올레를 왔었어요. 너무나도 멀쩡하던 남편이 갑자기 병으로 8개월 만에 죽은 겁니다. 동네에서도 잉꼬부부로 유명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어디서든 마주치면 어떡하냐면서 동정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싫었대요. 자기 마음에는 그런 위로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거죠. 이분은 올레길에 와서 1년을 자원봉사하면서 살았습니다. 나중에 저에게 '사람들 백마디 천마디 위로보다 파도소리가 내 마음을 씻어줬고 오름의 꽃과 구름이 나를 위로해줬다. 그러고 나서야 사람들의 위로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하더군요."

현재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은 모두 7명. 이들이 수십만 명이 오는 21개의 제주올레 코스를 관리할 수 있는 이유는 제주올레에서 치유를 경험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 이사장은 "자기가 길을 걸어보고 좋다는 것을 느꼈던 분들이 자원봉사를 해주고 있다"며 "제주올레는 그들의 시간 기부, 재능 기부, 노력 기부로 만들어진 길"이라고 설명했다.

서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연 가까이에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를 추천한다"며 "그래야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각도에서 인생을 바라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자기 삶을 지키며 살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인지 돌아보면서 자기만의 인생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서명숙 #제주올레 #오마이뉴스 #도너스캠프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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