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장난감 친구에게 주고... 끙끙 앓은 아들

등록 2010.07.16 11:57수정 2010.07.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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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연이

호연이 ⓒ 이민선

호연이 ⓒ 이민선

여섯 살 호연이 녀석 등쌀에 기어이 사주고야 말았다. '건포드'라는 장난감이다. 꼭 끌어안고 잠드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어린이집에 갈 때도 꼭 챙겨간다. '잃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며 말려도 소용없었다.

 

생각보다 꽤 비싼 장난감이었다. 장난감을 살 때만 해도 생돈 나간 것 같아서 앵 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앵한 마음이 사그라진다.

 

어느날부턴가 '건포드' 가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잃어 버렸다면 울고불고 생난리를 친 후 다시 사달라고 졸랐을 녀석이 어쩐 일인지 찾지도 않았다. "건포드 잃어 버렸니, 호연아?"하고 물으니 그제서야 입을 연다. "영주 빌려 줬어"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빌려 준 게 아니라 자진해서 그냥 준 것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혼날까 봐 빌려 줬다고 둘러댄 것이다. 어린이집 선생님 말로는 호연이가 영주라는 아이 가방에 살며시 넣어 줬다고 한다. 지나가는 말처럼 호연이한테 물었다.

 

"호연아, 너 건포드 좋아하잖아. 근데 왜 영주 줬어?"

"응. 그냥... 영주가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너 영주 좋아하니?"

"응 좋아해, 어린이집에서 제일 친해."

 

이 얘기를 듣고 껄껄 웃고 말았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더니! 맘에 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성격이 날 꼭 닮았다. 더 기특한(?) 것은 주고 나서 후회하는 것까지 나를 닮았다는 것이다.

 

호연이 녀석은 '건포드'를 보고 싶어서 영주에게 다시 달라고 하고 싶은데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던 적이 많았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초딩' 시절 기억 한 토막이 떠오른다. 

 

아끼는 장난감을 몰래 친구 가방 속에 넣어 준 아들

 

4학년 때, 학교에서 반공 웅변대회가 열렸다. 내 짝꿍은 단상에 올라 열변을 토하고 있고 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웅변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내 짝꿍에게 쏟아졌다. 그때 왜 그렇게 아쉬운지! 손은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마음 속 한편엔 아쉬움이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느 날 내게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라고 하셨다. 난 하늘 같은 선생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 '네'하고 대답한 후 며칠을 끙끙 앓았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후들후들 떨리는 소심한 성격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공웅변대회였다. 어쨌든 '네'하고 승낙을 했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했다. 정성스레 원고를 써서 선생님께 보여주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열심히 연습하라고 하셨다. 웅변대회를 며칠 앞둔 종례시간,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한 번 시범을 보이라고 하셨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목소리까지 떨려서 웅변은 고사하고 원고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날 실망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선생님도 어지간히 실망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은 나와 내 짝꿍을 남으라고 하셨다. 내 짝꿍은 깔끔한 여자 아이였다. 발목까지 오는 흰 양말에 단정해 보이는 운동화, 그리고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공부도 잘하고 친절했다. 그 당시 시골 아이들 중에는 드물게 읍내에 다니며 피아노도 배웠다. 소심한 성격 탓에 한 번도 살 부드럽게 말을 걸어 보지는 못했지만 난 그 애가 좋았다.

 

그 애는 웅변대회 '전문선수'였다. 웅변대회에 여러 번 출전했고 상을 탄 적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당찬' 그 애가 아닌 소심한 나를 웅변대회에 내보내려고 하셨다. 웅변대회에 나가서 성격을 고쳐 보라고 기회를 준 것이다. 

 

선생님은 그 애한테 나를 도와주라고 부탁하셨다. 그 애는 시범을 보이며 열심히 설명했다. 너무나 열심인 그 애 얼굴에서 난 그만 그 아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읽어 버리고 말았다. 그 아이는 시범을 보인 게 아니라 시위하듯이 나와 선생님 앞에서 '웅변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어쩐지 양보해야 할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빨리 양보하라고 닦달했다. 난 선생님에게 간청해서 그 애에게 웅변대회 출전권을 양보했다. 그 애는 마지못한 듯 내 양보를 받아 들였다. 그 애가 "그래 그럼 내가 할께"라며 살며시 웃을 때는 기쁘기도 했지만 섭섭하기도 했다. 그 애는 내가 쓴 원고를 가지고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탓다. 

 

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회 때 그 애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고 한다. 그 애와 참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만약 웅변대회 출전권을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수줍음 소심한 성격을 극복 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좀 아쉽다.

 

호연이에게 아끼는 장난감 건포드를 꼭 다시 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그 말을 듣고 난 호연이한테 "좀 멋쩍겠지만 영주에게 다시 돌려 달라고 얘기해 봐. 그럼 다시 돌려줄 거야"하고 귀띔해줬다. 며칠 후, 호연이는 건포드를 안고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2010.07.16 11:57ⓒ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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