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의 석학인 스테파노 자마니 볼로냐대학 경제학과 교수. 그는 협동경제(cooperative economy),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의 기원을 르네상스 시대에 이 지역에서 꽃핀 시민적 인문학(civic humanism)에서 찾는다.
이승훈
따뜻한 인간애가 살아 있으면서도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경제
"미시경제학 교과서도 쓰셨네요"라고 묻자, 자마니 교수는 슬그머니 웃으면서 그 옆에 있는 책을 가리킨다. 유럽 경제사다. 그는 에밀리아 모델(Emilian Model, 이탈리아 경제학자 브루스코가 1983년 케임브리지 저널에 쓴 논문에서 이 지역의 사회경제에 대해 붙인 이름이다)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간여의 짧은 인터뷰(그는 인터뷰 중에도 걸려오는 전화를 자주 받아야 할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ㅠㅠ)였기 때문에 짧은 그의 '정답'에 독자를 위해 주석을 달 수밖에 없다.
-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협동경제"라는 말도 쓰고 "연대경제"라는 말도 쓰는데... "연대경제란 분배가 공평한 경제, 즉 결과를 표현하고 협동경제란 매니지먼트, 즉 경제 과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협동을 통해 경제를 운영하고 그 결과 평등한 사회이다."
이런 꿈같은 경제가 가능한가? 곧바로 "협동조합은 왜 희귀한가"라는 화두를 놓고 지난 30여 년간 경제학자들이 논쟁 끝에 내놓은 결론을 들이밀었다.
- 자본주의 기업과 비교할 때 협동조합기업(노동자관리기업)은 자본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우수한 인력이 오지 않으며 기술혁신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협동조합 중소기업의 숫자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에선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했는가?"자본은 우선 조합원 스스로 해결한다." (물론이다. 협동조합에 가입하려면 몇 백만원에서, 많게는 천만원이 넘는 가입비(출자금)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동자들이 이렇게 돈을 낸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에 모이는 돈은 기껏 몇 억원에 불과할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하고 채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도 초기에는 협동조합에 선뜻 거액을 대출해 주는 은행이 없어서 훗날 협동조합은 자체적인 금융기관을 갖게 된다.)
"제도적으로 중요한 것은 1947년 바세비법(Basevi law)에서 비(非)분리자산(indivisible reserve)을 인정하고 그 부분에 관한 세금을 면제하기로 한 것이다." (만일 조합원 총회에서 이윤 중 20%를 유보하기로 하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협동조합에 재투자 기금으로 쌓이는 것이다. 시간관계상 자마니 교수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1992년 모든 조합이 이윤의 3%를 갹출해서 발전기금을 만들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것도 협동조합의 자본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레카쿠프(Legacoop) 등 협동조합 연합체는 이 발전기금을 새로운 협동조합 설립, 어려운 협동조합에 대한 대출, 일반기업 인수 등에 사용한다.)
"협동조합이 미래의 지배적인 경영형태가 될 것"- 협동조합은 가장 높은 임금과 낮은 임금 간의 격차가 적기 때문에(보통 6배 이상 받지 못하도록 한다) 우수한 고급 인력은 협동조합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협동조합에선 노동자가 자본을 통제한다. 노동자들 스스로 경영에서 완전한 자유를 만끽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협동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마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명령을 기본으로 하는 위계질서 체계인 기업에서 자유를 누리다니... 협동조합은 노동자 스스로 출자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1인 1표의 방식으로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자유-어쩌면 골치아픈 경영을 떠맡는 일이기도 한데-를 누리기 위해서 고액 연봉을 포기할까?)
"자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에밀리아 로마냐는 중세시대부터 그런 정신이 가득하다. 그래서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대가도 협동조합이 미래의 지배적인 경영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일부 생협이 악전고투할 뿐 협동조합의 전통이 말라붙어버린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현실이다. 참고로 이야기 중에 나온 밀은 이렇게 말했다. "(협동조합 등) 결사체 형태(the forms of associations)는, 인류가 계속 발전한다면 결국 세상을 지배할 것임에 틀림없다... 노동자 자신의 결사체가 평등과, 자본의 집단적 소유를 기초로, 스스로 선출하고 또한 바꿀 수 있는 경영자와 함께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형태이다"라고.
- 강력한 이윤동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술혁신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혁신에는 생산물 혁신(product innovation), 과정 혁신(process innovation), 조직 혁신(organizational innovation)이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의 각 산업분야는 이들 중 어떤 혁신인가를 끊임없이 이뤄내고 있다. 예컨대 기계협동조합은 생산물 혁신에, 건축혐동조합은 과정 혁신에, 금융과 소비자협동조합은 조직 혁신에 뛰어나다." (실제로 에밀리아 로마냐의 기업은 이탈리아 전체의 7%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특허의 30%를 가지고 있다.)
- 그래도 실리콘 밸리와 같은 돌파혁신에는 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박사과정에서 실리콘 밸리를 연구했다는 점도 슬쩍 덧붙였다.)"사실이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적 주식 거래소(social stock exchange)를 만들려고 한다. 여기서 사회적 주식(social equity)이 거래될 것이다. 나와 몇 명의 학자가 프로그램을 거의 다 만들었다. 이런 시장이 만들어지면 실리콘 밸리와 같은 거대 혁신도 가능해질 것이다."
"사회적 주식 거래소를 만들고, 사회적 주식 거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