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 대단한 경지

[실크로드 여행, 환상에서 깨어나라 ⑤] 둔황고성, 양관고성, 백마탑

등록 2010.08.08 10:12수정 2010.08.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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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고성을 지나며

 

a  둔황고성

둔황고성 ⓒ 이상기

둔황고성 ⓒ 이상기

 

둔황의 볼거리 중 최고는 뭐니뭐니해도 명사산과 월아천, 막고굴이다. 명사산과 월아천은 모래사막의 정수이고, 막고굴은 석굴사원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을 든다면 양관과 옥문관이다. 양관은 서역남로의 출발점이고, 옥문관은 서역북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 중 양관을 오후에 가 보기로 한다.

 

양관은 둔황에서 남서쪽으로 76㎞ 떨어진 난후(南湖) 인근에 있다. 버스는 양관서로를 지나 칠리진(七里鎭)으로 향한다. 칠리진은 말 그대로 둔황에서 서남쪽으로 칠 리 떨어진 요새에 해당한다. 오늘의 관광 포인트는 양관고성, 둔황고성, 백마탑이다. 둔황고성은 영화 <둔황>을 찍기 위해 만든 세트장이고, 백마탑은 전진시대 큰 스님이자 번역가인 구마라습이 자기가 타던 말의 죽음을 애도해 세운 탑이다.

 

버스가 칠리진을 벗어나자 길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2차선 포장도로이긴 하지만 털털거린다. 20㎞쯤 갔을까? 왼쪽으로 돈황고성이 나타난다. 1987년 일본소설 『둔황』을 영화화면서 만든 종합 세트장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아도 꽤나 크게 만들었다. 동서의 길이가 718m, 남북의 길이가 1,132m라고 하니 작은 성채다.

 

a  양관승경 석패방

양관승경 석패방 ⓒ 이상기

양관승경 석패방 ⓒ 이상기

 

그러나 시간이 없어 멀리서 사진만 찍고 양관으로 향한다. 중간에 양관으로 가는 길임을 알리는 표지판들이 보인다. 돈황고성에서 1시간 반쯤 가니 양관승경(陽關勝景)이라는 석패방(石牌坊)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양관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남쪽으로 이어진다.

 

양관박물관

 

a  양관 지도

양관 지도 ⓒ 이상기

양관 지도 ⓒ 이상기

 

석패방을 지나 20분쯤 갔을까? 성벽과 성문으로 이어진 건물 앞에 도착한다. 성의 문루 현판을 보니 양관박물관이라고 쓰여 있다. 2003년 8월에 개관한 민영박물관으로, 한나라 때 유적인 양관 봉수 북쪽 800m 지점에 지어졌다. 이곳에는 사주지로청, 양관한새청, 양관연구소, 한궐패루, 양관도위부, 방한양관, 양관병영, 양관고가, 공예품 전시중심 등이 있다.

 

이들 건물은 한나라 시대 성과 보루(堡壘) 양식에 따라 고졸대기(古拙大氣)하고 질박웅혼(質樸雄渾)하게 만들어졌다. 양관박물관 성벽 앞으로는 옛날 사용하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문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길 양쪽으로 세 개씩 붉은색 기둥이 도열하고 있다. 이 기둥을 문화주(文化柱)라고 하는데, 장건의 서역 원정 등 여러 역사 장면이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a  장건 동상

장건 동상 ⓒ 이상기

장건 동상 ⓒ 이상기

이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타나고 한 가운데 장건(張騫)동상이 서있다. 장건은 서역원정로를 개척하여 실크로드의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다. 그는 기원전 139년 서역의 대월지국과 교류에 나섰다가 흉노에게 잡히고 만다. 그러나 15년 동안의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126년 한나라로 돌아와 서쪽 변방 지역의 상황을 알리게 된다. 123년 한나라는 흉노 정벌에 나섰고, 장건은 큰 공을 세운다. 그는 그뿐 아니라 119년 윈난(雲南)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차마고도를 개척하기도 했다.

 

장건 동상 좌우에는 두 개의 건물이 있는데 북쪽이 양관장성(兩關長城) 진열청이고 남쪽이 사주지로(絲綢之路) 진열청이다. 여기서 양관장성이란 옥문관과 양관으로 이어지는 긴 성을 말하고, 사주지로란 실크로드를 말한다. 양관장성 진열청에 들어가면, 장건의 서역원정과 관련된 지도가 우릴 반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주변에서 발굴된 무기, 생활용품, 도자기, 기와, 동전 등이 전시되어 있다.

 

a  청동마

청동마 ⓒ 이상기

청동마 ⓒ 이상기

a  채도마

채도마 ⓒ 이상기

채도마 ⓒ 이상기

 

a  천마도

천마도 ⓒ 이상기

천마도 ⓒ 이상기

a  마상수렵도

마상수렵도 ⓒ 이상기

마상수렵도 ⓒ 이상기

 

그 중에서도 짚과 흙으로 쌓아올린 장성 모형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발굴된 미라도 보인다. 이곳이 건조지역이어서 미라의 상태는 좋다. 유물 중에는 말과 관련된 것이 많다. 청동말, 마구, 채색도자기말, 마상수렵도, 천마도 등이 보인다. 그 중 천마도는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

 

a  낙타도

낙타도 ⓒ 이상기

낙타도 ⓒ 이상기

a  경작도

경작도 ⓒ 이상기

경작도 ⓒ 이상기

 

사주지로 진열청에는 실크로드 지역 출토물과 불교관련 유물이 많다. 불상들은 늘상 보던 것이라 별로 특이한 게 없다. 그런데 한 시대 묘지에서 출토된 화상석(畵像石)의 그림들이 정말 재미있다. 일종의 풍속화인데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사성이 느껴진다. 낙타를 끌고 가는 그림, 소로 밭을 가는 그림, 말 타고 사슴을 사냥하는 그림, 여인들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그림, 관리가 손님을 접대하는 그림 등 7-8종이 있다.

 

양관도위부

 

a  양관도위부 앞의 병용

양관도위부 앞의 병용 ⓒ 이상기

양관도위부 앞의 병용 ⓒ 이상기

 

박물관을 나와 다시 한궐패루(漢闕牌樓)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양관도위부 건물이 보인다. 도위부(都尉府)라면 도(都)를 지키는 부(府)라는 뜻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지역사령부 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건물 밖에는 진시황 병마용갱에 있는 병용(兵俑) 모형이 꽃밭 한가운데 서 있고, 건물 안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마련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양관을 떠나는 사람들이 검인을 받고 출관의식을 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옛날 복식 차림으로 사진을 찍거나 기념품을 사는 장소로 변한 것이다. 이곳에서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표정이 밝지는 않다. 옛날 양관도위부를 떠나면 정말 서역으로 들어서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즐겁게 도위부를 나와 양관문루로 향한다.

 

a  왕유 동상과 시비

왕유 동상과 시비 ⓒ 이상기

왕유 동상과 시비 ⓒ 이상기

 

이곳 양관과 관련된 시로는 서역으로 떠나는 친구를 위해 읊은 왕유의 '원이사를 안서로 보내며(送元二使安西)'가 가장 유명하다. 여기서 원 이사란 성은 원씨이고 벼슬이 이사인 친구를 말한다. 그리고 시에 나오는 위성은 위수(渭水)를 사이에 두고 창안(長安)과 마주보고 있는 도시로, 현재 함양(咸陽)시에 속한다.

 

위성에 내린 새벽비가 흙먼지를 적시니        渭城朝雨浥輕塵  

객사에 푸른 버들 색깔이 더욱 더 푸르구나.  客舍靑靑柳色新  

그대에게 다시 술 한 잔 권하노니                勸君更進一杯酒

서쪽 양관을 나가면 아는 사람이 없을 거야.  西出陽關無故人  

 

봉수대 언덕에서 사방 둘러보기

 

a  양관 봉수

양관 봉수 ⓒ 이상기

양관 봉수 ⓒ 이상기

 

옛날식으로 만들어 놓은 양관문루를 지나면 왕유의 동상과 양관시비가 있다. 이곳에서 봉수대까지 걸어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동차를 탄다. 날씨가 더워 걷는 것이 무리고 시간도 절약하기 위해서다. 전동차에는 10명이 탈 수 있다. 우리 팀 8명이 타니까 딱 맞는다.

 

차는 바람을 가르며 5분 만에 봉수대에 닿는다. 봉수대는 양관의 유적 중 유일하게 진본이다. 나는 먼저 봉수 앞으로 가 사진을 찍는다. 흙으로 쌓아올린 켜가 대여섯 줄 확실하게 보인다. 유사시 이곳 봉수에서 불이나 연기를 피워 위급상황을 안서도호부에 알렸을 것이다. 봉수대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40리마다 하나씩 설치되었다.

 

a  양관고지

양관고지 ⓒ 이상기

양관고지 ⓒ 이상기

 

양관봉수 앞에는 최근 만든 양관고도(古道) 주랑이 있다. 이 건축물의 역사성은 좀 문제지만, 관광객들이 쉬면서 왼쪽의 오아시스와 앞에 펼쳐진 사막을 조망할 수 있어서 좋다. 주랑 앞에는 양관고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표지석 옆에는 말이 있어, 이것을 타고 기념촬영을 할 수도 있다.

 

양관고도 주랑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언덕을 올라가면 그곳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양관박물관과 도위부 그리고 병영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 사막에 버려진 마차 너머로 푸른 오아시스가 보인다. 가까이에서는 젊은 처자들이 사막에서의 즐거움을 도약으로 표현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봉수대는 황량함이 두드러진다. 양관이 서쪽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a  마차 너머로 보이는 양관 오아시스

마차 너머로 보이는 양관 오아시스 ⓒ 이상기

마차 너머로 보이는 양관 오아시스 ⓒ 이상기

 

우리는 봉수대를 내려와 다시 전동차를 타러 간다. 그런데 일련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주랑 쪽으로 간다. 덥지만 정말 멋지다. 이곳을 지나던 옛 관리들은 아마 저렇게 말을 탔을 것이다. 우리는 전동차를 타고 양관병영 앞에 내린다. 병영 역시 최근에 만든 것으로 막사와 파오, 조망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을 잠깐 보고 우리는 쉼터 겸 기념품점으로 가 잠깐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서는 수박과 음료수가 가장 인기다. 값도 비싸지 않아 편하게 갈증을 풀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팀원 중 박정란 선생이 햇볕을 견디지 못해 봉수대를 먼저 내려와 쉬고 있다. 이곳 양관이 그런 곳이다. 지명도 햇살 가득한 관문이 아닌가. 우리 일행은 오후 6시가 되어 양관을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둔황 시내 가까이 있는 백마탑이다. 

 

백마탑에서 만난 구마라습 스님

 

a  백마탑 입구문

백마탑 입구문 ⓒ 이상기

백마탑 입구문 ⓒ 이상기

 

백마탑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넘었다. 이곳 시간이 북경표준시를 따르기 때문에 빨리 가는 편이다. 백마탑은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중국어로 옮긴 구마라습 스님이 머물던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384년 구자국(현재 쿠차)의 승려인 구마라습은 불경을 백마에 싣고 중국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창안으로 향한다.

 

그러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오다 백마가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은 마침내 둔황의 보광사에 도착하였고, 이곳에 잠시 머물며 역경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런데 죽은 백마가 늘 마음에 걸려 그를 기리기 위한 탑을 세우게 되었고, 그것이 백마탑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탑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무너졌고, 지금 있는 탑은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라마불교식의 현대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탑도 아주 깨끗하고 완전한 형태로 서 있다. 2층 기단 위에 7층 탑이 세워진 9층 구조물이다. 사실 라마식 탑의 층수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알 수가 없어 구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a  백마탑

백마탑 ⓒ 이상기

백마탑 ⓒ 이상기

 

내 나름대로 생각하기에는 2층 기단, 그 위에 우리 식의 3층탑, 그 위에 돌기와 꽃무늬가 있는 1층탑, 그 위에 복발 형태의 1층 탑신이 있다. 이 복발 위에 육면체 형태의 각진 1개 층이 있고, 그 위에 다시 줄무늬가 있는 항아리 형태 탑신이 1층 있다. 이 층은 어쩌면 첨성대 모습과 비슷한 요소가 있다. 그리고 그 위로 6각형의 옥개석과 상륜부가 연결되어 있다.

   

옥개석 끝에는 풍경이 각각 1개씩 6개가 달려 있으며, 상륜부에는 연꽃 형태의 앙련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이 맞는 아름다운 탑이다. 탑의 높이는 12m이고, 아래 지름은 7m이다. 탑의 재료는 흙과 석회다. 그러므로 석탑처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a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에 둘러 싸인 백마탑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에 둘러 싸인 백마탑 ⓒ 이상기

미루나무와 버드나무에 둘러 싸인 백마탑 ⓒ 이상기

 

우리는 이 백마탑에서 구마라습 스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구자국에서 태어나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에 능통했던 스님은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 양 문화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나는 구마라습 스님이 번역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문구에서,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세상의 소리(世音)를 보는(觀)' 스님은 정말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 같다. 요즘 말로 하면 공감각인데, 그 표현은 문학적인 차원을 넘어 정신적인 차원으로 승화되어있다. 현장 스님의 번역 '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과 비교하면, 구마라습 스님이 언어의 귀재임을 알 수 있다. '있는 그대로(自在)를 보는(觀)'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양관고성 #둔황고성 #양관박물관 #양관봉수 #백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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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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