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보 피해 주민 "물을 공중에 띄울 건가?"

경상남도 '낙동강사업 특별위원회', 합천보 상류 덕곡면 주민 간담회 열어

등록 2010.08.19 09:53수정 2010.08.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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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이상이 70% 이상 거주하고 있다. 우리는 농사짓는 일밖에 모른다. 빠른 시일 안에 농사짓도록 해달라. 농지리모델링은 안 된다. 2년간 공사를 벌여야 하고 땅도 고르고 하려면 최하 5년간 농사 못 짓는다. 지금 같은 토질을 만들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다. 보 공사를 중단하고, 보 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18일 오후 경남 합천군 덕곡면사무소 강당. 주민들이 김정강 경남도청 건설항만방재국장과 하창환 합천군수, 박우근 합천군의회 의장과 '낙동강사업 특별위원회'(아래 낙동강특위) 박창근 공동위원장(관동대 교수), 박현건 부위원장(진주산업대 교수) 등을 앞에 앉혀놓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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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낙동강사업 특별위원회'는 18일 오후 합천군 덕곡면사무소에서 경남도와 합천군청 관계자, 덕곡면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합천보로 인한 덕곡면 일대 농경지 침수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윤성효


이날 간담회는 낙동강특위가 마련했다. 합천군 청덕면 삼학리~창녕군 이방면 죽전리 사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건설되고 있는 합천보(20공구, 높이 9m, 길이 593m, 관리수위 10.5m)로 인해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등 인근 마을 농경지 60ha가 침수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덕곡면 4개 마을 농경지는 합천보에서 2.5~3km 상류에 있다. 합천보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발주해 에스케이(SK)건설이 짓고 있는데, 20공구 전체 공정률은 33%이고, 합천보 공정률은 55% 정도다. 합천보로 인해 덕곡면 4개 마을 농경지가 침수 우려에 놓였다는 사실은 지난 7월 12일 <오마이뉴스>("합천보로 지하수위 상승... 피해 뻔한데 대책 누락")가 언론 중에서 처음으로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경남도의회는 지난 5일 집행부에서 제출한 추경예산안을 수정해 '합천보로 인한 주변농경지 지하수위 상승에 대한 피해조사' 용역비(7500만 원)를 통과시켰다. 경남도는 용역업체를 선정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또 합천군의회는 지난 3일 '합천보 공사 중단'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합천보 건설 관련 덕곡면 주민대책위'는 공사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농지 리모델링 대신 함안보처럼 관리수위 낮춰야"

주민들은 합천보 건설 뒤 낙동강 수위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보다 5.5m 상승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덕곡면은 낙동강과 인접해 있어 지하수위 상승으로 영농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곳 농민들은 벼뿐만 아니라 마늘, 양파, 수박 등을 재배하고 있다.


대책은 합천보 관리수위를 낮추거나 농경지를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낙동강 함안보(18공구)의 경우 침수 우려가 제기되어 관리수위를 7.5m에서 5m로 낮추었다. 합천보도 관리수위를 3m 정도는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경지 리모델링을 할 경우 60억 원 정도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농민들은 농경지 리모델링에 반대한다. 이들은 관리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함안보의 경우 박재현 인제대 교수가 침수 우려를 제기했지만, 한국수자원공사가 처음에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받아들여 관리수위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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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합천군 덕곡면사무소 강당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에 참석한 김정강 경남도 건설항만방재국장과 박현건 진주산업대 교수, 박창근 관동대 교수, 하창환 합천군수, 박우근 합천군의회 의장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윤성효


"농민이 농사짓지 않으면 무엇을 하겠나"

주민들은 목청을 높였다. 대책위는 그동안 청와대나 국토해양부, 경상남도 등 관련 기관에 건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김수일 부위원장은 "경남도 행정부지사를 만나서 건의했더니 물에 잠기면 피해를 본 만큼 보상해 주면 되지 않느냐며 무책임하게 말하더라"면서 "농민이 농사짓지 않으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따졌다.

또 그는 "지하수위가 상승하면 농사를 못 짓는 게 당연하다"면서 "관계 기관에 아무리 건의를 해도, 청와대 등 기관들은 수자원공사에서 낸 입장 그대로 적어서 답변을 보내왔다. 정부가 국민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공사를 중단한 뒤 피해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주민들은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피해가 있다고 나온다면 관리수위를 낮추어야 한다"면서 "조사하는 동안 공사를 중단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머리카락이 희끗한 주민이 일어서더니 목청을 높였다.

"이런 사태의 원인을 누가 제공했나. 덕곡면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냐, 국책사업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냐. 아무리 좋은 법이고 정책이라도 상식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덕곡면에서 산 죄밖에 없다. 이곳에서 대대로 살고 싶다. 빨리 대책을 세워 달라."

농경지 리모델링은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농민은 "농경지 리모델링으로 가겠다는 방침이 있는 모양인데, 철회해 달라"면서 "군수 등 관계자들은 이같은 농민들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주민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 리모델링은 안 된다. 보를 낮추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책위 전정휘 사무국장은 "보 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물은 생긴다. 그러면 물을 공중에 띄울 것이냐"면서 "피해조사나 특위 활동에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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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덕곡면 주민들은 18일 오후 덕곡면사무소 강당에서 열린 '낙동강사업 특별위원회'의 간담회에서 합천보의 관리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했다. ⓒ 윤성효


경남도가 합천보 관련 피해조사 용역을 의뢰하더라도 그 결과는 빨라야 내년 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의회는 관련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해당 분야에서 전국 10위권 안에 드는 업체가 맡고, 4대강사업과 관련있는 업체가 맡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용역비가 낮아 1차와 2차 공개입찰도 유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행정적으로 입찰 절차는 대개 한 달 정도 걸린다. 수의계약을 하려면 2차 입찰까지 유찰되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3개월 뒤에야 용역 의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현건 부위원장은 "행정절차에 따라 수의계약한다면 올해 말에 발주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용역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안타깝다. 도의회에서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조건을 붙여 놓아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근 위원장 "일시 공사 중단이 원칙이지만..."

박창근 위원장은 "피해조사를 하면 일시 공사 중단을 하는 게 교과서의 원칙이다. 그런 다음에 대책을 마련하고, 주민한테 설명하며 동의를 구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설계변경도 가능하다"면서 "그런데 낙동강특위가 수자원공사에 공사를 일시 중지하라는 공문을 낼 수는 있지만,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수자원공사가 어떤 자료를 내놓더라도 신뢰를 상실했다. 어떤 대안을 내놓더라도 논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창환 군수는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보를 낮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면서 "농민들은 농사짓도록 해달라고 하고, 리모델링 이야기도 나온다. 빠른 시일 안에 조사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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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낙동강사업 특별위원회'는 18일 오후 합천군 덕곡면사무소 강당에서 합천보로 인한 침수 문제와 관련한 간담회를 열었다. ⓒ 윤성효


낙동강특위 위원인 박재현 인제대 교수는 "덕곡면 일대를 둘러봤다. 수자원공사에서 제시하는 자료에 오류가 많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면서 "행정 절차를 보면 올해 안에 결과가 나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데, 빠른 시간 안에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하고 대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합천보 관리수위를 낮추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낙동강특위 위원인 정동양 한국교원대 교수는 "갈수기에 보가 물을 받쳐주면 농사지을 수 있고,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너무 많이 상심하지 않아도 된다. 최선을 다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보가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수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할 수 있다.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배수방법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배수시설로는 침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창근 위원장은 주민들에게 "리모델링은 안 되고 관리수위를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냐"고 물은 뒤 "의논해서 좋은 안을 만들겠다. 주민들을 위해 문을 열어 놓겠다"고 밝혔다.
#4대강정비사업 #낙동강 #합천보 #관리수위 #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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