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in상Djin상
이안나
생각해보니, 4개 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을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왜 일본에 왔을까? 무엇을 얻고 싶을까? 나는 Djin상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뭘 배우는 거예요?"
"에또, 전공은 미학이라고. 간단히 말하면 예술을 공부하는 학문이에요."
"재밌어요?"
"재밌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렇죠 뭐. 지금은 앙리 베르그송의 지성의 발생이란 부분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어요. 한 단원 정도 인데 주제 자체가 심오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진도가 잘 안나가네요~. 졸업하려면 빨리 마무리 져야 하는데……."
"그럼 나중에 어느 쪽으로 나가요?"
그의 고개가 다시 한쪽으로 기울어 졌다.
"음, 어느 쪽이라……. 계속 공부를 해서 교수가 될 수도 있고 관련 분야를 자~알 찾아봐서 취업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다른 분야로 가려고요."
에엑? 이렇게 일본어까지 공부해가며 배운 학문인데?
"아니 아깝잖아요. 왜요? 왜요?"
나는 황당한 마음에 얼음물을 벌컥 벌컥 마셔 버렸다.
"전 아직도 제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아니 지금까지 충분히 하신 거 아녜요...?"
Djin상은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가 다시 웃었다.
"네. 어떤 관점에서는, 뭐 그런 셈이죠. 충동적인 부분도 있고 관심사도 다양해서인지 아직 이거다! 라는 걸 못 찾았어요."
"흠, Djin상. 제가 손금 관상 이런걸. 정말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공부한다던가 이런 건 아니고 혼자 책보면서 즐기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잘 모르는 제가 봐도 Djin상은 관상이 좋은 것 같아요. 뭔가 잘 되실 것 같아요! 다 잘 될 거예요."
"하하 아리가또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 감사합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새벽 3시. 여름밤의 무더위는 가라앉지 않았으나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을 생각하면 이 정도 더위는 애교스러웠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겠죠. 둘 중 적어도 한 가지라도 해낸다면, 지금보단 훨씬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예요. 다양한 곳을 여행한 이유도, 카우치 서핑을 하는 이유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이죠. 그러면 내 인생에 중요한 누군가를 만날 수도,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랑도 일도.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일적으로 만족할만한 회사가 있을지 모르겠어서 나~중에 정 안 되면 회사를 차려버릴까. 생각중이에요. 막상 자금은 없지만 하하하. "
"아, 그런데 부모님이 걱정은 안하세요? 저희 부모님은 무지 걱정하세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뛰어노는 망아지 같다고. Djin상은 망아지 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한 거니까 가족이 그리울 수도 그리고 가족들이 걱정할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설득하신 거예요?"
"저라도 안나씨 부모님이었으면 걱정했을 것 같아요. 하하. 농담이구요. 사실 저희 부모님도 걱정하시긴 하시지만, 제 인생에서 제가 행복한 길은 제가 선택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설명을 드렸고, 이젠 많이 이해해 주시는 편이죠. 분명히, 부모님이 분명히 저보다 오랫동안 인생을 살아 오셨고 그래서 세상을 더 잘, 많이 아시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를 경험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으세요. 그래서 부모님께서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분명히 그 길이 제 인생에 좋은 길인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건 객관적으로 좋은 길이지 주관적으론 제게 좋은 길이 아닐 수도 있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그니깐, 객관적으로 남들이 보기에 아, 행복하겠다 이거랑 주관적으로 아, 행복하다 .이거랑 다르다는 거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그리고 많이 경험하다 보면 제 주관적 잣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