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9.14 16:39수정 2010.09.14 16:39
천안함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길고도 질긴, 그래서 더욱 음울한 그림자다. 그 불가사의한 음영 안에는 완강한 생명력이 내재해 있다. 오래오래 이어지고, 확대재생산과 가공이 얼마든지 가능한 생명력이다. 그런 생명력을 지닌 천안함의 음영은 오늘도 자신을 에워싼 양광 속에서 더욱 확연해지는 아이러니를 배태한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천안함 보고서, 근데 뭐야 이건
▲천안함 사건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장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성호
▲ 천안함 사건 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장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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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천안함의 음영은 오늘도 자장 운동을 계속한다. 지난 1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기고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은 베트남전 확전의 계기가 됐던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통킹만 사건'은 통킹만에서 작전수행 중이던 미 구축함이 북베트남으로부터 어뢰 공격을 당했다는 주장으로, 미국의 본격적인 베트남전 개입 계기가 됐던 사건이다. 그 사건은 훗날 베트남전 개입을 위한 미국의 조작극이었음이 밝혀졌다.
"한국 정부는 보고서 내용을 완전히 공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객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한국 정부가) '합조단 보고서는 기밀이다. 우리는 이를 말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 경우, 진실은 우리를 교묘히 피한다. 한국 정부는 합조단 보고서의 모든 내용을 모두에게 공개해 천안함 침몰 원인을 누구나 정확히 알도록 해야 한다."
이런 그레그 전 대사의 지적이 일정 부분 효력을 발휘했다. 한국 국방부는 오래 전에 '천안함 보고서' 발간을 공언했고, 보고서 발간을 여러 차례 연기한 끝에 8월 말 배포를 예고하더니, 9월의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서 마침내 (종합) 보고서를 발간, 배포했다(나는 이 글에서 '최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종합'이라는 말을 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로 많은 국민들이 '천안함 (종합) 보고서'를 기다렸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천안함 (종합) 보고서가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했던 것이다.
드디어 민군 합동조사단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 실에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마디로 의문점을 한 가지도 명쾌하게 해소해주지 못하는 내용이었고, 또 기자회견이었다.
뉴스 보도 속으로 사라진 사실들, 진실은 뭔가
나는 여러 매체들의 관련 보도들을 면밀히 살피면서 '우격다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신선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은 한 가지도 새로 오르지 않고, 매양 똑같은 묵은 반찬에다가 조금씩 양념만을 덧바르거나 변조한, 겉보기만 푸짐한 음식상을 차려 내놓고 사람들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떠안기는 형국이기 때문이었다.
반찬을 여러 가지 너절하게 떠벌렸을 뿐 이미 진저리가 날 정도로 묵어 터진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이런 경우를 일러 '빛 좋은 개살구'라 하고, '속빈 강정이라 하든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억지로 먹으라 하니 어찌 우격다짐이 아닐 수 있으랴.
기다리던 천안함 (종합) 보고서가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올곧게 지니고 있는 의문 사항들은 정말이지 그 '종합'에 한 가지도 포함되지 않았다. 반토막으로 처리된 기자회견에서도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
사건 초기 보도가 되었으나 곧 묻혀 버린 사실들이 있다. 4월 7일 KBS 1 TV는 밤 9시 뉴스에서 3월 30일 수색작업 중 미군 감압챔버 안에서 사망한 고(故) 한주호 준위가 "다른 곳에서 숨졌다"는 보도를 했다.
용트림바위 앞바다 제 3부표 지점 바다 속을 잠수하여 탐색했던 UDT 동지회 잠수부는 KBS 9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천안함 함수인 줄 알고 들어가 보았더니 천안함이 아닌 이상한 대형 구조물이 있었다. 해치가 달린 대형 구조물이 있었고 해치를 열고 들어가 보니 소방호스 같은 것이 복잡하게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즉각 부인했지만, UDT 동지회 잠수부들의 그 증언도, 그것을 부인한 군 당국의 구체적인 설명도 '천안함 (종합) 보고서'에는 들어 있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 실속은 미국만 챙겼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북한군의 공격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 왜 천안함 침몰사고 다음날 새벽 본국으로 날아갔는지, 아무리 한국 해군과 미7함대의 합동훈련 중이었다지만 한미연합사령관과 미국 대사가 왜 전례가 없는 행동으로 사망자들에게 극진히 조의를 표했는지, 궁금한 것들이 참 많다. 의문 사항들을 일일이 정리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사고 당일 밤 11시 55분 천안함 인근의 속초함은 북쪽을 향해 76미리 함포를 5분 동안 130여 발이나 발사하고, 언론에는 함포사격 이유가 45노트로 북상하는 미상의 물체(나중에 새떼라고 발표) 때문이었다고 했다. 제대로 식별도 못한 물체를 향해 무려 130발이나 함포 사격을 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우습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이다.
사고 직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과 연관 지어 군사도발을 하지 않도록 자제를 부탁했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왜 방향 선회를 하고 북한군의 공격에 의한 침몰로 몰아가는 일에 보조를 맞추게 되었을까? 그것이야말로 천안함 음영의 핵심일 수도 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국은 한 걸음 더 미국의 속국이 된 양상이다. 천안함의 음영이 이명박 정부에는 큰 짐이 되었지만, 미국으로서는 알속을 다 차린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국익을 우선시하는 그들은 성공적인 거래를 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속성을 알고 자존심을 지닌 국민들은 미국을 다시 보고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2010.09.14 16:39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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