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왕리포구.
성낙선
피로 씻어 준 박속낙지탕 중왕리포구도 그렇고 이웃해 있는 왕산리포구까지, 이 지역에는 낙지를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음식점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박속낙지탕이 유명하다. 순전히 낙지를 맛보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처럼 여행 삼아 찾아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박속낙지탕은 맑은 국물에 박속과 감자 등속을 함께 넣어 끓인다. 어느 정도 국물이 끓기 시작했을 때, 산 낙지를 넣고 조금 더 끓인다.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 맛에 단 맛이 감도는 낙지가 일품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쌓인 피로가 일시에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다. 낙지를 건져서 간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고 나면, 국물에 칼국수나 수제비를 넣어서 한 번 더 끓여 먹는다. 나는 허전한 뱃속을 달래기 위해 밀가루 음식 대신 공기밥을 시켜 먹었다.
박속낙지탕을 먹고 나서 한가하게 포구를 서성인다. 그러는 사이 배 여러 척이 포구로 들어온다. 모두 낙지를 잡으러 멀리 나갔다 돌아오는 배들이다. 배에서 어구를 내리는 어부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낙지를 많이 잡았냐는 말에 '어디 낙지가 있간?'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말투가 퉁명스럽다.
얼마 전, 계속되는 비로 낙지들이 뻘 깊이 내려가 숨는 바람에 낙지가 잡히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낙지 머리와 내장에서 카드뮴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낙지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곤란을 겪어야 했다. 카드뮴 공포는 곧 사그러들었지만, 낙지를 잡아들이는 일이 예전만 못한 건 여전하다. 그나마 낙지 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계속 포구를 찾아오고 있는 게 다행이다.
중왕리포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왕산리포구까지, 다시 다리가 부러져라 산을 넘는다. 산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왕산리포구에서 호리까지 가려면 농로인지 산길인지 알 수 없는 소로를 타야 한다. 하지만 그 길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나같은 길치는 그 길에서 미아가 될 가능성이 90%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