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대땅끝마을 가는 길에 나타난 오르막길
성낙선
포구를 떠나 본격적으로 산길로 오른다. 생각했던 것보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다. 기어를 낮추면 중간에 멈춰서는 일 없이 꾸준히 페달을 밟고 올라갈 수 있다. 정상 부근에서부터는 비포장길이다. 그런데 그 위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두 길 중 한 쪽이 상대적으로 더 넓어 보인다. 그리고 시멘트 포장까지 되어 있다. 고민할 게 무언가. 바로 그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 길로 거의 15도 각도의 급경사를 내려간다. 도로가 10도 경사면 무척 가파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15도면 보통 경사가 급한 게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면서 다시 되돌아 올라갈 일은 없겠지 했는데, 웬 걸 그 길 100여 미터 앞이 제방으로 가로막혀 있다.
뭔가 낌새가 좋지 않다. 의구심을 잔뜩 품은 채 제방 위로 올라선다. 아뿔싸, 제방 아래가 바위투성이 해변이 있는 푸른 바다다. 그 바다 위에 낚싯배 한 척이 한가롭게 떠 있다. 해변 양쪽으로는 바위 절벽이다. 앞뒤 좌우가 꽉 막힌 지형이다. 막다른 길로 내려온 것이다. 비로소 길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길을 되돌아서서 다시 급경사 길을 올라가는데, 속에서 열불이 올라온다. 경사가 너무 급해 중간에 어디 자전거를 세워놓고 쉴 데도 없다. 그렇게 산봉우리 끝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그러는 사이 더 이상 이 길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결국 산봉우리에서 다시 포구로 되돌아 내려왔다.
숨을 고르면서 차분히 생각했다. 씩씩대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조용히 분을 삭이며 포구로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온다. 그 길 중간에 산봉우리를 우회해서 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을 안쪽 길이 여러 개 보이지만, 그 길들마저 싸그리 무시하고 달린다. 마을 안 길이라고 안심할 게 아니다.
자전거 여행의 절반은 모험 603번 지방도로를 달리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만 새섬리조트 표지판을 발견하고 만다. 바로 청산리포구에서 산봉우리를 넘어 찾아가려고 했던 그곳이다. 멀리 리조트 건물 옆으로 자동차들이 다니는 길이 하나 보인다. 저 길이라면, 자전거로 지나가도 크게 힘들지 않겠다 싶어 보인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눈 딱 감고 들어간다. 어차피 자전거여행의 절반은 모험이다. 고생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바에 굳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