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말나리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양식이 없어 섬말나리 뿌리를 캐 먹고 연명하였다고 하여 ‘나리골’이라 불리다 최근에 나리분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김종길
나리분지는 화산분화구에 화산재가 쌓인 화구원으로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비교적 넓은 평지다.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공도 정책으로 수백 년 비워 오다가 고종 때 개척령에 의해 개척민들이 이곳에 들어왔다.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양식이 없어 섬말나리 뿌리를 캐 먹고 연명하였다고 하여 '나리골'이라 불리다 최근에 나리분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개척 당시에 93호 500여 명이 살았다고 한다.
울릉도는 물이 많고 강설량도 많지만 화산재로 덮인 토질은 그 특성상 물을 유지할 수 있는 보수력이 약해 밭농사만 할 뿐 논농사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자연조건은 가옥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전통가옥인 투막집과 너와지붕을 한 우데기집이 아직 남아 있다.
버스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여행객들도 거의 없는 나리골은 한적했다. 담장 너머로 돌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이름 모를 꽃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숲 한쪽에는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된 섬말나리가 초가을 햇볕을 쬐고 있었다.
투막집은 키 큰 나무들에 가려 있어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눈비나 바람을 막기 위해 집 바깥쪽에 둘러친 우데기가 인상적이다. 1940년대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울릉도 개척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리분지 투막집 중요민속자료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눈비나 바람을 막기 위해 집 바깥쪽에 둘러친 우데기가 인상적이다.
김종길
투막집에서 길을 건너면 집이 한 채 더 있다. 안내문에 너와집으로 적힌 이 집은 투막집과 지은 연대와 구조가 엇비슷하다. 통나무의 귀를 맞춘 귀틀구조 등 내부구조도 거의 같고 우데기라 할 수 있는 외벽을 나무판으로 이었다. 다만 지붕은 억새가 아닌 나무를 쪼개 만든 너와지붕이다.

▲투막집 내부 통나무로 귀를 맞춘 귀틀구조와 부엌
김종길
옛집을 나와 다시 길 위에 섰다. 버스는 아직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나리골을 둘러싼 산에도 듬성듬성 붉은 잎들이 보였다. 가을이 오기는 오나 보다.

▲ 나리분지는 화산분화구에 화산재가 쌓인 화구원으로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비교적 넓은 평지이다.
김종길
여행팁☞ 나리분지 인근에는 울릉국화·섬백리향 군락지, 용출소, 신령수 등이 있다. 나리분지를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천부까지 와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천부에서 나리분지까지는 하루 9회 정도 버스가 다닌다.
※ 나리분지 가는 버스시간표
(
http://www.ulleung.go.kr/tour/guide/guide4.htm?&mnu_uid=400)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공유하기
화산재 쌓인 화구원, 울릉도의 가장 넓은 평원되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