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사에 '곤충'은 어떻게 이용될까

[서평] 마르크 베네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등록 2010.10.09 13:24수정 2010.10.0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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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겉표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겉표지알마
13세기에 중국의 한 농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살해당한 남자의 아내는 '남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없고, 다만 한 남자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내용의 진술을 했다.

13세기 중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현장을 수사했는지 모르겠지만 쓸만한 단서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법관은 살인에 사용한 무기가 낫이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서 낫을 꺼내보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중 한 자루의 낫에 유독 파리들이 모여들었다. 낫에 묻었던 피는 닦아냈지만 파리의 예민한 후각은 낫에 남아있던 혈흔의 냄새를 포착한 것이다.

당연히 그 낫의 주인이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그는 죽은 사람에게 돈을 빌렸던 바로 그 남자였다. 범행도구를 밝혀준 결정적인 단서가 바로 피였다. 특정 종류의 파리들은 살코기보다 피를 더욱 선호한다.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송나라의 책 <세원집록>에 실려있다. 범죄수사에 곤충을 응용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곤충은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게 된다.

시신에 모인 '곤충'으로 사망시간 추정

곤충과 범죄수사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다소 막연해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마르크 베네케의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마르크 베네케 저, 알마 펴냄)에 실려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형사들이 현장으로 출동하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다.


'피해자의 사망시간은 언제인가?'

사망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시신이라면 체온 등을 통해서 사망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사망하고 며칠 또는 몇 개월이 지난 후의 시신이라면 체온을 측정해서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것이 어렵다. 이럴 경우에는 곤충들이 도움을 준다.


사람이 죽고 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부패하는 과정에는 곤충들의 역할이 크다. 파리가 죽은 몸 속에 알을 낳고 갓 태어난 구더기들은 살을 파먹으며 성장한다. 딱정벌레 같은 곤충들도 시체를 뜯어먹기 위해서 모여든다. 특히 구더기들은 빠른 속도로 시체를 해체한다. 수천 마리의 구더기들이 소화액을 분비하면서 조직을 녹여내고 뼈를 잘라내기 때문이다.

시체에 모여든 구더기의 크기를 보면 곧 시체의 사망후 경과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의 경우 그게 몇 주 혹은 몇 달, 더 나아가 몇 년 전에 죽은 것인지 밝혀내는 데에는 곤충만이 유일한 단서가 된다. 사람이 죽고나면 부패하는 데에도 몇 가지 단계가 있다. 그 단계별로 저마다 다른 곤충이 모여들어서 썩은 부위를 먹어치운다.

범죄를 다룬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는 종종 살해당한 시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시체에는 구더기를 포함한 온갖 곤충들이 들끓기 마련이다. 구토가 나올만큼 징그러운 장면이지만, 바로 그 곤충들 덕분에 법의학자들은 시신의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살인사건을 수사할 때 피해자의 사망시간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혐오의 대상이던 벌레들이 범죄수사관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생명체로 취급받는 것이다.

곤충과 DNA를 포함한 과학수사 이야기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저자 마르크 베네케는 생물학과 곤충학을 전공한 법과학자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으로 달려가서 그곳에 남아있는 흔적을 감식해서 범행과정을 밝혀낸다.

저자는 독일 쾰른 시의 상공업특별위원회가 공증을 한 범죄수사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경찰청같은 조직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일을 할 때마다 손에 들어오는 보수가 쥐꼬리만큼이라고 한다. 현장으로 달려가면 악취가 진동하는 시체를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도 일급사건을 직접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일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을 검거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자신이 잡을 수도 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의 쾌감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저자는 그런 일을 지금까지 오랫동안 해온 베테랑이다. 저자가 말하는 범죄사건 수사의 핵심은 현장에 남겨진 흔적이 희생자와 범인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하는 일이다. 범죄학의 고전적인 법칙 중에는 '로카르드 법칙'이란 것이 있다. 강도건 살인이건 범죄자와 피해자가 마주친 장소에는 항상 그 흔적이 남는다는 것이다.

즉 범죄자는 범행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둔다는 얘기다. 어설픈 범죄자는 선명한 지문이나 신용카드 영수증처럼 자신의 신원을 알릴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꼼꼼한 범죄자라도 현장에 무언가를 남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신발에서 떨어진 흙, 아침에 뿌리고 나온 향수의 향기 등.

물론 이런 미량증거물로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증거물들을 모으고 분석한다면 특정계층의 사람으로 용의자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하면 증거물 분석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죽은 시신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저자는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서 과학수사의 수많은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백악관 스캔들도 과학수사가 밝혀낸 경우다. 클린턴은 계속해서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다가 르윈스키의 옷에 묻은 정액에서 추출한 DNA가 클린턴의 것이라는 사실이 과학수사를 통해서 밝혀졌다. 클린턴은 결국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수사관들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많은 시신을 접하게 된다. 살인사건의 희생자건 자연사한 시체건, 부패해가는 시신은 그 자체로 불쾌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관들은 시체에서 죽음의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상처를 파헤치고 곤충과 구더기를 채집한다. 한술 더떠서 일부러 돼지의 시신을 부패시켜가면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일들이 전혀 역겹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체는 죽기 마련이고 죽은 다음에는 부패과정을 통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시신이 부패하는 장면을 정교하게 묘사하며 '당신도 언젠가는 저 끔찍한 오물과 같아진다'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다루는 분야가 분야인 만큼 이 책에서는 부패해가는 시신, 뼈만 남은 시신, 거기에 모여든 구더기와 곤충 등의 사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저자를 포함한 과학수사관들은 죽은 시신에서 수많은 사실을 알아낸다. 그것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를 저 세상으로 편히 떠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마르크 베네케 지음 / 김희상 옮김. 알마 펴냄.


덧붙이는 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마르크 베네케 지음 / 김희상 옮김. 알마 펴냄.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수사 이야기

마르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알마, 2016


#과학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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