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328) 이원적

― '이원적으로 관리'와 '두 곳에서 따로 다루는'

등록 2010.10.11 14:13수정 2010.10.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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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적으로 관리

..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이원적으로 관리하는 한국 …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통합적으로 한 기관에서 관리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역사유적과 자연자원을 관리하는 기관이 다르다 ..  <이지훈-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한울,2010) 109쪽


'관리(管理)하는'은 '다스리는'이나 '맡는'이나 '다루는'으로 다듬습니다. '통합적(統合的)으로'는 '아울러'나 '나란히'나 '함께'로 손봅니다. '기관(機關)'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 자리에서는 '군데'나 '곳'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이원적 : x
 ├ 이원(二元)
 │  (1) 두 개의 요소
 │  (2) 으뜸이 되는 두 곳
 │  (3) [철학] 사물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근본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 일
 │  (4) [수학] 방정식에서 미지수가 둘 있는 일
 │
 ├ 이원적으로 관리하는
 │→ 따로 다스리는
 │→ 따로 맡고 있는
 │→ 두 곳에서 따로 다루는
 │→ 두 군데에서 나누어 맡는
 │→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루는
 └ …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낱말 '이원적'입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통합적'이라는 낱말 또한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원적'이든 '통합적'이든 두루 쓰고 있으며, 이러한 말마디를 알맞게 털어내거나 가다듬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보기글을 곰곰이 살피면,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이원으로 관리하는 한국"처럼 적바림하기만 하여도 됩니다. 뒷말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통합하여 한 기관에서 관리하는 미국"처럼 적바림해 주면 되고요. '이원'과 '통합'이라는 한자말을 쓰고 싶으면 쓰되, 이 낱말 뒤에 '-的'을 붙일 까닭이나 쓸모는 없습니다. 군더더기를 붙이는 셈이요, 얄궂게 말을 늘어뜨리는 셈이며, 우리 말글을 옳지 않게 망가뜨리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원'이란 바로 "두 가지"나 "두 곳"을 가리킵니다. 달리 깊거나 너른 뜻을 담은 낱말이 아닙니다. "이원적으로 관리한다"고 할 때에는 "두 곳에서 다스린다"는 소리요, 한 곳에서 맡을 일을 한 곳이 아닌 "서로 다른 곳에서 나누어 맡는다"는 이야기입니다.


 ┌ 이승과 저승 등 이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 이승과 저승처럼 두 모습이다
 ├ 왜 사람들은 이원적인 생각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 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좋아할까요
 │→ 왜 사람들은 두 가지 다른 생각을 좋아할까요
 ├ 중앙-지방 이원적 노인주거 정책
 │→ 중앙과 지방이 다른 노인주거 정책
 ├ 이원적으로 구분된 도시
 │→ 둘로 나뉜 도시
 │→ 두 갈래로 나뉜 도시
 │→ 두 모습으로 나뉜 도시
 └ …

국어사전에는 안 실린 낱말 '이원적'이기에 다른 자리에서 쓰임새를 찾아보니, 이 낱말을 거의 전문용어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학문에서든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철학에서든 무슨무슨 정책에서든 이 낱말을 즐겨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원적'을 쓴 자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노라면 하나같이 '둘(두)'이나 '다른(달리)' 같은 낱말을 넣으며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쓰면 넉넉한 말을 쉽게 쓰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살가우며 알차게 쓰면 좋을 말을 살가우며 알차게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여느 사람이 쓰는 여느 말씨로 학문과 정치와 경제와 철학을 북돋우려 하지 않으며, 여느 사람들 여느 말마디로 정책이름이나 정책말을 삼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두 갈래로 나뉜 말삶입니다. 지식을 부리는 사람들 말이 다르고 여느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 다릅니다. 지식을 쌓는 사람들 말이 다르고 여느 자리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말이 다릅니다. 지식을 건사하는 사람들 말이 다르고 여느 자리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 말이 다릅니다.

 ┌ 정부하고 국회는 이원적인, 다른 접근을 필요로 한다
 │→ 정부하고 국회는 서로 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 정부하고 국회는 사뭇 달리 다가서야 한다
 ├ 이원적 교원평가 고쳐야
 │→ 두 갈래 교원평가 고쳐야
 │→ 둘로 나뉜 교원평가 고쳐야
 │→ 엇갈린 교원평가 고쳐야
 ├ 이원적 세계 극복 위한 연구
 │→ 두 세계를 이겨내려는 연구
 │→ 두 갈래 세계를 이기려는 연구
 └ …

반드시 한 갈래로 모두어야만 한다고 여길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 터전에는 눈에 보이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기 때문에, 이 계급에 따라 저절로 말이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은 한글이거나 우리 말이라 하지만, 속보기로는 사뭇 다른 한글이거나 우리 말입니다.

대학교수가 쓰는 말이든 소장학자가 쓰는 말이든, 흔히 말하는 수구나 보수라는 사람이 쓰는 말이든 진보나 개혁이라는 사람이 쓰는 말이든, 여느 사람들 삶자리하고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신문에 실리고 방송에 흐르는 말마디는 여느 자리 수수한 말하고는 사뭇 벌어져 있습니다. 저잣거리 사람들 말씨는 억눌리고, 골목동네나 시골마을 사람들 말투는 짓눌립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이 나라 터전에서는 저잣거리가 사라지고 골목동네나 시골마을은 밀려나며 아파트숲으로 바뀝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들 대학교를 마치고 지식 눈높이가 높아집니다. 이제는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 말씨가 말 그대로 여느 자리 수수한 사람들 말씨가 아니라 '대학물 좀 먹은' 말씨인 듯 달라지려 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을 타면서 '이원'이나 '통합' 같은 한자말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한자말에 '-的'을 달아 놓는 말투가 생겨납니다. 처음부터 손쉬우며 살갑게 말하지 않고, 밑바탕부터 알차고 알맞으며 알뜰살뜰한 말삶을 일구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주어야 좋을는지 헤아리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말로 저희 생각과 꿈과 이야기를 빛내면 아름다울까를 돌아보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저희끼리 또다른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 오순도순 나눌 빛나는 말은 어떤 모습일는지 살피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말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터전은 말뿐 아니라 삶이 두 갈래로 나뉜 터전입니다. 잘사는 이와 못사는 이로 나뉘고, 힘있는 이와 힘여린 이로 나뉘며, 이름난 이와 이름없는 이로 나뉩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비정규직이며 누구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똑같은 땀을 흘리더라도 누구는 웃어른이고 누구는 아랫사람입니다. 저마다 고운 목숨임을 잊는 터전으로 나뒹굴면서 저마다 고운 말빛을 잊는 삶터로 굴러떨어집니다. 서로서로 애틋한 이야기 깃든 삶임을 잊으며 서로서로 애틋한 이야기 담는 말하고 울을 쌓으며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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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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