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하고 일당 귤로 받아가실래요?"

공짜 귤따기 체험, 제주도의 후한 인심에 반하다

등록 2010.10.26 13:50수정 2010.10.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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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신이나서 귤을 따고 있다. ⓒ 조정숙


제주도 여행 둘째 날(19일), 애월읍 곽지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펜션을 숙소로 정했는데 바람과 파도 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창문 너머 소나무가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지 자꾸만 유리창에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바람은 다행히 차갑지는 않고 포근하다.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들이마시자 도시에서 매연에 찌들었던 코가 뻥 뚫린다.

제주의 맑은 공기에 흠뻑 취해보고자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고 있는데 근처 집 마당 한편에 묘지가 보인다. 주위에는 돌담이 쌓여 있다. 제주도의 시골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주택 근처에 있는 묘지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생소한 풍경이 궁금해진다. "왜 하필 집 마당에 묘지를 만들었으며 돌담을 쌓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집 주위를 서성이고 있는데 마침 집 주인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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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집 마당에 묘지가 있다. 묘지는 동물의 피해를 막기위해 돌로 가장자리를 쌓았다. ⓒ 조정숙


"제주도에서는 예전부터 말과 소들을 방목을 해서 길렀습니다. 그런데 말과 소들이 무덤의 풀까지 뜯어 먹기위해 오면서 무덤 훼손이 많았어요. 그래서 동물들이 들어가서 무덤을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담을 쌓기도 하고 화전을 일굴 때 불이 번지지 않도록 돌담을 쌓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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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게 부서진 조개껍질이 많이 섞인 은모래가 펼쳐지고 은모래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실정도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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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제해수욕장에 바닷물이 들어오는곳에 용천수가 솟아나고 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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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만든다. ⓒ 조정숙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 방향으로 돌며 제주도의 비경을 눈에 담기로 맘먹고 고고씽. 곽지해수욕장을 지나자 제주시 한림읍 협제리에 위치한 협제해수욕장이 나온다.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이 많이 섞인 은모래가 펼쳐지고 은모래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해수욕하기에도 적당한 곳이다. 얕은 수심 때문인지 맑은 바닷물 때문인지 물빛이 쪽빛이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눈이 시릴 정도다.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기에 공기가 맑고 물도 맑다. 물이 빠져나갔다 서서히 들어오는 협제해수욕장을 걷는데 모래 위로 차가운 용천수가 뽀글뽀글 솟아오른다. 용천수는 지하에서 흐르던 지하수가 바위나 지층의 틈을 타고 지상 위로 솟아오르는 물이다. 섬 자체가 한라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주도는 사면의 해안과 중산간 및 높은 지대의 곳곳에서 용천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바닷물 한가운데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협제해수욕장을 떠나 10여분쯤 달리자 귤 밭이 나온다. 아직 이른 듯하지만, 노지에서 자라는 주렁주렁 매달린 귤을 보니 따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중, 근처에 탐스럽게 피어 있는 메밀꽃을 발견하곤 우선 그것부터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마침 귤밭 주인이 근처에 차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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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도로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탐스런 메밀밭이 반긴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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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메밀밭에서 포즈를 취한다. 마냥 즐거워하는 친구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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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유혹한다. ⓒ 조정숙




"혹시 귤밭 주인이신가요?"

"그런데요. 무슨 일로?"
"귤을 따보고 싶은데 딸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을까요?"
"저희는 체험하는 곳이 아닙니다. 다니다 보면 그런 집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꼭 귤을 따보고 싶다면 드실 만큼만 따서 드세요."
"그럼 적당히 따서 값을 치르면 안 될까요? 피해가 될까 봐서요."
"아닙니다. 돈은 받지 않습니다. 드실 만큼만 따세요."

귤밭 주인은 후한 인심으로 귤을 따서 먹어보라며 건넨다. 새콤한 맛이 강하다.

"아직은 귤 맛이 제대로 들지 않았어요. 노지 귤은 조금 더 지나야 수확합니다. 지금 따더라도 3~5일은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답니다. 귤나무가 800평에 300그루 정도 되는데 작년에는 이 농장에서 수확하여 700만 원 정도를 벌었어요. 근데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인해 꽃이 제때 피지 못해 수확이 줄었어요. 그 덕분에 작년에 비해 귤 값이 좋아 1천만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제주도 평년 귤 생산이 70만 톤이었다면 올해는 50만 톤 정도가 전부이거든요. 직업은 따로 있고 귤은 부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귤은 못 먹나요?"
"낙과요? 먹을 수는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버립니다. 일손도 부족하지만 상처가 난 것도 있기 때문에 방치합니다."
"귤 따는 작업은 가족이 하나요?"
"사람을 사서 합니다. 점심, 간식도 준비해야 하고 하루 일당은 4만 원이에요. 여기서 작업하고 하루 일당 귤로 받아 가실래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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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농장 주인 현치종(47)씨가 귤의 종류와 당도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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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과가 있지만 그냥 버린다고 한다. ⓒ 조정숙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현치종(47)씨가 말한다.

"어머나, 버려지는 귤이 아까워서 어떡하나?"

친구는 못내 아쉬워하며 매달린 귤을 따며 좋아한다. 미안한 마음에 귤 값을 주려 했지만 오히려 화를 내며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제주도의 후한 인심과 맘씨 좋은 사람들의 순박함,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잠시 멈춘다 한들 후회는 없으리라. 점점 제주도가 내 마음 속에 한가득 들어온다.
#귤밭 #협제해수욕장 #메밀밭 #제주도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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