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만원짜리 물건, 택배 도중 사라졌다면?

[아는만큼 보이는 법 49] 요즘판결6 - 리니지 아이템거래, 흉기 자동차 사건 등

등록 2010.11.16 12:46수정 2010.11.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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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판결> 여섯 번째 이야기다. 이번에는 자동차, 인터넷 게임, 택배 사고와 관련된 판결이다.

①자동차도 칼처럼 휴대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②리니지 게임 계정을 판 사람이 다시 접속해 아이템을 훔쳐갔다면 유죄인가, 무죄인가 ③고가의 물건을 분실한 택배회사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판결①] '휴대'한 자동차가 흉기로 돌변했을 때

영화 <택시4>의 한 장면. ⓒ ARP 셀렉션


사람을 때리거나 상처를 입히면 벌을 받는다. 당연한 소리다. 형법에도 폭행과 상해 처벌조항이 있다.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이런 짓을 하면 가중 처벌된다. 이건 특별법인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에 나온다.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은 어떤 걸까. 흔히 떠올릴 칼, 맥주병, 당구 큐대, 야전삽, 야구방망이 등이 그동안 법원이 흉기로 인정한 물건이다. 그럼 자동차는 어떨까.

#사례① 좁은 길을 운행중이던 한성질(가명)씨는 반대편에서 마주친 외제차가 경적을 울리자 화가 났다. 자신을 무시해서 쓸데없이 경적을 울린다는 생각에 그는 외제차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언성을 높였으나 분이 채 풀리지 않았다.

한씨는 잠시 후 뒷거울(백미러)에 외제차가 보이자 골탕을 먹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외제차가 바싹 다가오자 자신의 차를 갑자기 정차한 후 급기야 5m 정도 후진해버렸다. 외제차는 놀라서 급하게 뒤로 피하였으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한씨가 자동차라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고 차량을 망가뜨렸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본래 자동차 자체는 살상용, 파괴용 물건이 아니지만 이 사건 충돌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는 피해자는 물론 제3자라도 생명 또는 신체에 살상 위험을 느꼈을 것"이므로 한씨가 폭처법에서 정한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상해와 손괴죄'를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으로 부상이 크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춘천지법)을 깨고 11일 유죄의 취지로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판례는 폭력행위에서 '휴대'라는 개념도 단순한 소지뿐만 아니라 널리 이용하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해왔다. 그래서 승용차로 가해한 경우와 깨진 유리조각을 던진 경우도 휴대로 보고 있다.

법에서는 칼과 도끼만 흉기가 아니다. '휴대'한 자동차도 흉기가 되어 사람을 때리기도 한다.    

[판결②] 리니지 게임 계정을 산 사람은 접근권한이 없다?

게임 리니지 한 장면. ⓒ 엔씨소프트


#사례② 온라인게임광인 인이지(가명)씨. 게임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현금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2년 전 9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금먹튀(가명)씨에게 리니지 '케네니스' 서버 계정을 샀다. 금씨의 리니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통째로 넘겨받은 것이다.

그는 이 계정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 매일 공을 들였다. 그런데 올해 초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계정을 팔았던 금씨가 다시 접속하여 인씨가 애써 모아놓은 아덴(사이버머니)과 아이템을 갖고 튀어버린 것이다.

금씨가 어떤 처벌을 받았을지 궁금할 것이다. 결과는 무죄다. 왜 그랬을까. 검찰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금씨를 기소하였다.

제48조 (정보통신망 침해행위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넘어 정보통신망에 침입하여서는 아니 된다.

쟁점은 '접근권한'이 인씨와 금씨 중 누구에게 있느냐다. 돈을 주고 산 사람에게 당연히 권한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법원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부여한 접근권한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조항의 취지가 이용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망의 안정과 정보의 신뢰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도 덧붙였다.

따라서 계정을 넘겨받은 인씨는 정당한 접근 권한이 없는 반면, 원래 아이디의 주인인 금씨는 여전히 접근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12일 "리니지의 이용 약관상 계정의 양도나 매매를 금지하고 있고,인씨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동의를 얻지도 않았으므로 계정을 양수했더라도 금씨에게 여전히 정당한 접근권한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결론은 게임업체의 승낙이나 동의를 얻지 않는 한, 계정을 판 사람이 다시 자기 이름의 계정을 가져가더라도 형사처벌은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대법원의 판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인씨가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인 의견이긴 하나 민사소송을 통하여 금씨에게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금 반환을 구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정에까지 오지 않으려면 돈이 오가는 아이템 거래는 아예 하지 말거나 하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온라인상 거래는 워낙 사기가 많으므로 미리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판결③] "비싼 물건" 알리지 않았는데 분실한 택배회사, 책임은?

#사례③ 소유주(가명)씨는 3년 전 대학 기숙사 생활을 마감하며 짐을 쌌다. 짐은 조리용 칼과 책, 옷가지 등이었는데 집까지 들고 가기엔 너무 부피가 커서 택배를 불렀다. 기숙사로 온 A택배회사 직원은 소씨가 착불로 하겠다고 하자 '착불 5천 원'이라고 적은 운송장을 건네주고 물건을 들고 갔다.

그런데 며칠 후 공씨는 택배회사의 직원에게서 물건을 분실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씨는 물건값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가 회사쪽과 의견차만 확인한 채 작년 소송을 냈다.

법원은 "택배회사는 물건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여 수령인에게 인도해주어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며 "과실로 물건을 분실한 데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여기까진 당연한데 문제는 금액이다. 양쪽의 입장차는 컸다. 소씨는 고급칼 등 물건값이 1800만 원에 달한다며 전액 배상을 고집했다.

이와 달리 A사는 ▲약관과 상법 규정상 시효가 1년인데 2년이 지나서 뒤늦게 소송을 제기하였으므로 배상 책임이 없거나 ▲설사 책임이 있더라도 소씨가 귀중품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으므로 약관에 따라 50만 원만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전지법은 "상법상 1년 시효 규정과 약관상 50만 원 한도액 배상 규정은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에만 적용될 뿐 일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즉, 이 사건과 같은 택배분실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소송을 제기하면 되고 배상책임도 원칙적으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가란 사실, 사전에 알리지 않은 고객도 30% 책임"

그렇다면 법원은 소씨가 주장하는 금액을 다 인정했을까. 그렇진 않다.

먼저, 법원은 소씨의 주장대로 분실한 물건의 시가가 1800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또한 A사의 약관상 500만 원 이하의 물건만을 취급하는 점을 감안해 배상한도를 500만 원으로 정했다.

여기에 물건이 고가라는 사실을 사전에 택배회사에 알리지 않고 골판지 상자에 포장한 채로 아무말 없이 물건을 넘겨준 소씨에게도 30%의 과실이 있다고 보았다. 대전지법은 12일 이런 사정을 감안, "A사는 35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보니 택배회사의 주의의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택배를 맡기는 쪽에서도 몇가지 유의할 사항이 보인다. 다음 3가지만 기억하면 큰 문제는 없겠다.

1. 귀중품인 경우 운임이 할증되더라도 반드시 신고하자.
2. 운송장(이름, 주소, 물건 종류 등을 기재)을 꼼꼼히 확인하고 반드시 보관하자.
3. 물건의 하자나 배송에 문제가 생겼을 땐 서면으로 곧바로(적어도 2주내에) 문제를 제기하자.
#택배 #리니지 #자동차 #법원 #택배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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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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