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된 달금이, 독약을 먹었습니다

[새터 찾아 삼만리 32] 큼직한 놀래기 잡던 날 곰순이 새끼가 떠났습니다

등록 2010.11.28 11:15수정 2010.11.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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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로 이사오자마자 태어난 곰순이 새끼 달금이. ⓒ 송성영


언제나 그랬듯이 낚시 가방을 챙기자 우리집 개 곰순이 녀석이 펄쩍 펄쩍 뛰면서 컹컹 짖어댔습니다. 목줄을 풀어 놓자 이내 앞장을 섭니다. 낚시 가방을 챙기면 바다로 나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산행을 밥 먹듯이 하다가 바다에 적응을 하고 있는 주인을 닮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녀석은 산을 좋아 했듯이 바다 또한 아주 좋아합니다. 온몸이 북실북실한 털로 뒤덮여 있는 녀석이기에 산 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지난여름 내내 집 앞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겼습니다. 바다물에 들어서면 일이십 분 정도는 거뜬하게 버팁니다.

집에서 빠른 걸음으로 5분도 채 안 걸리는, 해변에 도착했을 때, 뭔가 허전했습니다.

"달금아! 달금아! 짜식이 어딜 간 겨?"

그런데 그날 따라 늘 어미 꽁무니를 따라 다니던 곰순이 새끼, 달금이 녀석이 보이질 않았던 것입니다. 천방지축,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달금이 녀석, 집 주변 어딘가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무엇인가에 푹 빠져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낚시하러 갈 건데, 달금이는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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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자유롭게 뛰어 노는 달금이와 곰순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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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전남 고흥으로 이사오자마자 태어나 그 새터의 지명을 따서 이름 지어준 달금이 녀석은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붙어 다녔다. ⓒ 송성영


전남 고흥에 이사오자 마자 한달도 채 안 돼 태어난 달금이 녀석, 새터의 지명을 따서 이름 지어준 달금이 녀석 또한 곰순이를 닮아 바다로 나서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두 녀석은 세상 근심 걱정 없이 너른 해변을 혓바닥 축 늘어지게 지치도록 뛰어 다니다가 바닷물에 풍덩풍덩 뛰어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곰순이 뒤를 따라 좀 더 깊은 곳으로 헤엄을 쳐 들어갔다가 그만 파도에 된통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론 더 이상 멀리 헤엄쳐 나가지 못했습니다. 해변에서 어슬렁거리며 곰순이가 수영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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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곰순이처럼 물속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던 달금이 녀석이었지만 언젠가 파도에 된통 당하고 부터 쉽게 물속으로 들어서질 못했다. ⓒ 송성영


달금이 녀석이 태어난 지 6개월 째, 붉은 고추를 아무데서나 비쭉 비쭉 내미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묶이지 않았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한 이틀 정도 묶인 적이 있었습니다.

녀석을 잠시 입양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이 이제 겨우 어미젖을 뗀 녀석을 아주 짧은 줄로 묶어 놓았던 것입니다. 성품이 온순하고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었기에 아무한데나 꼬리치고 따라 다니곤 했는데 그런 녀석을 길들이기 위해 묶어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곰순이나 달금이가 온 동네 사람들을 좋아하길 원했지만 그 사람은 오로지 주인인 자신만을 섬기기를 원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식구가 녀석을 다시 데려 온 그날, 녀석은 50센티 미터도 채 안 돼 보이는 짧은 목줄에 칭칭 감겨 비를 줄줄 맞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미 곰순이 품으로 다시 돌아온 녀석은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목줄에 묶이지 않았습니다. 천방지축이었지만 말길을 잘 알아들어 우리 식구가 나서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붉은 고추를 비죽비죽 내밀기 시작하는 사춘기에 접어들자 가끔씩 집 밖으로 나서곤 했습니다. 몸집도 점점 커져 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추수가 끝난 텅 빈 논바닥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게 되면 원성을 듣게 될 것 같아 목테를 구해 가끔씩 묶어 놓아야 할 시기가 왔다 싶었습니다.

"짜식이 어딜 갔지? 고추도 아직 덜 여문 짜식이 벌써부터 바람이 났나? 곰순아 우리끼리 그냥 가자!"

곰순이와 단둘이 간 낚시터, 엄청 큰 놀래기를 잡았는데 

달금이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곰순이와 단둘이 미끄러운 갯바위를 탔습니다. 자갈과 모래가 뒤섞여 있는 해변 오른편으로 갯바위를 타고 10여 분쯤 가다보면 수심 깊은 갯바위 낚시터가 나옵니다.

이른 봄에는 돌미역이 지천에 널려 있는 곳인데 가을부터 제법 굵직한 놀래미(놀래기)며, 씨알 작은 감성돔에 농어 새끼들이 낚여 올라오는 나만의 포인트입니다. 늦은 가을에 씨알 좋은 감성돔이 낚여 올라온다는 입소문 따라 이번에는 작심을 하고 새우 밑밥까지 준비했습니다.

곰순이 녀석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갯바위 주변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한 옆에 누워 멀리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다가 얌전히 누워 잠에 빠져 들곤 합니다. 낚시터로 따라 나선 처음에는 물고기가 걸려 나오면 벌떡 일어나 왕왕 거리며 달려들기도 했는데 몇 차례의 엄중한 경고를 받고 나서는 낚시터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고기가 잡혀 나오거나 말거나 갯바위에 바싹 엎드려 두 눈을 끔벅거리며 얌전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농어 새끼 몇 마리가 씨알 작은 감성돔 몇 마리에 학 꽁치 몇 마리를 잡아나고 마지막 끝물에 주섬주섬 낚시가방을 챙기는데 꽤 큼직한 놀래기가 걸려 올라왔습니다. 이제까지 잡은 놀래기 중에 가장 큰 놈이었습니다. 뜰채가 필요할 만큼 큰 놈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깊은 바다로 나가야 잡힐 만큼 큰 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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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잔챙이만 낚아 오다가 모처럼 만에 배를 타고 나가 수심 깊은 바다에서나 낚을수 있는 큰 놀래미(놀래기)를 잡았다. ⓒ 송성영


보통 잔챙이 몇 마리로 만족해야 했는데 운수가 좋은 날이었습니다. 낚시가방을 챙겨 놀래기 회를 맛있게 먹게 될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누구보다도 펄쩍 펄쩍 뛰며 반겨줄 달금이 녀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러 다니는 아내 역시 집에 없었습니다. 큼직한 놀래기를 도마 위에 올려 사진을 찍어놓고 달금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달금아! 달금아!"

그동안 달금이가 죽었다, 독약을 먹었나보다

곰순이 녀석을 묶어 놓고 집 주변을 둘러보다가 얼음땡 놀이를 하는 놈처럼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멈춰 섰습니다. 두 다리에 맥이 풀렸습니다. 집 뒤편에 달금이 녀석이 꼬꾸라져 있었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토해 놓고 죽은 듯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녀석을 흔들었습니다. 녀석은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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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금이는 납작 엎드려 밥을 먹을 정도로 엉뚱한 놈이었다. ⓒ 송성영


달금이 녀석은 엉뚱하고 온순했습니다. 천하의 게으름뱅이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녀석은 납작 엎드려 밥 먹는 것을 즐겼고 아이들이 장난삼아 돌탑을 쌓아 놓아도 꿈쩍도 않고 잠들만큼 온순했습니다. 녀석은 그 날도 그렇게 아무런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흔들어 깨워도 일어설 생각도 않았습니다.

녀석은 독약을 먹은 모양입니다. 벼논을 헤집고 다니는 족제비나 너구리들을 잡기 위해 벼논 사이사이에 쥐약 같은 독약을 놓곤 한다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모양입니다. 추수가 다 끝난 텅 빈 들녘에 노출되어 있는 그 독약을 생각 없이 주워 먹었던 모양입니다.

녀석은 야생동물처럼 살다 갔습니다. 들로 산으로 천방지축 뛰어 다니다가 묶여야 할 시기가 다가올 무렵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가족과의 7개월의 인연, 짧다면 짧은 시기지만 현관문을 나서면 늘 한 몸 처럼 붙어 다녔던 녀석이었습니다.

언젠가 나 또한 새 터에서 세상을 떠나겠지만 녀석은 새 터에서 태어나 새 터에서 살다가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 터에 훈훈한 생기를 불어 넣어준 고마운 녀석이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집으로 놀러온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송곳니를 들어 내 놓고 위협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착한 녀석이었는데 누군가가 벼 몇 포기를 살리기 위해 놓은 독약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족제비나 너구리같은 야생 동물대신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 어떤 야생 동물이 녀석의 목숨을 대신 살아가고 있겠지요.  

논 바닥에 독약을 놓은 것이 누구인지 대충 감이 잡혔습니다. 당장 쫓아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도 컸습니다. 그 누군가가 우리집 개든 야생동물이든 논바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독약을 놓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도 차일피일 미뤄가며 차마 달금이를 묶어 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독약 놓은 사람한테 가서 따져? 그게 현명한 걸까

싸움은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싸운다고 달금이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달금이 목숨을 놓고 옳으니 그르니 따진다고 해봤자 극약을 놓았던 그 누군가는 분명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극약을 놓는 게 잘못이라는 걸 알았다면 애초에 논바닥에 극약을 놓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결국 극약으로 경고장을 내민 것도 큰 잘못이지만 그 경고장을 무시하다가 화를 당한 쪽도 분명 큰 잘못인 것입니다. 당장 눈 앞에 닥친 결과만을 놓고 따진다면 큰 싸움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과 우리 가족 사이에는 생각없이 눈 인사로 주고 받는 작은 평화조차 없을 것입니다. . 

마을 사람들과도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니편 네편 갈라 잘잘못을 따져가며 서로 증오심만 키우게 될 것입니다. 피해를 당한 우리 가족이 참는다면 더이상 문제는 불거지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우리식구와 한 가족처럼 지냈던 달금이의 죽음에 대해 그 사람 역시 언젠가는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것 조차 기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뭔가를 기대하다가 그 기대감에 미치지 못하면 또다른 싸움의 불씨를 만들어 낼수 있으니까요.

그 어떤 생명이든 죽음 앞에서는 죽음을 유발한 사람을 향한 증오심은 또다른 죽음을 낳게 할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증오심만은 피해야 합니다. 그 증오심은 또다른 증오심을 유발시켜 또다른 극약으로 달금이의 어미 곰순이의 죽음마저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가 잘못이 없다고 증오심을 품고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더이상 평화는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지하벙커에 숨어 전쟁을 부추기는 전쟁광들만 살아 남게 될 것입니다. 평화를 갈구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주둥아리만 나불거리는 전쟁광들의 세 치 혀끝으로 부터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승자도 없습니다. 다만 증오심과 폐허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빳빳하게 굳은 달금이 녀석을 들쳐 안고 노란 들꽃이 피어 있는 집 뒤 저만치 밭 끝자락으로 옮겼습니다. 아내는 다시 태어나면 독약 없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라며 향불을 피웠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동생들을 데리고 병들어 죽은 강아지를 산에 묻어 줬던 기억을 되새겨 가며 아이들과 번갈아 가며 말없이 땅을 파고 또 팠습니다. 땀인지 눈물인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를 느끼면서 말입니다.

녀석을 다 묻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어디선가 읽었던 선문답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선승이 어느 선사에게(아마 주조선사 였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만물에 불성(佛性)이 있다 했는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선사는 "무(無)"하고 답했다고 합니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 불성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러나 저러나 결국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달금이 녀석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달금이 녀석을 땅에 묻는 이 순간 만큼은 '불성이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가족처럼 지냈던 달금이 녀석과의 인연, 녀석의 죽음으로 인해 잦아든 고통과 슬픔이야 말로 녀석에게 불성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얻어들은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만물에 불성이 깃들여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불성으로 온전히 깨달은 자에게만이 가능한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녀석의 시..."창피하다, 근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달금이가 세상을 떠난 며칠 후, 우리 집 작은 아이 송인상이 녀석이 가을 여행을 다녀와서 학교에서 내준 시 한편을 적어 보여 주었습니다.

소풍 간다는 소식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엄마 아빠는 평소보다 말수가 없었다.
싸우기라도 했나?
밥을 다 먹자 아빠가 밖으로 나오라 한다.
달금이가 죽었다고 했다.
눈물이 안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 뒤
아늑한 곳에 삽으로 땅을 팠다.
땀이 나온다.
아빠 말대로
어쩌면 땀이 아닌 눈물인지도 모른다

소풍을 가려는 아침
귀찮을 정도로 반겨주던 놈이 없다.
허전하다.
갑자기 목이 메인다
소풍 가기가 싫어진다.
동네 아이들과 통학차를 기다리며
달금이 이야기를 꺼냈다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주변에는 누나들도 있고 동생들도 있다
창피하다
근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나는 녀석의 목이 메는 시를 접하면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차별 없는 생명의 소중함을 얘기해 주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달금이가 죽어가는 순간, 큰 고기를 잡아 맛있게 회 떠먹을 생각을 하면서 기뻐했던 내가 어찌 차별 없는 생명을 얘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다만 살아 생전 목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달금이에 대해 한마디 던질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달금이는 우리 한티 한 번도 묶이지 않고 살다 갔잖어, 그렇치 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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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금이는 아이들이 장난삼아 돌탑을 쌓아 놓아도 꿈쩍도 않고 죽은 듯이 잠들만큼 온순하고 엉뚱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렇게 잠들 듯이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떠났겠지요. ⓒ 송성영


#달금이 #큰 물고기 #죽음 #불성 #차별없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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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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