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에 핵발전소가 들어선다고? 이런 날벼락이!"

[새터찾아 삼만리 33] 새터 정착 1년만에...원전 반대가 지역이기주의?

등록 2010.12.08 09:35수정 2010.12.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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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에서 청정지역 고흥에 느닷없이 핵발전소 유치신청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 송성영


전남 고흥으로 이사 온 지 10개 월 째로 접어들고 있는 며칠 전,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거의 3년에 걸쳐 전국을 대상으로 그야말로 '새 터 찾아 삼 만리' 끝에 평생 살만한 터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곳에 핵발전소가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들려 온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 좋고 농지 값 저렴하고 풍부한 해산물에 청정 지역인 고흥이야말로 귀농의 최적지라 한창 입소문을 내고 있었고 이미 몇몇 사람들에게 정착할 만한 터를 알아봐 달라는 주문까지 받아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26일, 한국수력원자력(이후 한수원)이 신규원전 후보지로 전남 고흥과 해남, 강원 삼척, 경북 영덕군 등을 꼽으며, 4개 지방자치단체에 유치신청을 요청했고 이들 중에 두 군데를 신규부지로 확보할 계획이라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그 어디든 안전지대는 없는 것일까요? 고흥지역에서 핵발전소를 유치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손 전화 메모를 보내온 강복현 선생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 선생은 고흥지역에서 오랫동안 시민사회운동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이게 뭔 날벼락이랍니까?"
"우리도 전혀 몰랐습니다."

한수원이 발표하기 전까지 고흥 지역의 민주시민단체 사람들 역시 전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수원에서 일방적으로 후보지로 선정해 발표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흥군은 이미 1982년 핵발전소건설 예정지로 지정고시 됐지만 군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주민간의 큰 갈등 없이 지난 1998년 핵발전소 후보지 해제를 이끌어 냈다고 합니다.


"지난 국정감사 당시 발표에서도 제외 되었는데 일부 주민들의 유치 움직임에 따라 한수원이 고흥군을 일방적으로 선정해 놓고 군민들 간의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죠."

핵발전소 반대가 지역이기주의? 지들 동네에 건설하라지!

강 선생은 지역민들의 반대로 후보지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이 또다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강 선생과의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듣던 큰 아들 인효 녀석이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아빠, 학교에서 배웠는데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하던데,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걸 도시 사람들이 지역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면 뭐라고 대답 할껴?"
"그렇게 안전하고 이익이 많이 돌아간다면 당신들 지역에 건설하시오, 그러지. 우리나라에서 전력 소비량이 가장 많은 서울 근처에 핵발전소를 설치하겠다고 한다면 서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겠냐?."

전력 소모량이 많은 대도시 주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게 되면 구태여 철탑 등을 세워 먼 거리에서 전기를 끌어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 핵발전소가 지어지면 그만큼 자연 경관이 파괴될 뿐만 아니라, 철탑과 송전선으로 경관마저 망치 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핵발전소의 위험은 둘째 치고 대도시 사람들이 전기를 물 쓰듯이 쓰기 위해 그만큼의 자연 환경마저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핵발전소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안전성을 강조한다해도 그만큼 위험천만한 시설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은 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전기를 물 쓰듯이 써가며 핵발전소의 절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대도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한다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핵발전소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자신의 지역에 핵발전소 설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한수원에서 내놓은 '2010년 원자력발전백서'에서 밝힌 아래 그림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한수원에서는 핵발전소를 원자력 발전소라는 명칭을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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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에서 내놓은 내놓은 설문조사결과. 핵발전소에 대한 필요성은 높이 나타나고 있지만 거주지 내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27,5%에 불과하다. ⓒ 송성영


한수원의 홍보 전략에 따라 2006년에 비해 핵발전소의 안전성 등에 대한 인식도 수치는 올랐다고 하나, 여전히 핵발전소의 필요성에 비해 '안전성'이나 '거주지 내 건설' 찬성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한수원에서 밝힌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고 해도 거주지 내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27.5%에 불과한데 어떻게 선정한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원치 않아도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것인가요?

고흥에서는 지난 12월 3일. 핵발전소 저지고흥대책위원회 발기인 모임(이하 핵발전소고흥저지위)이 있었습니다. 이날 발기선언문을 통해 핵발전소 유치에 대한 문제점을 요목조목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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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핵발전소 저지고흥대책위원회' 발기인 모임 ⓒ 송성영


"우리지역에 핵발전소를 유치하려는 사람들은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인구가 유입되고 지역경제 발전에 큰 보탬이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인구가 늘어날까요? 이미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전남 영광의 경우만을 놓고 볼 때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영광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홍농읍의 인구는 2008년 5월(8071명)에 비해 2010년 10월(7716명) 현재 365명이 줄었습니다."

또한 '핵발전소고흥저지위'에서는 '고흥 원자력발전소유치추진위'가 매년 800억원이 지원 될 것처럼 군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며,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영광군을 예를 들어 그 이유를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영광군의 경우 1996~2003년 12월말까지 특별지원사업 556억원(2004년 이후 없음), 1999년~2009년말까지 지역지원사업 1754억원, 2006년~2010년 사업자지원사업 575억원 등 1996년부터 15년간 총 2885억 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인심 좋은 고흥이 주민들이 핵발전소 때문에 갈라져 싸워야 하다니 

"핵발전소가 유치되면 지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이익이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농어민들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서 나오는 농수산물을 누가 사먹으려 하겠습니까?"

특히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로 인한 어장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영광군의 경우만 보더라도 온배수로 인한 어업생산량 감소에 따른 피해율이 81.96%에 달합니다. 온배수가 나오는 일정 해역에 온대성 어종이 살고 있어 온배수가 배출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온대성 어류는 온배수 배출구의 한정된 곳에서만 서식할 수 있고, 냉대성 어류가 살고 있는 곳으로의 확산이 불가능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지요."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그 피해가 고흥군과 인접해 있는 보성군을 비롯해 장흥에서 완도군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는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부터 가동에 이르기까지 온갖 민원성 집단행동으로 인해 주민들간의 갈등과 반목, 대립과 분열로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고 그에 따른 행정력 낭비와 경제적 손실이 엄청날 것입니다."

고흥 민주단체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임규상 선생은 앞으로 핵발전소저지 운동을 펼쳐 나가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역민간의 갈등을 꼽고 있었습니다.

"고흥은 옛부터 관리들이 울고 왔다가 웃고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오지지만 그만큼 자연경관이며 인심 좋은 곳이 바로 고흥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친구가 놀러 왔는데 고흥 주변을 둘러보고 길거리 점포에서 커피 두 잔을 마셨는데 그 점포 주인이 한사코 돈을 받지 않더라구요. 그 서울 친구가 그 오백 원짜리 커피 한 잔에 그만 녹아 버렸답니다. 이런 인심 좋은 고흥에서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싸워야 하니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아무리 터가 좋은 청정한 지역, 반농반어로 살만한 터전이라 한들 인심이 야박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임규상 선생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흥에 터 잡은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가을 추수에 쌀을 나눠주는 사람, 땔감이 떨어지면 땔감을 건네주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오백원 짜리 커피 한 잔' 그 이상의 인심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여 나또한 뭔가를 나눠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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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좋고 자연환경 빼어난 고흥. 우리집 아이들의 등굣길에서 만난 가을 아침 바다. 만약 핵발전소가 건설 된다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올 것이다. ⓒ 송성영


앞의 한수원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았듯이 지역 내 주민들 대부분은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핵발전소고흥저지위'에서는 고흥군민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고흥 아줌마가 당장 데모하러 가자네."

아내가 고흥에 핵발전소가 들어설지도 모른다고 가깝게 지내는 동네 아줌마(우리 식구는 고흥에서 가장 먼저 사귄 그 분을 고흥아줌마라 부르고 있습니다)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인데, 그 얘기를 꺼내자마자 열 일 제쳐놓고 당장 데모하러 가자하더랍니다.

한수원의 설문조사 결과에서처럼 지역 내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는 하나 고흥 아줌마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는 간혹 핵발전소 유치를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도시에 비해 누릴 것도 가진 것도 적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들, 핵발전소 건설 유치 찬반에 따른 주민들 간의 갈등을 누가 책임 질 것입니까?

현대 생활에서 전기 없이 생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전력소모를 줄여가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태양열을 비롯한 재생 에너지를 늘려나간다면 더 이상의 핵발전소 건설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전력소모를 줄인다면 그만한 불편이 뒤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느림의 미학으로 불편을 감수하는 만큼 자손대대로 물려줄 청정한 고흥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청정한 고흥은 고흥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대대로 누려야 할 청정지역입니다.

굳이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IAEA의 기록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방출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 방사능 오염의 400배)를 자세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위험성과 엄청난 피해 규모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매우 안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안전을 유지해 온 핵발전소라 하여도 단 한 번의 사고로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는 것이 또한 핵발전소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수원이 내놓은 '2010년 원자력발전 백서'에 보면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난 2009년 말 기준 가동 원전기수는 20기로 늘어나 전체 발전설비 용량 24.1%를 점유하고 있고, 선진국들이 원전축소 정책으로 신규원전 건설을 억제하고 있을 때에도 지속적인 원전건설을 추진해 왔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원전축소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이유는 제대로 따져보지고 않고 말입니다.

아름다운 고흥을 지키기 위해 한 몫을 다하겠습니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지진에 안전한가
2004년 5월 29일 울진핵발전소에서 불과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리히터 규모 5.2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이 지진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후로 가장 강한 규모의 지진이었지만 다행히 발전소 안전에는 이상이 없었다. 당시 은영수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세계적으로 지진에 의하여 원전의 안전에 피해가 보고된 바는 없다'며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안전에 대해 확신했다.

2007년 7월 16일에 일본 나가타현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가시와자키 가리와 핵발전소에서는 보관 중이던 핵폐기물이 쏟아지고 화재가 발생했으며 결국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어 '안전과 클린'을 강조하던 일본 핵산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일본은 지진 발생횟수가 높지만 이곳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대로 알려져 있었다. 또 일본 핵산업계는 내진설계로 인해 핵발전소 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쳐 왔다. 절대적인 안전을 확신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지진에 안전한가> -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 본부장의 프레시안 기고문중에서.(2008년 5월 16일자)


또한 한수원은 다양한 언론홍보 노력에 힘입어 2009년도 언론보도 기사 중 우호보도와 사실성 보도 비율이 96%에 이르렀고 비판성 보도는 5% 미만을 기록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사람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원자력이 갖는 엄청난 에너지와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맹신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핵발전소고흥저지위' 발기인 모임에 다녀 온 다음날,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터 알아보신다는 거 어떻게 됐습니까?"
"아이구, 지금 터 알아볼 겨를이 없네요, 몇 달만 기다려 주세요, 고흥에 지금 정신없는 일이 생겨서, 내년 3월쯤에서나 다시 생각해 봐야 겠슈."

핵발전소 유치를 희망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은 지방의회 동의서류를 첨부한 신청서를 내년 2월 28일까지 한수원에 제출하기로 되어 있고 그 신청서에  따라 핵발전소 선정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고흥을 나서다보면 '고흥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라는 표어가 내걸려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더이상 고흥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고흥을 누가 만들어 가는가?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라고 봅니다. 그 아름다운 고흥에서 평생을 살고지고자 할 사람들을 위해 내 한 몫을 다 할 것입니다. 고흥에서 평생을 살고지고자 할 우리 식구도 이제 고흥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고흥 핵발전소 유치신청 요구 #한국수력원자력 #핵발전소 저지 고흥대책위 #핵발전소의 안전성 #지역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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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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