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95회)

목밀녀(木蜜女) <2>

등록 2010.12.10 11:28수정 2010.12.1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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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모의 가사에 의미심장한 숫자라···.'

더구나 그 숫자를 팽조선인이 비방에 사용한 것이란 점에서 사건의 방향을 은근히 그쪽으로 잡아끌었다.


조선의 젊은이들이 혈기 방장할 때 춘화(春畵)에 관심을 두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림의 대부분은 도인법(導引法)이나 양생술(養生術)에 뿌리를 둔 <소녀경>과 교묘한 상관관계를 잇대고 있지만, 팽조선인은 <열선전전(列仙全傳)>에 은근한 말을 남겼지 않은가.

<남녀가 합금(合衾)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대부분 올바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석실비록(石室秘錄)'이니 '비인외전(非人外傳)'이란 기이한 덫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본인에게 소용되는진 모르고 있다. 장수를 누리며 합금을 즐기는 길이 팽조비방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런 점 때문에 장안의 한량 임찬호는 음기가 강한 열여덟 살 처녀로 망월사 여승을 가려뽑았고, 그녀가 광나루 건너 마장문(馬場門)에 이를 때까지 한강변을 오가며 기다렸을 것이다. 정약용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래턱을 감아쥐었다.

'그러니까···, 임찬호와 여승은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말똥 냄새 풍기는 마장문을 이용한 것이렷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이곳에서 두 사람은 남북으로 갈렸다고 했다. 성동구엔 마장동이 있고, 남쪽 중량천 건너엔 뚝섬이 자리잡았다.


조선 초기부터 마장동엔 말을 가르는 양마장(養馬場)이 있어 '마장동'이란 지명이 생겨났는데 제주도 같은 데서 한양으로 말이 올라오면, 그 이전의 지명이 자(雌)양동에서 자(紫)양동으로 바뀐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암컷은 자양동과 모진동으로 보내졌고 수컷은 마장동의 말 목장에서 길렀기에 주변에 가축시장과 도살장이 들어선 건 우연한 일이 아니다.

남녀가 마장문 주변에서 만나면 임찬호는 준비한 <승가> 한 편을 건네며 행복한 사랑으로 발전하길 설레는 마음으로 기원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났다 헤어진다면
못난 저는 앞으로 목이 쉬도록 울겠지요
기어드는 목소리로 조심해 가시라고
두 손 모아 허리 굽혀 절하겠지요

두미골은 갈수록 멀어가고
눈앞엔 망우리가 가로뻗었네
그리움을 짊어지고 한 치 한 치 돌아올 때
석양볕은 옷깃에 쏟아지네요

이것은 <승가>의 '남도사십해' 가운데 나오는 구절이다. 서정성이 넘친 가사를 떠올리며 여승을 만난 임찬호가 음기가 강한 처녀가 왜 필요했는지 <열선전전>의 팽조비방에 대해 생각했다.

<열선전전>이란 중국 고서는 종래의 음양서완 다른 일면이 있었다. 팽조는 남녀화합의 합금을 위해 여인도 방중술을 알아야한다고 권하기 때문이다.

은근과 끈기를 미덕으로 삼는 조선 여인들에게 해괴망측한 방사(房事) 기술을 권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으나 후손을 잇는 문제라면 다르다.

아무리 지저분한 방법이나 처절한 수단도 후손을 이을 수 있다면 떳떳이 사용할 수 있는 비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팽조비방>이 권하는 건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만이 고상한 척 너스레를 떨지만 그건 방법을 찾지 못해 안간힘 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 정상적인 사이라면 정겨운 부부처럼 상대를 아끼고 공대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해 보라. 두 개의 나무토막을 비벼댄다면 어떤 감동이 있고 즐거움이 따르겠는가. 그렇기에 여인도 수동의 자세에서 벗어나 유동(蚴動)해야 한다.>

'유동'이란 게 뭔가. 새끼 벌레가 고물고물 움직이듯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춘화는 극과 극을 점과 선으로 달리기 때문에 강렬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이유가 있을 뿐이다. 그건 <팽조비방>의 교훈 때문이다.

<이십 대의 여인이 배워야 할 것은 방사의 초보격인 <소녀경(素女經)>을 통해 '남녀간의 방사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법칙(陰陽交媾)이다. 삼사십 대엔 <현녀경(玄女經)>을 통해 음양이기(陰陽理氣)의 원리를 깨우치며 오십 대 넘어서는 <채녀경(采女經)>을 배워 방사가 선도와 관계가 깊고 불교의 금강대승밀교(金剛大乘密敎)와 연관됐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유학을 숭상하는 조선의 선비들은 '양기를 스스로 저장하라는' 팽조비방을 굳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사정을 하지 않고 양기를 저장하는 게 신장(腎臟)을 강건히 하는 것임을 모른척 했기 때문이다.

그 점은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나이가 되도록 '성(性)'이니 '합금(合衾)'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는 데다 학문을 가까이 하면 성의학(性醫學)에 관한 예기치 않은 서적을 만나게 된다. <옥방지요(玉房指要)>가 그렇고 <옥방비결(玉房秘訣)이 그랬다.

조선의 선비들이 내밀하게 생각하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바다 건너 왜나라의 도꾸가와 막부 시대엔 자료를 구하기 위해 유학생을 중국황실에 파견해 책을 훔쳐오게 한다.

그 책이 <소녀경>으로 알려진 <천금방(千金方)>이고 훔쳐온 이는 오오노(小野妹子)였다. 그들은 왜 이 책에 관심을 기울였을까? 그것은 남녀간의 방사에 '천 가지 비방이 있다'는 말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오오노가 훔쳐온 책은 일본 황실에 <의심방(醫心方)>으로 자릴 잡았다. 그러나 당시 일본 황실의 한문 실력이 바닥을 쳤기 때문에 '노어지오(魯魚之誤)'의 두찬(杜撰)이 심했다고한다. 이를테면 노(魯)와 어(魚)를 구별하지 못한 실력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양의학의 뼈대를 이루는 <황제내경(黃帝內徑)>을 풀어낸 기술자들이, 갓 천자문을 뗀 자들이고 보니 성의학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오역과 오자투성이니 그 해는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비방'이니 '비록'이니 '신선처방'이라는 이름으로 남녀의 합금과 아들낳는 처방이 등장하니 사대부가의 안방마님들도 대(代)가 끊기는 걸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택했다.
자식이 없는 대전별감 댁을 찾아간 임찬호는 철판을 깐 얼굴을 디밀며 제멋대로 혀를 놀렸다.

"마님, 사대부가에 시집 온 여인은 뭣보다 아들을 쑥쑥 낳아줘야 집안의 대(代)를 잇습니다. 중원에서 전해진 비방서에 의하면, 나이 열넷을 상등(上等)이라 하여 홍상미판(鴻潒未判)이라 하며 초조(初潮) 직전의 여인을 가려뽑습니다."

"나이 열넷이면 어리잖은가?"
"비방서엔 여인의 나일 칠칠(七七)이라 했으니 열넷의 나이가 맞습니다."
"그건 어찌 그런가?"

"마님, 칠칠의 나이가 상등에 속하는 건 '명(命)' 뿐만 아니라 '성(性)'의 조건에도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초조 작전의 여인을 손에 넣으면 '깨달음'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대부가에선 눈썹이 맑고 눈이 아름답거나, 입술이 붉고 치아가 아름다운 여인보다 후손을 잇기 위해 깨달음이 열리는 여인을 찾게 됩니다."

"그런 계집을 쉬이 구할 수 있는가?"
"예에, 마님.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소인이 찾아온 것이지요."

"그럼 당장 데려오게."
"허지만 마님, 귀한 보물일수록 깊은 곳에 감춰있기 마련입니다."
"깊은 곳이라니?"

"마님, 이 댁에 도움이 되는 여인은 산 중에 사는 여승입니다."
"여승?"

"예에, 망월사의 여승 월곕(月溪)니다. 더구나 그 여인은 나이 열여덟이니 후손을 얻기 위해 '대추받이 여인'으로 사용하기에 적격입니다."
"뭐라, 대추받이 여인?"

"세상에 알려지기론 목밀녀(木蜜女)라 합니다. 마님께서 들으셔서 아실 것입니다만, 예전에 궁에서 사포(司圃) 직에 있던 남치옥 별감이 눈여겨보고 있는 계집입니다. 그 사람도 자식이 없어 후손을 잇지 못한 상태니 소인에게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만, 박상원(朴相元) 나으리가 전하를 모시는 대전별감으로 계시니 더욱 더 후손이 절실하겠지요."

"내가 전생에 어떤 죄가 있기에 달랑 딸아이만 낳는지 모르겠네. 내 자네의 수고비는 섭섭지 않게 줄 것이야. 지금이라도 아들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더 없는 다행이련만···."
"마님께서 그리 생각하시면 소인이 그 여승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때 한 번 보시지요."

그 날은 가볍게 인사치레로 헤어졌지만 월계(月溪)를 만난 부인은 얼굴이 밝아졌다.
"자세한 얘긴 이 사람한테 들었네. 우리 박씨 가문을 위해 대추받이를 한다 했는가."

'대추받이'는 <열선전전>이란 중국 고서에 모습을 보인다. 기원전 976년에 즉위한 서주(西周)의 목왕(穆王)의 심부름꾼으로 팽조를 방문하여 비방을 얻었다는 기록이다.

그런가 하면 동진시대에 쓰여진 <습유기(拾遺記)>에도 기묘한 얘기가 비치고 있다. 여선인의 원로로 치는 서왕모(西王母)는 쉰 살에 보위에 오른 왕이 동쪽 지방을 순찰할 때 선계에서 모습을 바꾸어 하계로 내려와 잠자리를 하게 되었다.

이때 서왕모는 자신의 국부안에 넣어 퉁퉁불린 마른 대추를 꺼내 왕에게 먹으라고 권한다. 여인의 분비액으로 불려진 남성용 방중비약은 해구신(海狗腎)이 밀릴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다. 반드시 국부 안에 넣었던 대추가 아니라 해도 마른 대추 100그램 정도를 복용하면 부부화합의 묘약이 된다.

내장의 쇠약을 고쳐주고, 노화를 방지하며 소변을 시원하게 배출시켜주는 대추는 정신안정제로서의 속효성이 있다. 부인의 마음이 약해 놀라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답답해 할 때 오래 전부터 한방엔 감맥대조탕(甘麥大棗湯)을 약재로 쓰고 있다.
그러나 팽조는 말한다.

"이런 약을 아무리 복용해도 남녀화합의 원리를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남녀화합의 방중술은 약을 복용하는 게 아니라 원리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 원리라는 게 뭔가? 바로 <팽조비방>의 일곱 가지였다.

[주]
∎합금(合衾) ; 섹스
∎유동(蚴動) ;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
∎초조(初潮) ; 첫 번째 월경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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