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과 한미연합훈련으로 한반도에 전쟁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28일 밤 서울 종로2가 보신각앞에서 열린 '전쟁반대 평화기원을 위한 시국기도회'에 참석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촛불을 들고 있다.
권우성
1년 전 <오마이뉴스>에 입사하기 전, 아니 2주 전 정치부로 옮겨오기 전까지 나도 그랬다. "의회가 그렇지 뭐, 또 싸우는구나"라며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8일 현장에서 본 국회와 본회의장은 달랐다. 울화가 치밀었다.
야당은 오랜 기간 동안 4대강에 쏟아부어지는 9조 원 가량의 예산을 막겠다며 반대 의사를 개진해왔다. 여야간 일부분 접점을 찾아가는 듯도 했다. 그러나 토의된 내용은 모조리 사라진 채 한나라당의 안 그대로 예산안이 통과됐다. 강 한 가운데를 개발하겠다는 친수구역활용특별법 등 민감한 법안들도 제대로 된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강행 처리됐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과 국회의장, 의사봉만 있으면 모든 법이든 처리시킬 수 있고, 그 어떤 예산안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기세였다. '합의'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 의회에서 대화는 사라진 채, 한나라당이 쪽수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의원 수의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는 야당 의원들은 몸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몸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이를 국정에 반영할 기회를 상실한 의원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다수의 의원들이 진심을 다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꼈다.
이정희 "힘의 논리 앞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남았나, 괴롭다""아,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 건가."한숨이 배어나왔다. '날치기'를 눈앞에서 보니 가슴이 저릿하기도 했다. 4대강 예산을 막겠다, 악법 통과를 간과하지 않겠다고 벼르던 야당 의원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이 대표는 8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 "새벽 3시 30분 본회의장 자려고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떻게 했으면 이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 힘의 논리 앞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남았나, 생각은 꼬리를 물고 마음은 괴롭다"며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나라당의 날치기 처리를 몇 시간 앞 둔 상황에서 솟아난 자괴감의 표출이었다.
특히 이 대표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으로서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부자감세'를 저지하려고,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를 통해 '대기업 배불리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해왔다. 민주노동당 차원에서도 부자감세를 극복할 새로운 안을 제시하기도 하는 등 열성을 다했지만 이 노력이 물거품 된 데 대한 허탈감은 더 컸을 것이다.
누리꾼들 중에서도 '왜'를 돌아보고는 이 대표를 지지하게 됐다는 이도 있었다. 이 대표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중 가장 인상적인 글은 "나는 우파이자 보수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누리꾼의 것이었다.
그는 "이정희 의원(대표)을 처음 알게 된 건 옛날 광우병 사태 때 경찰차로 호송되면서 절규하던 인터넷 사진을 본 직후였다,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망가지면서까지 자기주장을 펼칠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고 글을 올렸다. 이어 그는 "이번에 또 실려 가는 이정희 의원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다"며 "쾌유해서 또 싸워 달라, 그게 진리라고 믿는다면 정치색과 상관없이 이정희 의원만은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드센 저항의 이유를 생각해 본 후 '정치인' 이정희를 응원하게 됐다는 목소리였다.
실신 이후 하루를 쉰 이 대표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10일 오후 시청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날치기 원천무효! 국회 해산! 이명박 정권 퇴진!' 비상시국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호소문을 읽으면서도 금세 목이 잠겼다. 지쳐보였다. 이 대표는 몸은 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은 좀"이라며 힘없이 웃었다. 기자회견 후 차에 탄 이 대표는 창문을 내려 현장에 남아있는 보좌관에게 자신이 지니고 있던 손난로를 건네고 떠났다. '인간 이정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국회 밖과, 국회 안의 모습은 달랐다. 2주차 정치부 기자인 내가 본 정치는 그랬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까'에 대한 답을, 조금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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