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에 왜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있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⑦]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곳들

등록 2010.12.19 18:04수정 2010.12.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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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일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둘째날이자 마지막날은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곳으로의 여행길이 이어졌다. 블라디보스톡 추모공원부터 독수리 전망대, 신한촌 기념비, 안중근의사 기념비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들. 그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블라디보스톡 추모공원, 잃어버린 이들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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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잠수함박물관 ⓒ 최지혜


블라디보스톡 추모공원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공원이다. 추모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219m의 거대한 잠수함 한 척이 눈길을 잡아끈다. 이 잠수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군함 10대를 침몰시킨 유명한 구소련 태평양 함대로 그 모형을 그대로 복원해놓은 것이다. 구 소련 해군은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이러한 형태의 잠수함을 14척이나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쟁 동안 16개를 추가로 받았다. 전쟁이 종결되며 훈련소 역할을 하였던 잠수함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개방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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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추모공원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 ⓒ 최지혜


추모공원의 벽면과 비석에는 수많은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벽면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각국의 이기심 때문에 나라의 국민들이 피를 흘려야 했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어야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반도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그들이 겪었을 아픔이 남일 같지만은 않다. 러시아 여행을 떠나오기 전, 연평도 사건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떠올라 먹먹해진다. 이곳에 새겨진 이들과 연평도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아까운 청춘들의 넋에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다음엔 평화로운 세상에서 숨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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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불꽃은 365일동안 꺼지지 않는다 ⓒ 최지혜


계단의 양 옆 낮은 받침대에는 각각 1941, 1945라는 숫자가 새겨져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와 종결된 해를 나타내는 숫자이다. 숫자가 새겨진 받침대 위에는 탱크와 대포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 계단의 중앙에는 365일 언제나 불꽃을 뿜어내는 영원의 불꽃이 있다. 이는 세계대전 당시 시베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마음도 꺼지지 않으리라.

추모공원의 맞은 편에는 군대가 자리 잡고 있어서 운이 좋다면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이나 실제로 사격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방문한 때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훈련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러시아 멋진 해군들의 아침 조회 모습은 살짝 엿볼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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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추모공원내의 흐람 ⓒ 최지혜


영원의 불꽃 뒤쪽으로 보이는 곳은 '흐람'이라고 불리우는 정교회의 건물이다. 정교회가 미사도 드리고 행사를 거행하는 곳이라면 흐람은 작은 기도소라고 할 수가 있다. 많은 정교회 신자들이 출퇴근길이나 지나다니는 길에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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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개선문 ⓒ 최지혜


흐람 뒤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을 막고 우뚝 서 있는 개선문이 있다. 이것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기념으로 지은 것으로 러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부터 서쪽 끝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 방문한 모든 도시에 똑같은 개선문이 있다. 러시아의 도시들을 돌아보게 된다면 개선문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다음 목적지를 위해 길을 돌아 나오는 길, 팔짱을 낀 한쌍의 커플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해군 아들과 면회 온 어머니의 다정한 데이트가 보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블라디보스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독수리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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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블라디보스톡항의 모습 ⓒ 최지혜


어느 도시에나 마찬가지로 블라디보스톡에도 전망대가 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높다는 오를리노예 그네즈도산에 위치한 독수리 전망대이다. 걸어서도 가뿐히 오를 수 있을 정도인데 이 도시에서 가장 높단다. 겨우 해발 214m. 이곳은 단지 걸어서만 오를 수 있다.

차도 다닐 수 없고, 케이블카 이런 것은 기대하지도 마라. 모노레일 비슷한 것을 발견하긴 했지만 전망대를 오르내리는 것은 아니다. 현지인들은 이곳을 독수리 요새라고 부른다. 군사도시인 블라디보스톡은 모든 지역이 요새화 되어 있다.

오를리노예 그네즈도산 역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이곳을 요새화 시켰고 독수리요새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전망대라고 부른다. 전망대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는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다. 시내쪽은 물론이고 분주함이 느껴지는 항구 쪽도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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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전망대의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동상 ⓒ 최지혜


전망대 꼭대기에는 두 남자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십자가를 들고 있어 러시아의 정교회와 관련된 동상인 줄 알겠지만 그게 아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키릴로스와 메소디오스라는 이름을 가진 한 형제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인 키릴문자는 글라골 문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며, 그 글라골 문자를 고안해낸 사람이 동방 정교회의 선교사 성 키릴로스와 그의 형 성 메토디오스이다. 이 형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동상을 세우게 된 것이고, 십자가를 들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 모두 성인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들이 글라골 문자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론도 있다고 하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동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전망대 아래 계단을 내려가면 작은 기념품가게가 있다. 인형안에 인형, 그 안에 또 인형이 반복되서 알까기 인형이라고 불리우는 마트로시카 인형을 비롯해 털모자, 액세서리 등 다양한 러시아의 기념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곳 사장님이 한국말을 아주 잘 한다는 것이다. 체구도 우리보다 한참 큰 서양인이 어린 아이처럼 어설프게 한국말을 해대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블라디보스톡에서 기념품 가게로 추천할 만한 곳은 이곳과 굼백화점 뿐이라고 한다. 다른 곳들은 값싼 중국산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본인도 지인들에게 선물할 마트로시카 인형을 3개 샀다. 오늘 서울로 돌아오는 배에 올라야 하는데 터무니 없이 많이 남은 루블화도 처리할 겸.

잃어버린 땅, 그리고 고려인의 터전을 기념하는 신한촌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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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신한촌 기념비 ⓒ 최지혜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입니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내외 지사들은 신한촌에 결집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필사의 결의를 다진다. 성명회와 권업회 결성, 한민학교 설립, 신문발간, 13도의군 창설 등으로 민족역량을 배양하고 1919년에는 망명정부(대한국민의회)를 수립하여 대일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민족은 1937년 불행하게도 중앙아시아에 흩어지게 되고 신한촌은 폐허가 되었다. 이에 해외 한민족연구소는 3·1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재러·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인식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이 기념탑을 세운다.

이 글귀는 1999년 8월 15일 신한촌기념비가 세워짐과 동시에 한국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작성한 문구이다. 뿔뿔히 흩어져야 했던 한민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오는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글귀이다. 이러한 이유로 새겨진 신한촌기념비는 디자인장이라는 한국사람이 디자인한 작품이다.

가운데의 가장 긴 비석은 대한민국의 남한,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상징하며 둘러싸고 있는 작은 비석들은 해외동포들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이 하나되는 컨셉트의 구성이다. 기념비의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고려인이 800명 정도가 다니던 곳이며 러시아의 경제공황 이후 많은 이들이 우수리스크로 이주를 했다.

현재 우수리스크에는 3만명 정도의 고려인이 코리아 타운을 중점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블라디보스톡에는 1000명 정도가 남아있다. 뺏겨버린 땅, 연해주.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그들만의 터전을 닦고 있다.

민족의 역사적 영웅 안중근 의사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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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주립의과대학과 그곳에 세워진 안중근의사기념비 ⓒ 최지혜


블라디보스톡에 왜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있지? 처음엔 좀 의아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시기(1907~1910)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나 역시 처음이다. 이럴 때는 정말 '역사시간에 공부 좀 할 걸'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기 전 머물던 곳이 바로 블라디보스톡이다. 이에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동양의학의 발전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하여 블라디보스톡 주립의과대학교 안에 안중근의사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누군가는 안중근 의사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라서 의과대학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웃음이 터졌지만, 기념비를 본 순간 그 웃음이 괜히 죄송스러워진다.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너무나 초라한 모양새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념비의 모습에 혹자는 마음이 좋지 않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겐 역사적 영웅이신 분의 기념비인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20070456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http://dandyjihye.blog.me/140120070456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블라디보스톡 #추모공원 #안중근의사기념비 #신한촌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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