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

'박영희 시인과 함께 하는 만주기행'을 다녀와서(22)

등록 2010.12.20 16:39수정 2010.12.2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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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끊어진 압록강철교 위의 돌비석, ‘鴨綠江’이라 음각된 붉은 글씨가 한국전쟁의 상처자국으로 보였습니다.

끊어진 압록강철교 위의 돌비석, ‘鴨綠江’이라 음각된 붉은 글씨가 한국전쟁의 상처자국으로 보였습니다. ⓒ 조종안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해 건설(1911년)한 '압록강철교(압록강단교)'는 한국전쟁 중에 미군의 폭격으로 절반 구간만 남아 민족상잔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아픈 상처를 입장료까지 내면서 둘러보다니 어딘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람선을 타고 조·중 접경지역을 둘러본 우리는 반쪽만 남은 압록강철교 위로 올라갔다.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단교 옆에는 조·중 무역화물 80%를 담당한다는 '조중우의교'가 놓여 있었다.


조금 걸어가니까 붉은색으로 '鴨綠江'이라 음각한 돌비석이 보였다. 건너에는 포격으로 파괴된 교각이 60년 전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난간에 서니까 북한이 더 가깝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뛰어서 건너갈 것 같았지만, 마음뿐이었다.

a  압록강철교 입구에 세워진 중공군사령관이었던 팽덕회와 중국군들의 부조

압록강철교 입구에 세워진 중공군사령관이었던 팽덕회와 중국군들의 부조 ⓒ 조종안


손만 뻗어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더 나아갈 수 없다니, 분단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약소국의 서러움에 비애감이 들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을 지휘했던 팽덕회(펑더화이) 부조(浮彫)를 보니까 마음의 상처가 덧나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안 된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북은 공멸하고, 이웃 나라만 좋게 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추스르며 발길을 돌리는데 시선은 계속 북한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김대중 대통령 1주기가 되는 날(8월18일)이어서 더욱 심란하고 착잡했다. 1주기 행사 추모위원인데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카페 운영자라는 부담감 때문에 더했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잠시 강변을 거닐었다. 끊어진 압록강 철교를 배경으로 아내와 박영희 시인과도 기념촬영을 했다. 단체로 소풍 나온 학생과 자녀를 동반한 부모들도 자주 눈에 띄었는데, 생동감이 넘치는 단둥 시와 땅도 사람도 검게 보이는 신의주가 자꾸 비교되었다. 

북녘을 바라보며 서울-신의주 경의선 복원은 언제 이루어질지, 같은 동포요, 형제인데 누가 왕래를 가로막고 있는지, 단절된 남북 대화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등 답답한 마음에 우문우답만 되풀이하고 있는데 "점심식사 하러 갑시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북한 주민이 운영한다는 '평양 옥류식당'에서

a  북한 주민이 운영하는 ‘평양 옥류식당’ 입구, 나란히 걸린 인공기와 오성기가 질투를 느끼게 했습니다.

북한 주민이 운영하는 ‘평양 옥류식당’ 입구, 나란히 걸린 인공기와 오성기가 질투를 느끼게 했습니다. ⓒ 조종안


점심은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다는 말에 환호성이 터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기뻐했다. 간판은 '평양 옥류식당'이었고, 압록강철교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400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건물 외부를 수리하고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는 가슴에 붉은 인공기 배지를 단 여성들이 손님을 안내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상냥하고 친절했다. 문득 2002년 부산 아세안게임 때 남한을 방문했던 북한 미녀응원단 모습이 떠올랐다. 옷차림만 달랐지 모습은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걸린 중국 오성기와 북한 인민기가 눈길을 끌었다. 순간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부산 아세안게임 때 남북 선수단이 동시입장 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곱씹으며 한참을 바라보는데 아내가 "밖에서 뭐하세요? 빨리 들어오지 않고···."라며 성화를 냈다.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파란 원피스 차림의 여종업원들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북한 특유의 억양으로 "어서 오시라요!"라고 인사했다.

a  식사를 하면서도 마냥 즐거워하는 일행. 초등학교 4학년 나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마냥 즐거워하는 일행. 초등학교 4학년 나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자리를 잡고 앉아 둘러보니 너나할 것 없이 이산가족을 상봉하러 나온 가족들처럼 흥분과 기쁨에 넘친 표정들이었다. 여종업원들은 테이블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불편함은 없는지 모자란 음식은 없는지 묻고, 부족한 게 있으면 챙겨주었다.

처음 맛보는 북한 음식이었는데 평소 먹던 중국요리와 비슷했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해산물 무침, 양장피, 야채샐러드, 오리 알 요리, 두부무침, 순대 등 10가지가 넘는 중식과 한식 요리가 뒤섞여 나왔는데 우리의 전통 맛이 살아 있어 다행이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니까 종업원들이 분주히 오가면서 무대를 정리하고 악기를 점검하더니 공연이 시작되었다. 가수로 변신한 종업원들은 기타를 어깨에 메고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춰 '아리랑', '휘파람', '감격시대', '나그네 설움', '반갑습니다', '늴리리야' 등을 메들리로 불렀고, 우리는 손뼉으로 화답했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

a  가수로 변신해서 흘러간 노래를 메들리로 열창하는 종업원들. 손을 흔들면서도 왜 측은한 생각이 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가수로 변신해서 흘러간 노래를 메들리로 열창하는 종업원들. 손을 흔들면서도 왜 측은한 생각이 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 조종안


a  북한 여성들과 노래를 함께 부르는 김두현 인솔자. 아직 미혼이어서인지 북한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반가움이 앞선다고 하더군요.

북한 여성들과 노래를 함께 부르는 김두현 인솔자. 아직 미혼이어서인지 북한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반가움이 앞선다고 하더군요. ⓒ 조종안


인솔자(김두현 43세)가 앞으로 나아가 마이크를 잡고 함께 노래를 부르니까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평화통일 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있으면서 교류를 통한 인도적 지원 등 남북관계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인솔자는 금강산 15번, 평양 5번, 개성에 8번 다녀왔다.

"북한의 가무를 보니까 분단의 서러움이 밀려왔어요. 올해가 6·15공동선언 10주년인데, 북한을 통해 중국으로 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매우 서글펐습니다. 하지만, 북녘 동포들과 통일의 마음을 나누는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평화와 통일의 마음을 모으고 싶었습니다."

별로 말도 없이 구경만 하던 이시호 선생이 앞으로 나가 북한 여성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니 환호성이 터졌다. 원래는 식사를 마치고 공연을 30분 한다는데 호응이 좋아서 10분 연장한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은찬이도 감정이 북받치는지 한마디 했다.

"학습된 북한 식당의 종업원과 끊어진 압록강 철교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나라가 정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분단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비극적인 분단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21세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조국의 평화통일이라는 것도 느꼈고요."

은찬이는 일주일 가까이 함께 다니면서 말을 걸면 무척 수줍음을 탔는데 이날은 달랐다. 너무나 논리가 정연해서 더는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남북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가치 추구는 어른이나 아이나 느낌이 같은 모양이었다. 압록강철교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허전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a  북한 여성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기뻐하는 꼬마들.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일까요?

북한 여성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 기뻐하는 꼬마들.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일까요? ⓒ 조종안


연장 공연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고, '다시 만나요'를 엔딩 곡으로 막을 내렸는데 손뼉을 치면서도 서운한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꼬마 일행 중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고, 여종업원들이 응해주어 함께 기념촬영을 마치고 나왔다.

5개월이나 지난 지금도 옆 사람과 손을 맞잡고 함께 부르던 "백두에서 한라로, 우리는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가 귓가에서 맴도는 듯하다. 평화로웠던 연평도에 또다시 전운(戰運)이 감도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간절한지 모르겠다.
#압록강철교 #옥류식당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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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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