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에 배치된 '죽음의 비', 우릴 지켜줄까

등록 2010.12.22 19:16수정 2010.12.2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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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연평도 사태가 발생한 이후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던 연평도 마을이 공격당해 불타고 4명이나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죽음은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고, 이런 북한의 무력행위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온 국민이 충격과 분노에 빠져 있는 동안, 남북의 당국자들은 서로 보복과 응징을 천명하며 한반도를 전쟁의 긴장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에다가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물리적 대결 의지를 밝혔다. 신임 국방장관은 강력한 응징을 내세우고 북한 역시 위협을 반복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4명이 아니라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갈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북한이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하지만 적대와 증오의 마음만 가지고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군사력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어느 쪽이든 한발만 더 쏘면 그때부터는 바로 전면전이 시작될 것이고, 그 이후로는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전장이 확대될 것이다. 적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한 최첨단 무기들은 그동안 엄청난 공을 들여 개발해온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고, 그로 인해 한반도는 초토화될 것이다. 현대전일수록 민간인 사상자의 비율이 절대적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전쟁을 하기에는 우리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문제는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풀어야 한다. 진짜 전쟁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왜 연평도 사태가 발생했고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지, 평화를 유지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북한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연평도에 배치한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권의 정치적 결단이다.

 

연평도에 배치된 '죽음의 비'

 

연평도 사태가 일어나고 얼마 후, 연평도에 K-9 자주포 6문과 함께 MLRS(다연장 로켓 시스템) 6문을 실전배치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와 함께 언론은 MLRS의 로켓탄 1발에는 수류탄 1개 위력을 갖는 소폭탄 500여 개가 들어 있어 축구장 세 배 면적을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는 '막강화력'을 자랑스레 설명했다.

 

언론에서 그 놀라울 만한 성능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이 무기가 바로, 비인도적 무기로 악명높은 집속탄이다. '죽음의 비'라고 불리우는 집속탄은 사상자의 98%가 민간인이며 그 중 1/3은 어린이들이라고 하는 가장 대표적인 비인도적 살상무기이다.

 

분단 상황을 이유로 집속탄 보유를 주장해온 한국과 북한이 서로를 향해 집속탄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쟁 이후에도 수많은 불발탄을 남기는 집속탄의 흔적은 수십 년이 지나도 끊임없이 비극을 만들어낼 것이다. 사람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산과 들, 논과 밭의 수많은 생명들을 파괴하고, 남겨진 불발탄 때문에 농사를 지으려고 쟁기질을 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오래 전 투하된 집속탄의 불발탄 때문에 지금까지도 희생자가 계속 생겨나고 있는 라오스, 레바논 같은 나라의 사례가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 전쟁 때마다 사용된 집속탄의 끔찍한 피해가 알려지면서 집속탄의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은 매우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로 올해 8월부터 집속탄금지협약(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이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얼마 전 라오스에서 열린 1차 당사국 회의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 협약은 2010년 12월 19일 현재 49개국이 비준을 마쳤고 108개국이 서명을 했으며 참가국은 계속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집속탄을 생산해 분쟁지역에 수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한국이 이런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집속탄을 사용하게 된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CMC(집속탄반대연합)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집속탄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며 한국의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 답답하게 흘러간다.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하는 사격훈련은 북한을 자극하는 군사적 행동이라는 것을 지난 연평도 사태를 겪고서도 아직도 모르는 것인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강행하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이 자제를 요청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

 

현 정권의 정치적 무능은 남북 문제를 국제적 분쟁 문제로 확대해 강대국들의 개입여지를 늘려 놓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국방비가 부족하고 군사력이 모자라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처럼 국방예산을 늘리고, 서해 5도의 전력증강을 위해 무기를 재배치하고, 국방관련 정책들 역시 '국가적 안보위기상태'라는 미명 하에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당장 눈앞의 일만 보고 감정적으로 대처해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평화단체들에 대해 보수언론은 국가보안법을 들먹이기까지 했다.

 

전쟁의 수혜자들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한 군사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엄청난 돈을 국방비로 쓰면서 무기들을 만들고 사들였지만, 우리는 안전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의 위기 속에 더 위험해졌다. 군비증강은 점점 더 갈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벌써 일본은 무기 해외공동개발과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무기수출 3원칙'의 재검토를 승인했고, 최근 무기 재배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동북아시아는 멈출 수 없는 군비경쟁의 악순환 속에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가는 중이다.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 없이 군사력에만 의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전쟁위협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군사적 긴장감과 전쟁위기로 인해 더 늘어난 국방예산은 집속탄을 생산하는 한화와 풍산, K9 자주포를 만드는 삼성 등 무기를 만드는 기업들의 이득 챙기기에만 도움이 될 뿐 우리의 안전과 평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훈련을 하고 준비하는 것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군사적 긴장감을 유발하고 전쟁위기와 군비경쟁을 심화시키는 모든 조치는 철회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군사적 수단이 아닌 군비축소와 신뢰구축, 평화를 위한 투자를 정책방향으로 선정할 때이다. 이것은 평화주의자들의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다.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과 수단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나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여옥 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12.22 19:1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여옥 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평화 #인권 #집속탄 #연평도 #ML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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