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된 방역대책 되풀이...좁은땅 초토화"

[인터뷰] 우희종 서울대 교수 "국립수의과학검역청 설치해야"

등록 2011.01.09 20:55수정 2011.01.0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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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자료사진) ⓒ 박상규

지난해 11월 29일(정부 발표)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일까지 전국의 소·돼지 107만여 마리가 살처분 돼 구덩이에 파묻혔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축이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구제역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우희종(52)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구제역 사태는 벌써 예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식 밀집형 농장의 등장과 품종 개량으로 인한 유전자 다양성 소실,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생태적 균형 파괴 등 산업구조 변화의 참혹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 교수는 "따라서 구제역뿐 아니라 조류독감이나 광우병과 같은 '인수공통질병'(사람과 가축에게 동시에 나타나는 질병)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 구제역 진압 강력한 의지 없어... MB 연두교서 언급도 안해"
  
그는 이번 구제역 창궐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의 초기 대응이 안일했다고 비판했다. 처음부터 살처분과 예방백신 투여를 병행해야 하는데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방역당국이 매우 고답적으로 반응했다, 농수산식품부만 해도 20년 전 직제에서 바뀐 게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구제역의 심각성을 제때 깨닫지 못하고, '뒷북' 수습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데도 올해 연두교서에는 (구제역이) 전혀 언급도 안 됐다, (축산 정책을) 홀대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현 정부는 10년 이상 된 방역 대책만 되풀이하는 중"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우 교수는 이번 구제역과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방역체계의 일원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토가 넓은 미국도 '동식물검역청(APHIS)'을 별도로 운영하는데,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위험하다, 좁은 땅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니까 초토화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을 국립수의과학검역청으로 승격 시켜야 한다는 대안을 거듭 제안했다. 또 "현재와 같은 대규모 살처분 방식은 옳지 않다"며 방역대책의 전환도 요구했다.


다음은 우 교수와 일문일답.

- '청정지역'이라는 충북 청원과 경기 평택까지 구제역이 퍼졌다. 사실상 전국적인 재앙인데, 언제 가라앉을지 예측이 가능한가.
"이론적으로 모든 질병이 '피크'가 있고 가라앉을 때가 있다. 구제역도 언젠가는 가라앉을 거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게 문제다."

- 구제역이 매년 반복되지만, 이번에는 유독 심한 것 같다. 이유는 뭐라고 보나.
"사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벌써 예상됐다. (축산업에서) 생산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공장식 밀집형 농장이 많이 생겼다. 사육환경도 달라졌다. 품종개량으로 가축의 유전자 다양성도 소실됐다. 취약한 병원체가 들어왔을 때 즉시 퍼질 여건을 우리가 만들어놨다. 또 축산업에서 과거보다 많은 항생제를 쓰다 보니 생태적 균형이 깨진 상태다. 세계화로 인한 교역 증가와 인구 증가, 지구온난화도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조류독감이나 광우병처럼 인수공통질병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 대만은 지난 1997년 소와 돼지 36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등 구제역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휘청거렸다. 지금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 아닌가.
"당시 대만이 입은 경제적 타격은 매우 컸다. 그렇지만 현재로선 이번 구제역 사태가 어느 규모까지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이명박 정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의 초기 대응이 잘 됐다고 보나.
"초기 대응 미비는 누차 지적됐다. 전반적으로 방역 대책의 유연성과 신속성이 매우 부족하다. 구제역 발생 초기 살처분은 어느 나라든 시행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최근 들어서야 겨우 예방백신 투여로 대책을 전환한 데 있다. 이미 훨씬 전에 전환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 같은 대규모 살처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 초기부터 지금까지 대응이 미비했다?
"지난 10년간 산업구조가 급속히 변했다. 따라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올해 연두교서에는 (구제역 사태가) 전혀 언급도 안 됐다. 홀대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능동적 자세가 없고, 고답적으로 대응했다. 10년 이상된 방역 대책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국가 검역, 땅 넓은 미국보다 더 강력한 정부 기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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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일, 충남도가 경북 안동의 양돈농장과 역학관계가 있는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2개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는 돼지 2만 191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지난 3일, 천북면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사진은 보령시 천북면의 한 돼지 농장에서 방역요원들이 돼지들을 살처분장소로 몰고 있는 모습. ⓒ 보령시제공


- 대규모 살처분과 매립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의 방식을 중단해야 하나.
"구제역 초기에는 살처분이 현실적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지금 같은 규모로 살처분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살처분한다는 방식은 옳지 않다."

- 살처분이 아닌 다른 방식의 구제역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병을 경제적인 판단으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 축산업계의 질병 위험과 현재 산업화 시대의 질병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에는 야생 멧돼지나 사슴이 도심까지 내려온 사례가 적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비일비재하게 출현한다. 이게 (질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상황이 바뀐 만큼 대책도 바뀌어야 한다. 수의학도 단순히 가축 질병을 예방하는 수단이 아니라 구제역과 같은 사회적 재난에 대비한 학문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행정조직이 변해야 한다. 지금 농수산식품부 직제 등을 보면 거의 20년 전 체제 아닌가."

- 그래서 국립수의과학검역청과 같은 국가적 방역체계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미국 같은 나라도 국가적 전담기구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더 필요하다. 땅도 작은 나라에서 이런 규모로 살처분을 계속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미국은 땅이라도 넓지만, 우리나라는 워낙 작아서 한 번 구제역이 창궐하면 초토화된다. 오히려 미국보다 더 강력한 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워낙 행정체제나 구성원들의 변화가 느려 걱정이다."

- 일부에서는 겨울보다 올해 여름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여름이 되면 다시 창궐할 수 있나.
"충분히 올 수 있다. 그것 때문에라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시스템을 빨리 바꿔야 한다."

- 살처분에 나선 수의사들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수의학자로서 어떤 생각인가.
"천편일률적인 살처분으로 대응한 우리에게 떨어진 대가 아니겠나. 수의사들도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다. 단순히 가축 질병을 고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생명을 죽이는 살처분 현장에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나. 고답적인 방식만 되풀이 한 결과라고 본다."
#구제역 #우희종 #국립수의과학검역청 #살처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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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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