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
발판도 없는 비계파이프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정해진 시간,정해진 작업물량을 끝내야 한다고
다그치는 그들 앞에서
이러다가는 사고를 내지
우리끼리는 웃으면서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새벽에 집을 나설 때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평초처럼 이 현장 저 현장을 떠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존재도 이름도 없는 일회용 소모품인지도 모른다.
첫 출근하는 현장마다 안전수칙 서약에 사인하고
지급받지 않은 안전용품 품목에 지급받았다고 사인하고
현장의 위험요소에 대해 한 마디도 듣지 않았는데
안전교육 사진만 찍히고 그렇게 현장으로 내몰렸다.
한 순가 40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현장의위험요소와 안전수칙을 알려주고
최소한의 안전조치만 취했어도
그렇게 많은 생떼같은 목숨들이
한꺼번에 잿더미로 변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어쩌면 우리는 죽음의 세월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떨어지고, 감전되고, 불에 타고, 바로 눈앞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려도
아! 살아 있어도 죽음보다 못한 현실 속에서
가족들을 생각하며 또 일을 한다.
하루의 삶과 하루의 죽음을 바꿔가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도 없는 이 죽음의 행진은 멈춰야 한다.
하늘같이 믿고 살아가던 가장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가정이 파괴되는 비극은 끝나야 한다.
형식적인 안전조치와 눈가림의 점검이
천박한 자본의 이윤과 맞닿아 있는 한
건설현장에서 죽음의 재앙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재수 없는 어느 날,
다가왔던 사고가 아니라
그날은, 사고의 그날은
이미 어제이고 오늘이고 내일이었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무엇이 변했는가 하루에도 두 명씩
죽어가는 건설현장 무엇이 변했는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다치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현장
눈가림의 안전조치와 싸우고
천박한 자본의 이윤과 맞닿아 있는 현실과 싸우지 않는 한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죽어가는 이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