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생활, 심심하지 않니?

내 나이 사십대, 심심해 미치겠습니다

등록 2011.01.17 16:26수정 2011.01.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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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새벽 2시, 전화가 울린다. 서울에 있는 선배다. 얼른 시간을 따져보니 서울은 금요일 저녁 7시,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이른바 술시(酒時)이다. 이 시간이면 당연히 서울 어딘가에서 술 한 잔 기울이고 있을 줄 알면서도, 이어지는 '뭐하고 있으시냐?' 라는 의미 없는 질문,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강남 어디쯤에서 한 잔 하고 있다는, 반가우면서도 왠지 허전하게 만드는 전화 한 통. 그랬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곧잘 어울리던 사람들, 시를 쓰는 이영광 형과 카피라이터를 하는 김정한 형, 그리고 방송 드라마를 쓰고 있는 친구인 박진우, 이렇게 셋이서 술을 한 잔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서울에 있었으면 나머지 한 자리는 내 자리였을 것, 상상만으로도 술이 그립다. 술자리가 그립다. 아니 사람이 그리워진다.

내 그리움 너머로 이어지는 이영광 형의 한 마디, "아직도 니가 왜 거길 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심하진 않니?"

여기 와서 가끔 심심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심심하기 때문이다. 때론 심심해 미칠뻔한 적도 있다. 여기에 오기 전 심심함은 이미 각오한 바 있다. 먼 이국으로 혼자 떠나올 때는 당연히 준비해야할 품목 중에 하나가 심심함에 대하여 대처하는 자세이다.

단기 여행이 아니라면, 어쩌면 이건 고추장보다도 더 중요한 준비물이다. 평상시 아무리 입에 달고 살아도 고추장 정도는 없어도 살 수 있기도 하거니와, 요즘 같은 세상에는 노력만 하면 외국에서도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정 안되면 한국에 전화해서 소포로 부쳐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심심함은 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것을 치료할 처방전을 외국에서 구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이놈을 달래기 위해서 한국에다가 전화해서 뭘 부쳐달라고 할까? 친구를 부쳐달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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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a Lake 심심함이 찾아올 때면 가끔 찾는 근처의 니콜라 호수 ⓒ 한봉희


물론 젊은 시절 공부를 위해서 어학연수나 유학을 왔으면 사정이 좀 다를 수도 있다. 해야 될 공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릿속에 공간이 부족할 수도 있고, 그 속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통해서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 사십이 넘어 덜커덩 외국의 낯선 도시에 떨어진 입장이라면 떼어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심심함이란 놈이다.


한국에서 십수년간 몸에 달고 살던 술 한 잔의 기억과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 그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수많은 이야기들, 미우나 고우나 밤낮으로 얼굴을 부비게 되는 아내와 아이들, 떠나오는 순간 그런 것들은 모두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 찾아오고 싶어도 찾아올 수 없게 된다.

예방주사 맞듯 이런 상황에 대하여 미리 여러 번 예상을 하면서 나름대로 마음가짐을 다잡기도 하고,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심심함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문득문득 심심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밤에 전화라도 올라치면 심심함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결국 맥주 한 캔으로 스스로에게 사기를 친다. 어쩌겠는가, 심심한 것을.

물론, 바쁘게 살면 그럴 틈이 없지 않겠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심심함이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나름 바쁘게 살기 위해 자원봉사도 하고, 영어를 가르쳐주는 곳에 갔다 오기도 하고, 여기저기 쑤시면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요즘은 매일 헬스클럽을 다니기도 하지만 심심함이란 놈을 완전히 따돌릴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 놈은 속성상 해가 떨어지면 활동력이 강해지는 놈이라 어둠이 깔리면 그만큼 상대하기도 힘들어 진다. 하물며 오후 4시만 넘으면 해가 떨어지는 캐나다 겨울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렇다고 무턱대고 방치할 수도 없고, 허구한 날 맥주 한 캔으로 스스로에게 사기를 칠 수도 없다. 그러다간 더 큰 문제로 커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히 없애버릴 수는 없겠지만 다소간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을 쓰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해결책이라기 보다는 임시방편책이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써먹을만 하다. 물론 너무 자주 써먹으면 약발이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나는, 물리적인 방법으로써 화상전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무료 화상통화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아무하고나 무료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관심을 써두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심심함을 그때그때 달래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이것의 최대 단점은, 몇 번 임상실험을 해보면 알겠지만, 가끔가다 통화가 끝난 후 더 큰 심심함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건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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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통화 캡쳐화면 가끔 화상통화를 통해 아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심심함을 달래주는 가장 유효하고 중요한 방법이 된다. ⓒ 한봉희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측면이면서 아주 전통적인 치료법이지만, 심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신에 자신 속에 있는 간사함을 끄집어내 이용하는 좀 비굴한 방법이긴 하지만 나보다 더 심심한 사람을 가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무 죄 없이도 감옥에 가서 몇 달 몇 년씩 버텨야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또한 절해고도의 외딴 섬에서 오로지 바람과 벗하며 유배객이 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들은 심심함 보다 더 큰 억울함과 절망감이 있기도 했거니와 그들에 비하면 나의 심심함은 단지 투정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가끔은 버틸 힘이 생긴다. 그렇게 버틸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이것도 속임수이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가끔은 효과가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건, 일정한 중·장기 기간 내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물리적인 존재의 심심함'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마음의 움직임조차 하찮게 여길 수 있도록 고매한 수양을 하면 심심함이 없어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천번 만번 외우면 심심함이 없어질까? 딱히 소용이 없다.

이런 싸움은 늘 심심함이 이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심심함은 인간의 본능에 그 원천을 두고 있고, 수양이나 마음가짐은 그 정신에 원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순간 본능을 억제시킬 순 있어도, 득도의 경지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언제나 그렇듯 궁극적으로 인간은 정신이 본능을 이기지 못한다. 더구나 텅 빈 방에 혼자 책상과 마주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백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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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an Lake 심심함이 찾아올 때면 드라이브 겸해서 찾아가는 로간 호수. 캐나다는 심심한 이방인이 찾을만한 (간혹 더 심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호수가 여럿 있다. ⓒ 한봉희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당장의 나를 위한 속임수이기도 하고, 앞으로 나같은 경험을 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나처럼 홀로 버티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모두들 그만한 사연이 있을테니, 심심함을 없앨 순 없어도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현명하게 억제하는 힘을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이 들어 외국에서 혼자 산다는 건, 결국 현재의 시간도 즐겁게 버텨내야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심심함은 그것의 부산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심함 #캐나다 #사십대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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