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커피' 마시고 세상을 바꾸세요

[탐방기] 장애인 바리스타, 제3세계 어린이와 미혼모 돕는 서울시내 카페들

등록 2011.01.18 15:13수정 2011.01.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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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수익금이 일면식도 없는 장애인들, 인도에 있는 아이들, 미혼모들을 위해 쓰인다면 어떨까?

지난 몇 년 동안 커피 문화는 소수의 '커피홀릭'(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이 주도했다. 커피 문화는 대중화됐고 커피시장은 빠르게 커졌다. 지난해 3월 업계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프렌차이즈 커피 매장 수가 1300곳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재 전국의 커피 매장은 시장 포화 상태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나눔을 표방하는 '착한 카페'들이 지난해부터 하나둘씩 개점하고 있다.

a 카페모아 여성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을 돕는 카페인 '까페모아'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이선주씨.

카페모아 여성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을 돕는 카페인 '까페모아'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이선주씨. ⓒ 구태우


# 등단이 꿈이었던 시각장애인 바리스타

문학을 전공한 이선주(30)씨는 매일 오전 9시 관악구 봉천동 4번 출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1층에 있는 '까페모아'로 출근한다. 시각장애 1급인 이선주씨는 1년 차 바리스타이다. 이씨는 지난해 3주간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마치고, 3월부터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까페모아에는 5명의 시각장애인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점점 더 먹고 싶어지는 커피를 만들자'라는 뜻으로 지난해 4월 개점한 까페모아는 여성시각장애인들의 직업재활서비스를 위해 만들어졌다. 수익금 전액은 시각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해 쓰인다. 시각장애인들이 섬세한 기술이 요구되는 바리스타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을 위험도 있었으며, 물의 양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까페모아 개점 1년 만에 실로암사회복지관의 까페모아팀은 2010 KCA 바리스타클래식 대회에서 2위를 하기도 하였다.

실로암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박소정씨는 "처음에는 바 구조 등이 익숙하지 않아 메뉴제공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수가 잦았다"며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꾸준한 연습과 노력을 통해 극복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이 익숙해져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라떼아트(우유기술)는 어렵다"며 "손님들이 커피를 맛있게 마실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악어> 같은 소설을 쓰는 것과 작지만 예쁜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실로암사회복지관은 여성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을 위해 까페모아 2호점 개설을 준비 중이다.

# 좋은 사람들이 만든 착한 가게 '사직동 그가게'


인도 여행의 시간을 사랑했던 이들, 그리고 여행에서 느꼈던 나눔의 기억을 이어가고 싶은 이들이 모였다. 이들이 모여 록빠2호점(사직동 그가게)을 열었다. 록빠1호점은 인도 다람살라에 있다. 다람살라에 있는 록빠1호점은 티베트인들을 위한 나눔 단체이다. 한국인 빼마(남현주)와 티베트인 텐진 잠양(33)이 2005년 티베트 아이들을 위한 탁아소를 설립한 뒤 소문을 듣고 찾아간 여행자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연간 200여 명의 한국 여행자들이 록빠1호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사직동 허름한 창고가 카페로 바뀌었다. 평일엔 5~6명, 주말엔 20명 가까이 모여서 개점 준비를 했다. 버려진 가구와 소품들을 주워서 록빠식 가구로 탈바꿈시켰다. 카페를 열자 여행의 기억, 나눔의 기억이 있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싱어송라이터 윤영배씨와 통인동 커피공방에서는 커피나눔을 하고 있고, 자원활동가들은 디자인 소품을 기부하였다. 매달 열리는 멜로디 잔치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재능을 기부하였다. 또한 12명의 카페지기들이 카페 운영을 맡고 있다.

a 카페 록빠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인들의 자활을 돕는 카페 록빠의 까페지기 박주희씨와 매니저인 남지연씨

카페 록빠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인들의 자활을 돕는 카페 록빠의 까페지기 박주희씨와 매니저인 남지연씨 ⓒ 구태우


매니저 남지연(31)씨는 "작년 록빠2호점이 자리 잡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며 "올해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록빠는 유기농 농산물을 직접 재배해서 쓰는 텃밭 프로젝트와 티베트의 상황을 알리는 평화유랑단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근처에 사는 한 할머니는 "세상 돌아가는 게 흉흉한데, 이렇게 좋은 일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든든하다"고 말했다. 록빠의 수익금은 티베트 아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기금과 어린이 도서관 운영기금으로 쓰인다.

a 카페 그라나다. 지적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는 카페 그라나다 내부사진.

카페 그라나다. 지적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는 카페 그라나다 내부사진. ⓒ 카페 그라나다


# 지적장애인에게 희망의 날개 다는 카페 그라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카페에 들어서자 우렁찬 목소리가 맞았다. 지적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카페 그라나다에서 일하고 있는 강성훈(가명)씨 목소리다. 주문을 받으러 테이블 앞에 선 그에게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내 씩씩한 대답이 돌아온다.

"일 대단해요! 재밌어요!"

카페 그라나다는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지적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다. 이곳은 전에 늘푸른나무복지관 매점이었다.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커피도 만들어보고, 손님들과 마주치면 지적장애인의 재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2007년 4월에 카페를 오픈했다. 11명의 식구가 일주일에 이틀 정도씩 카페에서 일을 한다.

그라나다에서는 모든 것이 정량화되어 있다. 비커에는 얼만큼의 물과 우유를 넣어야 하는지 눈금 표시를 해둔다. 틈이 날 때마다 교육도 이루어진다. 인사하는 방법부터 각종 레시피까지. 간혹 테이블을 헷갈려 엉뚱한 손님에게 음료를 갖다 준다든가 돈 계산을 잘못해 쩔쩔맬 때도 있다. 평소 같았으면 화낼 만한 상황인데도 손님들은 웃으며 받아넘긴다.

고등학교 때까지 자폐성 장애가 심하던 한 식구는 그라나다에서 일한 뒤로 작업장의 '에이스'가 되기도 했다. 카페를 방문하는 다양한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 사회성이 나날이 높아졌던 것이다. 자기 생각도 남들에게 서슴없이 말할 수 있게 됐다. 호전되는 자녀의 상태를 부모님들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라나다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원두 로스팅 사업을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Cafe Timor와 연계해 동티모르 야생에서 나고 자란 무공해 커피를 사용한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큰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금도 카페 한편에서 지적장애인이 만든 비즈 묵주와 함께 갓 볶은 신선한 원두를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 원두 로스팅 사업을 더 확장해 갈 예정이다.

지난해 5월에는 그라나다에서 2010KCA바리스타클래식에 참가하기도 했다. 비장애인 팀장 한 명과 지적장애인 두 명이 한팀이었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소라(28)씨는 "새로운 머신(커피기계)으로 사전 연습 없이 대회를 치러야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도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보다 더 긴장하지 않는 지적장애인들의 모습에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도시로 '석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석류의 붉은 알알이 터지는 것처럼 이곳에서 사랑이 터지게 하라는 의미다. 모과차 한 잔을 급하게 들이켜고 카페를 나섰다. 등 뒤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또 한 번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a 카페 파구스 미혼모의 아기, 자립, 주거시설에 지원하는 카페 파구스

카페 파구스 미혼모의 아기, 자립, 주거시설에 지원하는 카페 파구스 ⓒ 구태우


# 미혼모 지원하는 카페 파구스

지난해 12월 서울 CTS기독교TV 1층에 파구스 4호점이 생겼다. 파구스는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미혼모자 가구를 지원하기 위해 국제구호개발NGO 월드휴먼브리지에서 만든 카페다.

카페의 기본적인 운영비와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금은 미혼모의 아기, 자립, 주거시설에 지원한다. 카페 파구스는 미혼모가 스스로 자립하거나 학업으로의 복귀가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 바리스타 교육과 독서실 교사 교육을 한다. 또한 일부 능력이 검증된 미혼모들에게는 창업지원도 해 줄 예정이다.

또 카페 주변에 미혼모들이 함께 살면서 자립을 준비하는 곳인 미혼모자 공동생활가정시설 '엔젤맘하우스'를 만들기로 했다. 월드휴먼브리지 임진기 사무국장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미혼모의 수는 1만2000명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며 "미혼모는 많은데 미혼모자 공동생활가정시설은 전국 25개밖에 안 된다"고 엔젤맘하우스 건립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또 "차도 마시고 기부도 할 수 있는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희망을 드러냈다.

최근 윤리적 소비가 새로운 소비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착한 카페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월 명동에 문을 연 새터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카페 블리스앤블레스, 떡과 함께 커피, 차를 마실 수 있는 상도동에 떡프린스, 이주여성들이 만든 그림, 그림이 들어간 엽서 등 아트상품을 판매하는 에코팜므, 용산에 위치한 장애인 빵집인 날개 베이커리 등이 있다.

지난 16일 공덕동 성영태 커피하우스에서 열린 에코팜므 티파티에서 박진숙 대표는 "일본의 스완베이커리는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광고하지 않아도 빵이 맛있어서 잘 팔린다. 소비자들에게 윤리적 소비를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의 기본 정신은 상생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구태우, 이혜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덧붙이는 글 구태우, 이혜리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착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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