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값 3500원인데도 썰렁...이게 다 MB때문?

[르포] 치솟는 식자재 값에 눈물짓는 대학가 백반집

등록 2011.01.21 14:58수정 2011.01.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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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근처 백반집 골목 인하 문화의 거리를 따라 백반을 파는 식당 22여 곳이 밀집해 있다.
인하대학교 근처 백반집 골목인하 문화의 거리를 따라 백반을 파는 식당 22여 곳이 밀집해 있다.정민지

"물가 이만큼 올려놓고 이제 와서 나라가 물가 잡는다고 해봐야 뭐해! 어차피 내린다고 해봐야 코딱지만큼 내려갈 건데."

17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대 앞에서 16년째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는 오민자(가명·64)씨는 물가 이야기를 하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몸으로 느끼기에 200%는 더 오른 거 같다"며 "채소가격이 언제 다시 원상태로 내려올 수 있겠냐"라고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의 물가대책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오씨의 백반집 주 메뉴는 4천 원짜리 해물볶음밥이다. 지난해 1월과 비교해 오징어 값은 1마리당 천 원에서 2천 원으로 2배 올랐고, 대파 1단은 2천 원에서 3500원으로, 양파 1자루는 7천 원에서 2만2천 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가격을 500원만 올려도 재료값은 나오지만 그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씨는 "학교 구내식당 가격이 워낙 싼 탓에 가격을 올리면 그마저 찾는 학생들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문한 한국외대 구내식당에서는 닭곰탕을 2500원에, 김치볶음밥을 2300원에 팔고 있었다.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한국외대·인하대·고려대 등 수도권의 3개 대학교 앞 식당 9곳을 찾아 물가상승에 따른 어려움을 취재했다. 기자와 만난 식당 주인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의 물가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 가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7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앞 B 식당.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은 두 테이블밖에 없었다. 10여 명의 대학생 동아리 모임이었다. 십여 분 뒤, 그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나자 열 평 남짓한 규모의 식당은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이 식당의 주인 이진수(가명·59)씨는 "16년 전 개업 당시 내놓은 음식 가격이 3500원이었다. 지금 가격은 16년 동안 단 두 번에 걸쳐 천 원 올린 것"이라며 "올해도 이런 상태라면 어쩔 수 없이 500원을 인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 메뉴인 돼지불고기 백반에 들어가는 재료를 하나하나 언급하며 가파른 물가 상승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1년 전과 비교해 고춧가루(600g)가 1만 원에서 1만3천 원으로, 양파(12kg)는 1만3천 원에서 2만 원으로 올랐다. 또한 지난해 1월 600g당 2천 원이었던 돼지고기가 지금은 3800원에 이른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배추파동'이 일어난 2010년 9월 신선식품 물가는 전년 대비 45.5% 급등했다. 이후에도 10월 49.4%, 11월 37.4% 상승으로 3개월 연속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살펴보면, 작년 12월 신선식품지수는 2009년 동월대비 33.8%, 신선과일 물가는 43.4%나 뛰었다.


카드수수료 내렸다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워

 가격이 대부분 5000원 이하인 고려대 근처 한 식당의 메뉴표
가격이 대부분 5000원 이하인 고려대 근처 한 식당의 메뉴표박종원

 모든 메뉴의 가격이 3500원으로 동일하고 밥과 반찬이 무한리필되는 인하대 근처 한 식당의 메뉴표
모든 메뉴의 가격이 3500원으로 동일하고 밥과 반찬이 무한리필되는 인하대 근처 한 식당의 메뉴표정민지

18일 오전에 찾은 인천 남구 용현동 인하대 앞의 C식당. 깔끔한 이 식당에는 세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식사하고 있었고 찌개 끓을 때 나오는 김이 실내를 덥히고 있었다. 주인 강원태(56)씨는 "그나마 식당 20여 곳이 몰려 있는 '인하 문화의 거리'에서 우리가 제일 장사 잘 된다"고 말했다.

백반 가격은 전부 3500원. 강씨는 "박리다매를 하고 있다, 하루에 그릇수가 600개는 쌓여야 그때 순수익이 한 달에 500만 원 정도 된다"며 "그 정도 팔아야 직원들에게 인건비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밥값이 싼 덕분에 장사가 잘되고 있지만, 현재 물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그는 "다른 업주들처럼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원재료를 공동구매하는 방식으로 물가 상승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씨는 "카드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인근에서 백반을 파는 '석이네 밥상'의 주인 김명례(59)씨 역시 카드 수수료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0년 4월을 기점으로 신용카드사들은 기존 재래시장의 카드 수수료를 2.0~2.2%에서 1.6~1.8%로, 대학 앞 식당과 같은 중소가맹점의 경우, 3.3~3.6%에서 2.0~2.2%로 인하했다. 기존 대형마트의 수수료율(1.6~1.9%)과 비슷한 수준으로 내렸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부담이 크다고 했다.

김씨는 "카드 같은 경우도 3500원을 결제하면 빠지는 게 적지 않다"며 "3500원짜리 뚝배기 불고기 한 접시에 식자재, 수도·가스비용, 각종 세금, 인건비를 빼고 연말 부가세 신고까지 합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인근의 E식당 주인인 이영옥씨는 "오는 고객의 30%가 카드로 결제하는데, 만 원 이하는 카드 결제를 안 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한나라당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카드사가 중소가맹점에 부과하는 신용카드 수수료를 2%대에서 1%대로 낮추는 작업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껏 카드회사의 반발과 세원 감소 논란으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가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빈말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학생들 "이해하지만 밥값 오르면..."

학생들은 식당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면서도 밥값이 오르면 결국 식당 발길을 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어대 임정우(가명·30)씨는 "학교 근처 백반 가격이 오른다면 만원으로 2명이 먹기 힘들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자주 못 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서욱(22)씨 역시 "새내기 때는 몰랐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밥값이 부담스럽다"며 "밥값이 오르면 아무래도 학교식당을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하대에 다니는 정모(27)씨는 "어떤 식당은 현금영수증 발급조차 거부한다"며 "장사하기가 워낙 힘들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식당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박종원·정민지 기자는 13기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박종원·정민지 기자는 13기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물가 인상 #대학가 백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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