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사무실에서 '야사' 출력해보셨나요?

[체험기] 스팸메일, 클릭 잘못했다가는 큰코다친다

등록 2011.01.22 17:21수정 2011.01.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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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간 쌓인 스팸메일만 229통이다. ⓒ 김학용

1주일간 쌓인 스팸메일만 229통이다. ⓒ 김학용

오늘 메일함을 정리하면서 1주일간 쌓인 스팸메일 229개를 일괄 삭제했다. 자동으로 걸러지는 스팸메일만 대충 이 정도이니 이미 정상적으로 사용하긴 틀린 계정이지 싶다.

 

내가 돈이 궁한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5000만 원까지 빌려준다는 친절한(?) 메일부터 음란, 도박 사이트까지…. 어디서 어떻게 오는 건지 전혀 모르겠고, 스팸신고 버튼만 열심히 눌러보지만 효과는 전혀 없는 것 같다.

 

혹시나 하고 영숙이나 철수 등 일반인으로 가장한 '오랜만이야'라는 안부 메일로 포장된 제목에 속은 채 클릭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포르노 사이트의 창들 때문에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스팸메일 하나 때문에 나에게 인생 최대의 시련이 닥칠 줄 꿈엔들 알았으랴. 5년 전의 그 일을 생각하면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린다. 인터넷 유머코너에서나 만날 법한 일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아,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지금부터 바른 생활을 실천하고 계시는 독자나 모범생은 이 창을 닫기 바란다.

 

'클릭해볼까?' 불운의 시작은 '호기심'

 

'클릭해볼까? 아냐, 또 낚일 것이 뻔해. 하지만…' 모든 불운의 시작은 호기심이다. ⓒ 김학용

'클릭해볼까? 아냐, 또 낚일 것이 뻔해. 하지만…' 모든 불운의 시작은 호기심이다. ⓒ 김학용

평소처럼 스팸메일을 전체 선택하여 삭제하면 되었을 일을, 그놈의 호기심이 문제였다. "오빠, 나 오늘 한가해요"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메일 제목에 마우스를 올리면 미리 보기가 되는 획기적인 기능은 또 누가 만들어 놨던가? 미리보기를 통해 보인 사진은 전라의 요염한 포즈에 티 없이 맑은 여성. 바로 내가 꿈 꿔 오던 바로 그 이상형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클릭해볼까? 아냐, 또 낚일 것이 뻔해….' 하지만 이미 나의 손은 마우스의 왼쪽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주위 눈치를 살피며 잽싸게 클릭했다. 역시 스팸이었다. 하지만 스팸이면 어떠리. 내용은 전혀 관심 없다. 당연히 메일 내용은 볼 필요 없다. 이상형의 사진이 우선이니까. 

 

과연, 보기 드문 명화(?)로다. 멋진 스패머께서 보내주신 귀한 사진을 혹시라도 잊을까, 뇌리에 박히도록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감상한다. 창을 닫으려니 스팸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까운 사진이 아닌가? '그래, 저장해놓고 두고두고 감상하리라.'

 

사진 저장이야말로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누워서 떡 먹기' 아니었던가. 확장자가 jpg인 그림파일에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니, 버튼이 여러 개 나온다. 너무 급하게 서둘렀을까? 여기서부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랬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다른 이름으로 그림저장'을 눌러야 하는데, 그만 급한 마음에 누른 버튼이 '그림인쇄'를 누르고 만 것이다. 게다가 또 엔터키는 왜 눌렀는지.

 

헉!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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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프린터? (재연사진) ⓒ 김학용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프린터? (재연사진) ⓒ 김학용

털썩! 이미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가슴은 요동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을 차린 후 가장 먼저 프린터부터 살핀다. 프린터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사무실 한가운데 놓여 있다. 아뿔싸, 하필 그 자리는 평소에도 나를 잘 따르던 여직원 자리 바로 앞이었다.

 

잽싸게 프린터 앞에 다가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일상적인(?) 인쇄물을 기다리는 포즈를 취해보지만 이미 속은 타들어 간다. 좌불안석이 된 나는 프린터 앞을 초조하게 기다려보지만 2~3분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다.

 

"부장님, 거기서 뭐 하세요?"

 

깜짝 놀란 나는 "어, 견적서 하나 뽑는데 꽤 시간이 걸리네?"라며 대꾸해보지만, 이미 평소와 많이 다름을 눈치를 챈 여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기서 도망가면 사건 발생 후 당할 '쪽팔림'은 둘째 치더라도 직원들의 눈초리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식은땀이 흐른다.

 

곧이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그 사진은 내가 프린터로 오기 직전 출력된 보고서 사이에 끼워져 다른 직원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평소 점잖은 척은 다 하더니….'라는 눈초리로 직원들에게 당한 수모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며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나를 결코 '불쾌+불편+불쌍+불결'하게 보지는 마시라. 나 절대 그런 X 아니니까. 직장 생활 중 사무실에서 남들처럼 '야사(야한사진)'를 보다가 걸려서 낭패 본 일 없다. 물론, 잽싸게 창 닫기(Alt+F4)할 정도로 날쌘돌이도 아니다, 또, S로 시작하는 단어가 포함된 사이트를 즐겨찾기에 등록하지도 않는 모범생이다. 포르노 사이트를 서핑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친절한 스패머가 보낸 이상형 사진을 열어본 게 죄라면 죄일까? 

 

생방송 중 '야사' 보다 망신당한 남자, 내 맘 같지 않았을까? 

  

과연 이 심정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지난해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야사남'(야한사진 보는 남자)에게 동병상련의 심경을 함께 나누고 싶다. 지난해 2월 사무실에서 누드사진을 보는 모습이 생방송 뉴스를 통해 전국에 방송되면서 소위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호주의 한 주식 중개인.

 

보도에 의하면 생방송으로 은행사무실 내부가 방송되는 중 그에게 이메일이 도착했고, 그는 생방송이 방송되는 줄 모르고 직장동료가 보낸 이메일에 담긴 사진을 클릭했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그와 아픔(?)을 함께 나누리라.

 

"남자의 OO을 매도하지 마"는 <개그콘서트> 남하당 박영진 대표가 궁지에 몰렸을 때 꺼내는 최후의 카드다. 이 말의 의미는 '그것은 당신이 날 오해한 것'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나를 함부로 판단한 당신은 각성하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감히 외쳐본다.

 

"남자의 수집정신을 매도하지 마! 흑흑"

 

결코 스팸메일은 클릭하지 말라. 대부분의 일반적인 스팸 메일은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요즘엔 특별한 의도로 보낸 스팸메일을 열어 본다거나 사진을 내려 받았다간 자칫 PC가 해커 맘대로 움직이는 '봇(bot)'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꼭두각시 PC'가 되는 것이다.

 

스팸메일 클릭 한번으로 외부 명령자의 원격으로 제어가 가능한 프로그램이 깔릴 위험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힌다. 또, 사무실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이상형'이 유혹할지라도 결코 클릭하지 마시라. 버튼조작 실수로 인생최대의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면.

 

혹시 지금 사무실에서 음란물을 보고 있는가? 일할 때 그렇게 눈 똥글똥글 눈을 반짝여보라, 벌써 승진되고도 남았다.

#스팸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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