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주군왕릉
유혜준
십 분쯤 뒤에 버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웠다. 502번 버스는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는다. 그래서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기사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시골 시내버스는 서울 시내버스와 다르다.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 타는 사람도 그렇고 운전하는 버스기사도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재밌는 광경을 구경하는 덤을 얻기도 한다. 이 날, 그랬다.
어느 정류장에선가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탔다. 허리가 푹 구부러진 할머니는 쉽게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짐이 있었다. 커다란 페트병에 담긴 소주 두 병과 등에 진 배낭. 할머니가 꾸물대자 승객 한 사람이 일어나 소주병을 하나씩 받아서 버스에 실었다. 그러고도 할머니는 오래도록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은 소주병을 받아 든 승객이 할머니를 부축해서 버스에 태웠고, 할머니는 버스에 오르고서도 소주병을 어떻게 세워둬야 할지 몰라 자리에 쉬이 앉지 못했다.
버스가 출발을 해야 하는데 이 할머니, 도무지 서두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울이라면 버스기사가 빽 소리를 지른다. 거, 할머니 빨랑빨랑 좀 앉아요, 하면서. 한데 버스기사는 채근할 생각도 안 하고 지팡이를 들고 버스 안에서 서성거리는 할머니가 앉기를 기다린다.
몇몇 승객이 할머니를 채근한 뒤에야 할머니는 자리에 앉았고 그제야 버스가 출발했다. 할머니가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승객이 일어나 할머니 짐을 내려주고, 할머니까지 부축해서 내려준 다음에야 버스가 출발했으니까.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맛, 참으로 오지다.
친절한 기사는 내가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을 알려주었고, 어디로 걸어가야 고속버스터미널이 나오는지도 큰 소리로 가르쳐 주었다. 길 건너서 넘어가면 돼요, 하면서 손으로 방향도 가리켜준다. 고맙기도 하지.
일요일인데도 고속버스에는 자리가 넉넉했다. 겨울이고 구제역 때문에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확실히 줄었구나, 싶었다. 3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였다. 버스에 오르면서 세 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하겠구나, 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셈법이었을 뿐, 서울까지 걸린 시간은 6시간 20분이었다.
하필이면 고속버스가 출발한 뒤 눈이 펄펄 쏟아지더니 끝내 함박눈으로 변해 고속도로가 엄청나게 밀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으니 영동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서 더 밀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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