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위험하고, 토할 것 같죠... 그래도 천직"

[동행취재] 인천 부평구 부개1동 환경미화원 이덕규씨의 하루

등록 2011.01.29 13:49수정 2011.01.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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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덕규씨는 2시간 넘게 담당구역을 치우는 동안 수도 없이 허리를 구부려야만 했다.

이덕규씨는 2시간 넘게 담당구역을 치우는 동안 수도 없이 허리를 구부려야만 했다. ⓒ 이정민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새벽길이 왠지 힘이 솟구쳐. 그 누구도 밟지 않는 새벽길, 세상은 그리 어둔 것만은 아냐~"

80~90년대 초 혼돈스러웠던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지인들의 흥얼거림으로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노래인 그룹 '천지인'의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의 한 구절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상은 변하고 좋아졌어도 가장 거친 현장 속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내는 노동자들의 삶은 아직도 예전 그대로인 것 같다.

특히 최근 첨예화된 홍익대 환경미화원들의 해고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그렇다.

홍익대 환경미화원들과 노동조건은 다르지만, 환경미화원으로서 부개1동에서 13년째 근무하고 있는 상용직 노동자 이덕규씨의 새벽을 동행했다...<기자 주>

26일 오전 10시께, 이덕규(49)씨에게 전화를 걸어 동행취재에 대한 취지를 전하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인사한 터라 전화를 기쁘게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다지 반기는 목소리가 아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됐다.

새벽 5시에 나가 오전 8시 30분까지 일하느라 몸도 마음도 가장 피곤한 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기본정보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실수였다.


# 1월 27일 04:50, 새벽별 보며 첫 만남

a  가끔 버스나 대형화물차량이 빠른 속도로 인도 곁을 지나가는 찰나면 환경미화원들은 가슴을 졸이며 덜컥 주저앉는다고 이씨는 들려줬다.

가끔 버스나 대형화물차량이 빠른 속도로 인도 곁을 지나가는 찰나면 환경미화원들은 가슴을 졸이며 덜컥 주저앉는다고 이씨는 들려줬다. ⓒ 이정민


기상예보를 보니 영하 12도에서 15도를 오락가락하는 매서운 추위라고 했는데, 걱정과 함께 제 시간에 깨어날 수 있을까 하는 긴장에 잠을 못 이루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만남 장소는 부개1동 경인대로 H주유소 앞.


너무 어두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깥 상황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이씨와 만나니 마음이 놓인다. 이미 30분 전에 나와 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는 이씨의 말에 또 한 번 미안하고 겸연쩍어 고개가 숙여졌다.

"날씨가 많이 추운데 왜 나오셨어요. 옷도 그렇게 설렁설렁 입고서 (한숨). 눈얼음이 켜켜이 쌓여 오늘은 리어카도 못 끌고 심지 굳은 빗자루와 마대자루만 들고 다니면서 청소하네요. 잘 쓸리지도 않고 일도 더디니까 추운날씨가 애석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해야겠죠(웃음). 평생직장이고 업인데 힘들어도 열심히 해야죠."

정말 자동차도 거의 안 다니고, 사람 인기척도 보이지 않는 새벽녘에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씨는 한 손엔 집게, 다른 한 손엔 마대자루를 들고서 연신 몸을 구부렸다 펴면서 쓰레기를 주워나갔다. 원래는 안전등이 켜있는 리어카를 뒤에 두고 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지만, 경계석(=차도와 인도 경계에 놓은 시멘트구조물) 주위로 뭉쳐있는 눈덩이들 때문에 간단한 장비만 챙기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만난 지 30분이 지나자 발이 꽁꽁 얼어붙고, 손끝이 시려온다. 취재수첩과 펜도 이미 차갑게 얼어버려 글씨는 써지지도 않고, 걱정이 앞서온다. '도대체 어떻게 기록하지' 걱정하고 있는 그때에도 이씨는 묵묵히 구역을 돌며 빠르게 거리를 청소한다.

"구석구석에 광고지, 담배꽁초, 검은 봉투들이 끼어 있어서 이렇게 추운 날은 쓰레기 치우기가 더욱 힘들어요. 더군다나 바닥에 얼어붙은 종이는 떼어내기도 힘들고요. 눈 속에 파묻힌 쓰레기들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오전 근무를 마친 뒤에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와 여간 곤혹스럽지 않습니다. 마음은 정말 티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청소하고 싶은데 그날그날 여건과 날씨, 환경에 따라 변수가 참 많아 속상하네요"

#오전 6시, 1시간 만에 몸을 덥히다

a  일을 시작한 지 1시간가량 지나면 가끔씩 동료와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몸을 녹인다. 김밥집 아주머니는 단골손님을 맞이하듯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반겨준다고 한다.

일을 시작한 지 1시간가량 지나면 가끔씩 동료와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몸을 녹인다. 김밥집 아주머니는 단골손님을 맞이하듯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반겨준다고 한다. ⓒ 이정민



곁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는 기자가 못내 안쓰러웠는지 이씨는 부개역 고가교 밑에 있는 김밥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커피나 한 잔 하고 몸 좀 덥히고 가죠."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손님 몇몇이 먹는 만둣국 냄새가 먼저 코를 적신다. 식당 아줌마는 이씨를 반기며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간식거리를 건넨다. 덜덜 떤 몸이 금세 풀어지는 느낌이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부개역 주변 구역을 담당하는 환경미화원 유희성(55)씨도 식당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넨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정말 나올 줄 몰랐는데 기자님, 참 대단하네요(웃음). 이렇게 추운 날 뭔 고생이래요."

유씨 또한 이씨와 같이 부개1동 주민센터에 속해있다. 식당 아주머니도 한마디 거든다.

"어머, 아저씨(=이덕규) 방송에 나오는 거예요, 호호. (기자에게) 저는 여기 식당 다방 마담이에요. 하하. 추운데 몸 좀 푹 녹이고 가세요(웃음)."

추운 날씨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인심이 참 따뜻하다. 몸과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손님들도 우리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훈훈한 인심을 보태준다. 새벽을 일찍 깨우는 이웃들의 정겨운 풍경이다.

a  환경미화원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등’.

환경미화원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등’. ⓒ 이정민


잠시 몸을 녹이고 나서 다시 일터로 향했다. 이씨가 오전에 맡은 구역은 부개사거리에서 동수교회 앞 경인대로 왕복구간이다. 횡단보도를 건너왔던 맞은 편 방향으로 다시 쓰레기를 주우며 나선다.

이씨는 이일을 하기 전까지 15년 8개월 동안 다른 일을 했다. 좀 더 안정적인 일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고,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중3에 올라가는 딸을 키우며 성실한 가장으로서 역할도 잘 해내고 있다.

이씨는 한 달에 한 번 입사동기들과 모임을 갖고 서로의 근황과 동네 상황, 어려움 등을 나눈다. 부평구에는 이씨와 같은 환경미화원이 140명가량 근무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하는 체육대회나 축구시합 때가 돼야 한자리에 모인다. 이씨는 26일 동료가 상을 당해 그곳을 다녀오느라 채 4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그래도 그의 얼굴은 밝다.

'난 또다시 뼛속까지 들어오는 추위에 말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 오전 7시 30분, 1차 정리

a  날씨는 추운데 쓰레기는 자꾸 쌓여가고… 이참에 ‘내 집 앞 쓰레기는 내가 치우기’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실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날씨는 추운데 쓰레기는 자꾸 쌓여가고… 이참에 ‘내 집 앞 쓰레기는 내가 치우기’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실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 이정민



날이 밝아올수록 사람들의 출근소리와 도로를 꽉 채운 화물차와 버스의 굉음소리에 추위와는 다른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이씨는 마치 위험천만한 곡예기술을 발휘하듯 경인대로 3차로를 넘나들며 쓰레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졸인다.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 부개사거리가 참 위험하죠. 아까 그 유희성씨도 저곳에서 버스와 부딪혀 병원신세를 졌어요. 도로와 인도 사이를 넘나들며 청소를 하다 보니 때론 뒤에서 차들이 경적소리를 크게 울려 (놀란 나머지) 그대로 주저앉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조금만 이해하고 참아주면 되는데….(한숨) 여름에는 술 취한 아저씨들이 가끔씩 시비를 걸어와 당혹스러울 때가 많죠. 특히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와 오염물 때문에 몇 번을 헛구역질하면서 겨우 끝내죠. 그래서 차라리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다니까요.(웃음)"

a  부개1동 환경지킴이로서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환경미화원들. 왼쪽부터 이상규(60)ㆍ이덕규(49)ㆍ유희성(55)ㆍ최우택(46)씨 모습

부개1동 환경지킴이로서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환경미화원들. 왼쪽부터 이상규(60)ㆍ이덕규(49)ㆍ유희성(55)ㆍ최우택(46)씨 모습 ⓒ 이정민



부개1동에는 모두 4명의 환경미화원이 있다. 막내격인 최우택(46)씨가 부개동 철길을 따라 군부대 앞까지 구역을 담당하며, 올해가 정년인 이상규(60)씨가 부개사거리부터 동수초등학교까지를 맡는다. 각자 업무를 마친 이들은 오전 8시 30분에 모여 간단한 커피타임을 가진 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2차 작업에 들어간다.

이들이 각자 새벽일을 마치고 8시 30분에 모이는 곳은 부개1동 주민센터 옥상에 마련한 휴게실이다. '부평구' 로고가 적힌 녹색 점퍼와 모자를 쓰고 있는 환경미화원 4명을 마주하고 앉으니 마치 동네에서 한두 번 마주쳤던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다.

"정말 추울 때는 신문지 같은 걸 태워서 손과 발을 잠시 녹인 후 업무를 이어가곤 합니다. 예전보단 많이 좋아져 한 달에 세 번 정도 쉴 수 있어 다행이지만, 연휴나 명절에는 하루밖에 쉬질 못해요. 특히 10월에서 12월 사이에는 낙엽과 잔가지들을 치우느라 쉴 수가 없어요. 이럴 때는 보통 새벽 2시에 일어나 일찌감치 나와 일을 하지요."(이덕규씨)

"무단투기하고 규격봉투를 쓰지 않고 (쓰레기를) 버릴 때가 가장 힘들어요. 낙엽 떨어지기 전 10월 말에서 11월 중순 시기에 가지치기를 하면 미관상도 좋고, 힘도 덜 들고, 봉투 값도 아끼니 1석 3조인데 말이죠(웃음). 그래도 우리는 휴식공간이라도 있어 다행이지만 열악한 주민센터에는 휴게실도 없어요. 함께 모여서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눌 공간조차 없는 거지요. 올해 20년차로 정년인데, 사명감 덕분에 후회 없이 보람을 느끼며 잘 해온 것 같아 좋습니다."(이상규씨)

"오후 작업할 때는 동네 골목골목마다 무단투기로 버려진 쓰레기 치울 때가 가장 힘들어요. 주민들이 조금만 배려해주시면 저희도 일하는 데 더 힘이 날 텐데 말이죠."(유희성씨)    

a  새벽녘 날씨보다 동이 터오는 이른 오전 날씨가 더 매섭고 바람이 차갑다.

새벽녘 날씨보다 동이 터오는 이른 오전 날씨가 더 매섭고 바람이 차갑다. ⓒ 이정민


오전 9시께, 취재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자는 이덕규씨의 말에 차를 타고 해장국집으로 이동했다. 휴게실에서 나눴던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귓전을 맴돈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과 함께 숨 가빴던 새벽일을 마무리하는 이들의 얼굴에서 푸근한 정이 교차된다.

누구보다도 일찍 새벽을 여는 사람들 환경미화원. 이 이름 다섯 글자가 우리사회에서 그 어떤 직업보다 자랑스러워질 수 있도록 진심 어린 관심과 배려가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환경미화원 #청소부 김씨 #부개1동 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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