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가 역전만루홈런을 날릴게요"

[현장] 달빛요정 추모공연에서... 88만원세대가 달빛요정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11.01.28 18:36수정 2011.01.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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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공연장 안을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 김수진


달빛이 되어버린 사내에게

당신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은 싱그러운 청춘이 보석처럼 빛났던 어느 해 봄이었습니다. 광화문거리에는 희망을 담은 촛불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던 때였습니다. 우리들도 거리에 앉아  학점, 스펙, 취업 문제와 같은 고민들을 함께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젖은 신발을 신고 지하철 5호선 첫 차에 올라탔을 때, 당신의 노래는 나의 차가워진 감성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볼 수가 없게 되었네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27일 오후 7시 홍대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이 날은 <나는 행운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당신의 추모공연이 있는 날이었거든요.


조금이라도 빨리 당신을 만나려고 걸음을 재촉했건만 처음 문을 두드린 클럽 빵(club bbang)은 이미 사람들로 넘쳐났어요. 당신이 그리워 모인 사람들 때문이었지요. 그 곳에서는 저녁 7시 '달빛요정카피밴드'가 첫 공연을 할 예정이었거든요. 자원봉사 스태프 이지현 씨(22)는 "(클럽 빵에서만) 100장이 넘는 표를 준비했는데, 이렇게 빨리 매진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기색을 표했어요. 다른 클럽에서 표를 사가지고 오라면서 안내를 해주기도 했어요. 그 때 시각 저녁 7시 15분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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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 달빛요정 추모공연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돼었다. ⓒ 김수진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표를 구하러 나섰지요. 중학교 2학년짜리 딸과 함께 왔다는 40대 아주머니는 클럽이 처음이라고 했어요. 당신을 잘 알지 못했지만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왔대요. 그는 "이진원씨 노래가 참 맑더라. 살아온 삶 자체가…. 그냥 막 살던 사람이 아니라 지하 단칸방에서도 자기 꿈 가지고 하고 싶은 것 끝까지 하던 사람이니까"라며 미소를 지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다른 클럽에서 표를 구해 클럽 빵에 돌아왔어요. 순서가 바뀌어 달빛요정카피밴드가 저녁 8시부터 공연을 시작했어요. 순수 아마추어 직장인밴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달빛요정카피밴드는 "왕년에 밴드의 꿈을 안고 음악을 하다 각자 직장에 들어갔으나 최근에 다시 규합했다. 오늘이 우리의 첫 공연이다"라고 말했어요.

카피밴드의 두 번째 무대에서는 관객이 직접 노래를 했어요. 카피밴드의 보컬이 엊그제 한일전을 보다가 목이 다 쉬어버렸데요. '절룩거리네'를 부르겠다고 당차게 나선 이는 당신을 '산적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는 26세 여자였어요. 자신을 88만원 세대라고 소개한 그는 "연봉 1000만원을 벌 수 있으면 계속 음악을 하겠다"고 이야기한 당신이 자신에게 희망의 아이콘이었대요. 그는 "그림을 그리며 디자인을 하는데, 한 달에 100만원도 벌기 어렵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추모하며 노래를 시작했어요.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 인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깨달은 지 오래야 이게 내 팔자라는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절룩거리네' 중에서


자리를 옮겨 도착한 곳은 브이홀(V-Hall)이었어요. 저녁 9시부터 카피머신의 공연이 시작됐죠. 카피머신의 보컬 준다이씨는 "준비한 표 4500장이 30분 만에 매진됐답니다"라며 환호를 했어요. 그는 이어  "오늘 행사는 단발적인 것이지만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준다면 희망은 있을 것입니다. 공은 음악인들이 던지지만 홈런은 여러분이 치시는 겁니다"라고 외친 뒤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무대를 보여줬어요. 그들의 신나는 노래에 일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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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유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 ⓒ 김수진


제 옆에서 폴짝 폴짝 뛰면서 마구 소리를 지르던 사람은 알고 보니 40대 주부였어요. 혼자 공연장을 찾았다는 최미정(42)씨는 "그동안은 몰라서 못 왔다. 이렇게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라고 말했어요. 심지어는 "(이런 좋은 공연은) 만 원 더 받아야 한다"라고 말해서 88만원 세대인 기자의 가슴을 놀래키기도 했어요.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P(30)씨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다니던 컨설팅 회사를 얼마 전에 그만 뒀대요. 그는 "예전에는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직장에 가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어요. 그는 앞으로 시를 쓰고 싶대요. 순간 그에게서 직장을 그만두고는 그토록 하고 싶던 음악을 시작한 당신이 보였어요.

저 산이 좋아서 저 산을 바라봤어
왜 오르지 않냐고 사람들은 웃었어
산아 내게 불어줘 날 납치해줄 바람을
내가 가고 싶은 낙원으로 나를 데려줄
땅 위의 파도 몰아치는 비바람
씻은듯이 데려가줘
- 카피머신, 'Rodeo' 중에서

"달빛요정 잘 몰랐는데, 자꾸 눈물이 나요..."

시각은 어느덧 밤 10시. 브이홀의 마지막 무대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장식했어요. 이미 홀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있었어요. 장기하 씨는 당신을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이야기하고는 그냥 헤어져 아쉬웠대요. 그는 당신의 일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최근 일부 공개된 당신의 일기에는 '장기하는 날 알까?'라는 구절이 있었대요. 장기하씨는 "알 뿐만 아니라 달빛요정이 날 알기 전부터 좋아하고 존경했었다. 오늘 그 말을 여러분들께 대신 전한다"고 말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울면 안 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어요.

스쳐 지나갔던 너의 두 눈 속에 있지도 않았던 눈물이 생각났어
난생 처음 봤던 너의 얼굴 뒤에 숨지도 않았던 옛날이 보였었어
나 정말로 없었는지 한번만 더 보고싶었어~어 아~아
- 장기하와 얼굴들, '정말로 없었는지' 중에서

추모공연의 마지막은 바로 당신의 무대였어요. 밤 11시 상상마당 지하 2층 라이브홀에는 26개 클럽으로 흩어졌던 300여명의 뮤지션들이 한 데 모였어요. 관객들을 말할 것도 없었지요. 자리가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홀 바깥까지 자리를 메우고 모니터를 통해 공연을 지켜봤지요. 우리는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당신을 볼 수 있었어요. 당신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어요. 스크린 속 당신의 목소리를 따라 실제 연주 세션이 반주를 맞춰주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렸어요. 역시나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남상현 씨(25)는 "사실 달빛요정을 잘 몰랐는데도 이 자리에 오니 자꾸 눈물이 난다"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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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밖 공연장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밖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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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 추모공연을 하고 있는 허클베리핀 ⓒ 이선필


달빛요정,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제가 당신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당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이가 많았어요. 하지만 당신 때문에 103팀의 뮤지션들이, 5000명에 달하는 관객들이 한 자리에 모인 거예요. 이 날 공연에 참여했던 허클베리핀의 이기용 씨(기타, 보컬)는 "오늘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날인 것 같다. 지금 진원이가 홍대를 누비면서 음악을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달빛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진원이를 생각할 것이다. 매년 이맘때 그를 위해 노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니 당신은 정말 '행운아'인지도 몰라요. 이제는 우리가 당신이 던진 공을 받아칠 차례인 것 같아요. 지금은 비록 '스끼다시 인생'일지라도, 또 다시 '절룩거릴'지라도, 역전만루홈런을 치는 그 날을 위해서 말이에요.

꿈이 꿈대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란히 빛났으면 좋겠다. 어디에서든.
- 달빛요정의 마지막 에세이, <행운아> 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김수진, 구태우, 이선필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수진, 구태우, 이선필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달빛요정 #추모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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