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밤을 지내며 집으로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돌아본 태국 북부 산악지대 (마지막 회)

등록 2011.02.28 09:18수정 2011.02.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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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산을 넘으려고 일찍 길을 떠난 젊은이들이 산 중턱에서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있다.

산을 넘으려고 일찍 길을 떠난 젊은이들이 산 중턱에서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있다. ⓒ 이강진

산을 넘으려고 일찍 길을 떠난 젊은이들이 산 중턱에서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있다. ⓒ 이강진

새로 지은 리조트에서 잠을 잘 잤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리조트라 그런지 기분 좋을 정도로 서늘하다. 오늘은 방콕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서둘러 일어난다. 밖은 아직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아침 이슬을 맞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아직도 공사하느라 리조트 주위는 산만하다. 그래도 이슬을 머금고 산속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이름 모를 꽃과 풀을 보며 산책을 하니 심신이 상쾌하다. 

     

어제 저녁에 같이 앉아 맥주를 마셨던 아저씨가 끓여 주는 커피와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을 먹는다.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커피를 마시니 상쾌하다.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젊은 선남선녀들이 차에서 내려 리조트 바로 앞에 있는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두 즐거운 모습이다. 내가 다녀온 산길로 떠나는 여행객이다.

 

주인아저씨와 일하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치앙마이(Chiang Mai)를 향해 또다시 산길을 운전한다. 중간에 휘발유가 부족하다는 불이 들어온다. 산길을 달려서인지 자그마한 자동차가 생각보다 휘발유를 많이 먹는다. 도로 옆에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가 몇 개 있어 차를 세우니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어주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아저씨가 다음 주유소까지 가는데 5리터면 충분할 것이라며 휘발유를 넣어준다. 펌프로 휘발유를 유리관에 끌어올린 다음 고무호스로 천천히 흘러내려 보내는 아주 구식이다. 5리터 기름을 넣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름을 넣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소리를 듣고 무척 반긴다. 자기도 한국에 두어 번 다녀온 적이 있고, 뉴욕에서 살면서 한국 사람을 많이 사귀어 한국을 잘 알고 있다고 자랑이다. 나름대로 한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곁들인다. 한국은 싱가포르처럼 자원은 없지만, 한국 사람은 머리도 좋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는 등 한국에 대한 칭찬이 휘발유를 넣는 동안 계속된다. 항상 남의 떡이 맛있어 보이는 모양이다. 나는 이 산 속에서 사는 태국 사람의 삶이 부러운데.

 

어제 묵었던 리조트 주인은 독일에서 살던 사람이고 지금 우리에게 휘발유 파는 사람은 뉴욕에서 살던 사람이다. 흔히 잘산다고 하는 나라를 떠나 산골이지만 고국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늙으면 자기 살던 곳이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치앙마이 시내에 들어오니 차가 밀린다. 자동차를 돌려주고 기차 시간에 맞추어 천천히 치앙마이 시내를 둘러보며 기차역으로 향한다. 작은 도시라 방콕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시 한복판은 매연과 자동차, 오토바이로 어지럽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가? 요즈음은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a  치앙마이도 시내 한복판은 자동차와 매연이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다.

치앙마이도 시내 한복판은 자동차와 매연이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다. ⓒ 이강진

치앙마이도 시내 한복판은 자동차와 매연이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다. ⓒ 이강진

 

a  치앙마이 시내를 흐르는 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나도 옆에 앉아 같이 세월을 낚고 싶다.

치앙마이 시내를 흐르는 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나도 옆에 앉아 같이 세월을 낚고 싶다. ⓒ 이강진

치앙마이 시내를 흐르는 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나도 옆에 앉아 같이 세월을 낚고 싶다. ⓒ 이강진

 

a  치앙마이에서 들린 도자기를 팔면서 음식도 파는 식당. 도자기로 야외 벽을 장식하고 있다.

치앙마이에서 들린 도자기를 팔면서 음식도 파는 식당. 도자기로 야외 벽을 장식하고 있다. ⓒ 이강진

치앙마이에서 들린 도자기를 팔면서 음식도 파는 식당. 도자기로 야외 벽을 장식하고 있다. ⓒ 이강진

기차는 2등 침대칸이다. 올 때 탔던 기차는 특급이라 에어컨디셔너에 음식도 제공하고 내부도 깨끗하였으나 이번 기차는 지저분하다. 창문이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올 때 타고 온 좌석칸과 침대칸이 거의 같은 가격이다. 이 기차는 완행이기 때문에 방콕까지 15시간이나 걸린다. 오후 2시 50분에 떠나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에 도착한다. 저녁 7시가 되니 직원이 침대를 만들어 준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지낼 만하다.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뻗고 자기 어려운 작은 침대다. 앞에 있는 젊은 외국인에게는 불편한 침대다. 나는 큰 불편 없이 다리 펴고 잘 수 있는 침대다. 

 

일찌감치 침대에 누워 기차가 달리며 내는 규칙적인 리듬에 몸을 맡기며 이번 여행을 되돌아본다. 너무 많은 곳을 가고 싶어 한 욕심 때문이었는지 이번 여행은 많은 시간을 오토바이와 자동차에서 보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기에 바쁜 일정이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산악인은 정상에 올라 잠시 머물기 위해 많은 시간과 고생을 하며 산에 오른다. 순례여행을 하는 종교인들도 수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낸다. 삶도 누군가 이야기하듯이 마라톤 선수처럼 남보다 결승선에 먼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정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쓸데없는 공상에 빠져든다. 집으로 돌아가 푹 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쉴 곳은 어디일까?      

 

a  방콕과 치앙마이를 오가는 기차 내부 모습, 침대차이긴 하지만 저녁까지는 침대를 펴주지 않는다.

방콕과 치앙마이를 오가는 기차 내부 모습, 침대차이긴 하지만 저녁까지는 침대를 펴주지 않는다. ⓒ 이강진

방콕과 치앙마이를 오가는 기차 내부 모습, 침대차이긴 하지만 저녁까지는 침대를 펴주지 않는다. ⓒ 이강진

              

 

덧붙이는 글 9일 동안 태국 북부를 다녀온 여행기를 이것으로 끝냅니다.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림니다.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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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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