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117회)

금서(禁書) <3>

등록 2011.03.04 10:42수정 2011.03.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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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왕위찬탈을 도운 정난공신(靖難功臣)이 훈구파들이다. 그 앞자리에 선 한명회(韓明澮)는 두 딸을 예종비와 성종비로 바쳤으나 아비의 죄업을 업은 탓에 그녀들은 요절하고 말았다.

송나라의 승상 한충헌(韓忠獻)에 자신을 견주고, 스스로 권력이나 부귀영화를 쫓지 않았다는 평을 듣고 싶어 한강 건너 경치 좋은 곳에 '갈매기와 친하다는 뜻'의 압구정(鴨鷗亭)이란 정자를 지어 세월을 희롱했다.


명나라 사신이 오면 이 정자에서 호화로운 잔치를 열었고, 가끔은 상감의 행차 때에 사용하는 용봉(龍鳳) 차일을 친 게 소문이 나 중신들에게 탄핵을 받아 유배당했다.

권세와 재물의 항아리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팔도의 수령방백이 보내는 진상행렬이 줄을 이었고, 잔치판에서 내던져진 고약한 냄새 때문에 정자 이름관 달리 갈매기가 날아들지 않고 뜻 있는 선비들의 위선과 부귀를 풍자한 시가 굴러다녔다.

임금이 하루 세 번씩 은근히 불러 총애가 흐뭇하니
정자는 있으나 이곳에 와 노는 이가 없구나
가슴 한가운데 기심이 끊어졌다면
벼슬바다 앞이라도 갈매기와 친압(親狎)하련만

세상 인심은 '친압할 압(狎)'자 대신 '누를 압(押)'자를 써 압구정(押鷗亭)이라 했으며 글을 쓴 최경지는 한명회를 '갓쓴 원숭이'로 비유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지만 연산왕이 보위에 오른 후엔 사정이 달라진다. 이때에도 조정의 실세는 훈구파들이었다. 세종과 문종 시대의 유학은 세조의 무단정치와 불교숭상으로 한때 저조했으나 성종 임금 때 다시 일어났다.


영남사림파의 종사로 알려진 김종직(金宗直)을 중용함으로써 그의 제자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등의 영남사림파 출신들의 신진사류가 세력기반을 형성하다 보니 현실적인 모순을 개혁하려는 신진사림파와 기존 구질서를 고수하려는 훈구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것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쪽에서 해결점을 찾는 것보다 전연 다른 곳에 있었다. 즉, 성종 임금 당시 윤씨의 사사를 주도했던 인물 중에 훈구파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초(史草)에 자신들의 허물이 적혀있는가를 살피기에 이르렀고 원하는 기록을 찾아냈다. 그것은 사관 김일손이 쓴 기록이었다.


성종의 초상(初喪)이 있던 날, 전라감사였던 이극돈은 향(香)을 보내지 않고 장흥기생과 술자리를 연 것이다. 내용을 고치기 위해 사관이었던 김일손에게 몇 번이나 사정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훈구파 중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장탄식을 터뜨렸다.

"허어, 이 일을 어쩌면 좋겠소. 내가 전라감사로 있을 때엔 워낙 술이 취해 그런 허물을 남긴 것이오만, 김일손이 무슨 억하심정으로 사초에 그런 걸 썼는지 알 수 없소이다. 만약 그런 일들이 알려진다면 내가 살아날 수 있겠소?"
"그 자가 사초를 고치지 않겠다면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오."

이렇게 말한 건 유자광이었다. 그는 이극돈이 허둥대는 사이 벌써 실록을 뒤적였다. 그가 찾아낸 건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祭文)>이었다.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위해 지은 이 제문에서 김종직은 단종을 항우에게 피살당한 한(漢)나라 의제(義帝)로, 세조를 항우로 비유해 한바탕 피바람이 일어난다.

내사복 친국장은 완전히 살얼음판이었다. 조선시대의 친국장은 왕이 친림해 궁안의 반역 사건을 추국하는 것으로 그 장소는 금상문·숙장문·내사복(內司僕)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원칙에 불과했다.

역사상 나타난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 실제로 조선에 있어서 국왕 마음대로 친국 장소를 택했다. 광해군은 서청(西廳)에서, 숙종은 사정전(思政殿), 영조는 인정전(仁政殿)에서 개최하고, 정조는 금위영을 이용했다. 친국에 참여하는 관리로는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을 비롯해 의금부당상, 양사의 대간, 좌·우포도대장 등이다.

이외에도 위관(委官) 1인으로 하여 수명대신(受命大臣)이 되고 추국을 지휘·감독하는 문사낭청은 여덟 명으로 이들은 추국 내용의 기록 등 잡무를 거들었다.

형방승지를 비롯해 의금부당상은 추국조서인 추안(推案)을 작성하고 도사 10인은 죄인의 압송 및 교통정리 등의 업무를 관장했다. 또한 별장은 고문을 담당해 죄인에게 형벌을 안기는 게 통상적인 절차였다.

사림파 대신들이 층층이 물고가 나자 생각지도 않은 <호중록>이 나타나 좌중을 긴장시켰다. 폐비 윤씨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뜻하는 기록이 나타나고 사약을 마시고 숨이 넘어갈 때 흘린 피를 닦은 '금삼(錦衫)'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되자 폐비 윤씨 사건에 연루자가 많았던 '훈구파' 역시 '사림파'와 마찬가지로 피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정약용은 무거운 신음소릴 흘렸다. 시각은 유시를 지났지만 바람 끝에 실린 밤 기운은 아직 녹녹했다.

'이것은 실록을 보지 못하게 한 데서 나온 피바람이다. 왕조의 역사를 살피면 <호중록>이 나타날 때마다 크나큰 사건이 있었다. 폐비 윤씨 사건 당시 나타난 <호중록>은 다른 서책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포배장(包背裝)으로 만든 것이었다. 책을 만들 당시 기록을 조금이라도 보전하려는 의도였기에 제본 방식은 책장의 글자를 밖으로 나오도록 중첩한 후 종이 단면의 가까운 곳을 뚫어 비벼꼰 끈으로 몸통을 꿰메고, 책 위나 아래를 덮어 싼 장정이다. 이렇게 해야 사오 십 년은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탁자 위에 놓인 건 호접장(蝴蝶裝)이었다. 현대어로는 '호부장'이라 부르는 제본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한 장의 종이를 겉 중간에서 안으로 들어가도록 가운데를 중첩해 안쪽에 붙이는 걸 말한다.

책장을 한 장씩 펼치면 그 모양이 나비가 날개치며 날아가는 것과 흡사해 호접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러한 호접장은 낱장 하나를 반접(反摺)했기 때문에 벌레가 갉아도 본문이 손상되지 않은 이점이 있으나 오래 사용하면 책장이 떨어지고 종이가 약해 잘 찢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금위영에 소속된 자는 낭청이라 했다. 이조와 병조에선 관리를 뽑을 때 기록하는 업무를 맡는다지만, 만약 홍문관이나 승정원이면 어쩔 것인가? 죽은 자는 분명 사초(史草)를 뒤적일 것 아닌가. 그런데 죽은 자가 금위영에 있다는 건 수빈 박씨의 아비가 금위대장이기 때문아닌가.'

문효세자가 세상을 떠나 그 동안 왕실은 비탄에 잠겼다. 치독(置毒)을 완전히 다스리지 못하고 문효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혜경궁 홍씨와 의빈 성씨의 슬픔은 어떠했는가. 어린 세자가 뛰놀던 동궁의 후원은 슬픔만 남겼지 않은가.

'궐에 있는 누군가가 계책을 쓰기 전, 금위영의 낭청을 먼저 살해했다면 이것은 장차 큰 일이 일어날 것을 나타낸 것이다. 지금 전하께선 실록을 살펴, 상훈이 올바르게 시행됐는지를 정령형상(政令刑賞)으로 살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번 살인사건은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경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훈구'와 '사림'의 대결이 아니라 벽파와 시파의 힘겨루기다.

한양에 터를 내린 저들 사대부들이 결코 한양을 떠날 수 없다는 안감힘일 것이다. 정약용은 상감이 계신 규장각을 한달음에 찾아갔다.

"전하, 소신 정약용 아뢰옵나이다. 금천교 아래서 발견된 금위영에 소속된 낭청의 죽음은 독극에 중독된 것으로 보이나, 품속엔 일반인들이 지녀서는 안 될 서책이 들어있었나이다. 서책의 겉표지에 <호중록(壺中錄)>이라 쓰인 것으로 보아 궁 안의 슬픈 역사를 기록하는 것으로 보았으나 안쪽의 속지엔 아무런 내용도 없었나이다. 서책을 지닌 낭청이 죽음에 이른 것은 안에 뿌려진 독극에 중독된 것으로 보이오나 이것은 장차 궐 안이 소란스러워질 것으로 보이오니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상감은 선선이 허락했다.
"사암이 그리 생각했다면 그리 하시오."
"예에, 마마. 신은 은밀히 대청에 사람을 두어 궐내각사(闕內各司)를 면밀히 수탐할까 하나이다."

[주]
∎사초(史草) ; 역사기록
∎반접(反摺) ; 반대로 접음
∎대청 ; 사헌부 사간원의 업무 공간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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