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백혈병' 유가족, 영정 사진 들고 갔다가 쫓겨나

삼성전자 본관 항의방문....6일, 고 황유미씨 추모 문화제 열려

등록 2011.03.07 09:06수정 2011.03.0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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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가족들 삼성본관 항의 방문 영상 지난 6일 오후 2시경 삼성전자 본관에 항의방문을 한 유가족 6명과 이를 저지하려는 보안요원 20여명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보안요원들은 유가족들의 팔을 꺾기도 하였고, 심지어 욕설을 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 김주현씨의 아버지인 김명복씨가 깨진 영정사진에 손을 다치기도 하였고, 가슴통증을 호소하다 병원에 실려갔다. ⓒ 반올림


"강도 때려잡는 것처럼 (유족들을) 집어던지고, 영정사진도 다 집어던져서 깨지고, 다른 피해자 가족은 다쳐서 응급실에 갔다. 우릴 힘으로 제압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기일인 6일 오후 2시경,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유가족 6명은 삼성전자 본관에 항의방문 하려다 험한 꼴을 보고 쫓겨났다.

고 황유미씨의 유가족인 황상기씨(56),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35)씨, 고 김주현씨의 아버지 김명복(56)씨는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고 삼성전자 본관에 들어갔다. 본관 진입과정에서 유가족들 6명과 보안요원 20여명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난 것.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하 반올림)을 통해 입수한 동영상에는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건물 안에 진입하자 보안요원들이 유가족들을 거칠게 제지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유가족들 한 명당 보안요원 3~4명씩 붙었다. 이 과정에서 보안요원들이 유가족의 팔을 꺾기도 하였고, 한 유가족은 점퍼가 찢기기도 하였다. 건물 안에 들어갔던 유가족들은 보안요원들에게 팔 다리를 들린 채 끌려나왔다. 동영상에는 끌려나오는 정애정씨에게 보안요원이 '씨*년'이라는 욕설을 한 장면까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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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쓰러진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삼성본관 진입과정에서 보안요원가 몸싸움을 하던 황상기씨가 쓰러져있다. ⓒ 반올림


정애정씨는 "건물 안에 들어가니 난투전이었다. 들어가서 보니 황유미씨 아버지와 유흥종씨가 널부러져 있고, (보안요원들이 건물 안에서 나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했다. 개처럼 기어가기도 했다. 출입문을 넘으려는 나를 뒤에서 거칠게 잡아당겨 바닥에 널부러졌다. 가방이 아니었으면 뇌진탕에 걸릴 뻔했다. 3명이 나를 잡고 던져버렸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1월 11일 삼성전자 천안 LCD사업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근무하다 탕정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고 김주현(26)씨의 아버님인 김명복씨는 부서진 아들의 영정 사진 유리파편에 손을 찔려 다치기도 하였고, 가슴통증을 호소하다 구급차에 실려 강남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김씨와 함께 강남성모병원에 간 박종태씨는 "현재 김명복씨는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있다. 담당의사가 피검사 결과 심근경색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루 정도 입원하면서 상태를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본관 진입한 지 5분 만에 끌려나왔다.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씨의 어머니인 김시녀씨는 "피도 눈물도 없는 **들이다. 겉만 사람이다. 삼성이 무섭다. 예우를 갖춰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어떻게 유족들에게 폭언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보안팀 한 관계자는 7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삼성본관의 보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어제 유가족 방문과 관련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며 "그 사항은 제가 대답할 부분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매년 3월 첫 주는 고 황유미씨의 추모 주간이며, 이날 오후 6시에는 황유미씨 추모문화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병원에 이송된 김명복씨를 제외하고, 다른 유가족들은 오후에 추모 문화제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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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화제 고 황유미씨의 4주기 기일인 6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 날 추모문화제는 황씨 뿐 아니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사망한 46명의 노동자들을 함께 추모했다. ⓒ 구태우


고 황유미씨 추모문화제 현장

스물셋, 막 여물어 터질 것만 같은 싱그런 젊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에는 싱그런 스물셋은 없었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대학에 다니고, 미팅을 하고, 연애를 할 나이에 그녀는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병상에서 시름하며 죽어갔다. 그녀에게 스물넷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고 황유미(23)씨이다. 강원도 속초에서 나고 자란 고 황유미씨는 2003년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2007년 3월 6일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황씨의 죽음을 통해,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 걸린 사례가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삼성공장에서 일하다 꽃조차 피우지 못 하고 죽어버린 46명(반도체 공장 : 25명, LCD공장: 6명, 삼성 전기 : 7명,  기타 등등)의 황유미씨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6일 저녁 서울역 광장 앞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하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유정옥 산업의학전문의는 "고 황유미씨는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이 땅에 작지만 단단한 씨앗을 심고 갔다. 여기에 거름을 주면서 벌써 4년의 시간이 지났다. 황유미씨를 통해 제2, 제3의 또 다른 황유미씨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씨는 "그래서 오늘 추모문화제는 너무 짧고, 가냘펐던 46명의 넋에 대해서 단지 추모만 하는 것이 아니라. 46개의 씨앗을 어떻게 다시 예쁘고, 강하게 꽃을 피울 것인지에 대해 마음을 모으는 자리였으면 합니다"고 말하며 추모 문화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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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유미씨의 부모님 황씨의 아버지인 황상기씨가 추모문화제에서 딸의 영상을 보고 있다. ⓒ 구태우


고 황유미씨의 생전 영상이 틀어졌다.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부터 병상에 걸린 모습까지 딸의 생전 모습이 나오자 아버지인 황상기씨는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문화제에 참석한 이들도 고 황유미씨의 영상이 나오자 숙연해졌다.

황씨는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 걸려 신고한 사람만 130명이 넘는다. 노동조합만 있었어도, 작업장이 안전하지 않은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삼성은 노동자 죽이는 암공장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황씨는 문화제에 참여한 이들과 시민들에게 "삼성물건 사지말아달라. 삼성보험, 삼성카드, 삼성제품을 쓰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 노동자 죽이는 것을 도와주는 꼴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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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민웅씨의 아내인 정애정씨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일하다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인 정애정씨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10년 동안 일했던 경험을 말하고있다. ⓒ 구태우


남편의 죽음을 규명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며 할 일

2시간 동안 진행된 추모제는 유족들의 발언과 추모사 낭독, 문화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기흥공장에서 설비엔지니어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10년 동안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설명했다.

정씨는 "나를 비롯한 많은 여사원들이 라인에 들어가면 화학약품 냄새 때문에 코피를 흘리고, 생리통이 심해지고, 하혈하는 여사원들이 많았다. 심지어 유산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며 "삼성은 노동자들에게 환경안전교육을 해서 유해물질이 노출되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줘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정씨는 "더 이상 내 남편과 같은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어느 덧 삼성과 정부에 맞서 싸우면서 남편의 죽음을 규명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할 일이 되어버렸다. 이젠 몸으로 싸우겠다.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정씨가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경험을 말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여학생들은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추모 문화제에 참여한 100여명의 시민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뜨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이 한동안 문화제를 지켜보기도 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추모문화제 동안 김시녀씨의 초는 거의 다 타들어갔다. 촛불을 들고 있는 김시녀씨의 두 손이 떨렸다. 김씨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가는 것 같아 보였다.

추모 문화제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를 함께 부르며 끝이 났다. 추모제가 끝난 후에도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서울역 앞에 설치된 추모분향소에서 향을 피우고, 유족들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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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화제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삼성반도체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함께 싸울 것을 결의하고있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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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화제 추모문화제가 끝난후 참석했던 시민들이 서울역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분향하고있다. ⓒ 구태우

#삼성반도체 #백혈병 #고 황유미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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