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피해 아동에게 국가가 위자료 준 까닭

[아는만큼 보이는 법 67] 요즘판결 12-국가의 잘못을 인정한 최근 판결

등록 2011.03.11 18:57수정 2011.03.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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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

갑자기 <개그콘서트>와 개그맨 박성광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동안 국가에 맺힌 게 많아서였을까. 이 말은 대중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유행어가 되었다.

사실 조금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그맨이 이런 유행어를 날릴 엄두를 내지 못했으리라. 만일 70, 80년대에 누군가 길거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서울지방법원 ⓒ 박종원


하지만 요즘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만큼 세상이 변한 건 사실이다. 최근 공무원의 잘못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눈길을 끈다. [요즘판결] 12번째는 '피고' 대한민국이 패소한 판결 이야기다.

① 조두순 사건 수사검사는 어떤 잘못 저질렀나?(서울중앙지법 2월 10일)
② 양천경찰서 가혹 행위 사건 국가의 책임은?(서울중앙지법 2월 17일)
② 교도소내 조폭에 폭행당한 재소자 국가상대 소송 결과?(수원지법 오산시법원 3월 3일)

[판결 1] "성폭력 피해자 배려 안 한 조사는 위법...국가가 위자료 지급"

2008년 12월 11일 경기도 안산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아침에 등교하던 여자 어린이 A양(당시 8살)이 50대 남성에게 화장실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그 남성은 성적 요구를 거절하는 A양을 때리고 목을 졸라 기절시킨 후 강제로 몹쓸 짓을 저질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두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A양은 장기손상 등으로 대수술을 받은 것을 물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등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검찰 조사가 또다시 A양을 고통스럽게 했다. 

[사례 1] 검사는 2009년 1월 피해자 A양을 검찰청으로 불렀다. 당시 대수술을 받은 지 불과 2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A양은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가 택시가 없어서 추위에 떨다가 병원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검사는 다시 피해자 A양을 불렀고 아버지가 차량을 요청하자 검찰 차량을 보내주어 검찰청에 도착했다.

조사 당시 A양은 배변주머니를 달고 있었고, 수술 부위의 압박 때문에 비스듬히 겨우 앉아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검찰은 피해자 영상녹화 과정에서 기계 작동에 서툴러서 A양이 여러 차례 진술을 하게 만들었다. A양과 어머니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피해를 보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법)에는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위해 지켜야할 조항들이 나온다. 법무부훈령인 인권보호수사준칙에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유의사항들이 있다. 주요 사항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수사기관이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성폭력 전담검사가 조사를 해야 한다.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가 편안한 상태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조사환경을 조성하고 피해자를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조사해서는 안 된다. 특히 피해자가 아동일 경우 피해 아동의 연령, 심신상태 또는 후유장애의 유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조사계획을 수립하고 조사준비를 철저히 하는 등 특별히 배려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A양을 조사한 검사는 전담검사가 아니었다. 또한 검찰은 A양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제대로 앉기도 힘든 A양을 직각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4번씩이나 진술을 반복하게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수사 검사들이 성폭력법이 검사에게 부과하는 피해자에 대한 최선의 조사환경 조성, 필요 최소한의 조사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며 "이같은 의무위반은 수사상 잘못이 객관적이고 명백한 경우로서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불필요하게 반복된 조사 녹화로 인하여 A양과 어머니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넉넉히 추인할 수 있다"며 "피고(대한민국)는 검사들의 직무상 위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금전으로나마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위자료 액수는 A양 1000만 원, A양의 어머니 300만 원으로 정했다.

이 판결은 범죄자 처벌뿐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 존중도 수사기관의 중요한 의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준 판결이었다.

[판결 2] 양천경찰서 가혹행위, 형사처벌에 국가 배상까지

죄를 밝히려는 의욕이 지나쳤을까. 아니면 범죄를 부인하는 피의자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을까.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그게 안 된다. 서울 양천경찰서 피의자 가혹행위 사건은 2010년에 발생한 사건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사례 2] 양천경찰서 강력팀 소속 형사들은 절도 혐의로 피의자 B씨를 체포하여 조사하게 되었다. B씨가 범행을 부인하자 형사들은 '작업'을 시작하였다. 강력팀 사무실 안에서 수갑을 뒤로 채우고 있던 B씨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B씨 입에 휴지를 넣고 테이프로 감아 소리를 못 지르게 한 뒤 양팔을 위로 꺾어 올리는 행동(일명 날개꺾기)을 반복하였다. 형사들은 B씨를 의자에 앉힌 뒤 머리를 잡고 같은 방법으로 고통을 주기도 했다. 형사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B씨는 또다시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서울중앙지법은 2월 "강력팀 형사들은 범행을 부인하는 B씨에게 폭행을 가하여 고문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B씨가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고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적법절차,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을 천명하고 있는 현행 헌법질서 하에서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는 반인권적 범죄이자 문명사회에서 반드시 퇴치되어야 할 잔혹하고 야만적인 범죄"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피해자 B씨에 대하여 피해회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여 위자료 2000만 원을 국가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가혹행위를 한 경찰에게는 형사책임을, 국가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판결 3] "교도소내 폭행, 국가가 예방할 책임 있다"

[사례 3] 지방의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던 C씨는 교도소 안에서 다른 재소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재소자들 사이의 단순한 다툼 정도로 보기엔 도가 지나쳤다. 그는 폭행으로 전치 3주의 고막천공상을 입었다. C씨를 폭행한 사람은 조직폭력배 출신 D씨였기 때문이다. C씨는 자신이 폭행당한 데에는 국가도 잘못이 있다며 법원을 찾았다.

수원지법 오산시법원은 지난 3일 이 폭행 사건을 "재소자들 사이의 우발적인 싸움이 아니라 D씨가 자신의 조직과 폭력성을 배경으로 C씨에 대한 우월적인 지위에서 사적형벌을 가한 것"으로 규정했다.

법원은 "의사결정과 행동의 자유가 제한된 교도소에서 사적형벌이 자행되는 것을 예방하지 못한 원인은 교도소 근무자들의 감시소홀 때문이 아니라면 근무인력 부족 때문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가 교도소내 폭행을 예방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법원은 "국가는 C씨에게 부상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위자료 액수는 150만 원에 불과했지만 판결이 국가에 전한 메시지의 무게는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와 관련된 법조항 정리
기사에서 소개한 판결과 관련된 법조항을 정리해보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12조
②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⑦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제29조
①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국가배상법
제2조(배상책임)
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단서조항 생략)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의2
① 검찰총장은 각 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하여금 성폭력범죄 전담 검사를 지정하도록 하여 특별한사정이 없는 한 이들로 하여금 피해자를 조사하게 하여야 한다.
③ 국가는 제1항 및 제2항의 검사 및 사법경찰관에 대하여 성폭력범죄의 수사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피해자보호를 위한 수사방법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제21조의3
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성폭력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연령, 심리상태 또는 후유장애의 유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②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를 조사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편안한 상태에서 진술하도록 조사환경을 조성하여야 하며, 조사횟수는 필요 최소한으로 하여야 한다.
③ 제1항의 피해자가 16세 미만이거나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때에는 피해자의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비디오녹화기 등 영상물 녹화장치에 의하여 촬영·보존하여야 한다. (단서조항 생략)
#국가 #피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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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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